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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대한 보조금에 과잉생산 악순환 국가주도 성장 전략 한계 내몰려 "초고성장 시대 끝났다" 경고

중국 태양광 산업이 미국의 징벌적 관세와 국내 공급 과잉으로 심각한 생존 위기에 빠졌다. 기술적 준비 없이 정부 보조금에만 기반해 규모의 경제를 추구한 결과다. 녹색 전환의 선도자로 자임했던 중국은 이제 글로벌 과잉 공급의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됐고, 그 대가는 산업 전반에 걸친 파산 도미노로 이어지는 양상이다.
121개 기업 중 3분의 1 적자, 50개 이상 파산 신청
1일 중국태양광산업협회(CPIA)에 따르면 태양광 패널 공급망 모든 부문의 가격은 2023년 정점에서 2024년 60~80%까지 급락했으며, 전국 121개 상장 생산업체 중 39개 업체가 적자를 기록했다. 실제 중국 7대 모듈 제조사는 지난해 총 270억 위안(약 5조1,400억원)의 적자를 내 해당 기업의 실적 비교가 가능한 2017년 이후 처음으로 적자 수렁에 빠졌다. 올 1분기에도 중국 대형사(론지·트리나·JA·진코·통위)의 적자 규모는 83억8,000만 위안(약 1조1,6000억원)에 달했다.
태양광 업체들의 주가도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지는 형세다. 세계 최대 태양광 패널 제조업체 진코솔라의 주가는 올해 뉴욕에서 거의 30% 하락해 2022년 정점 대비 60% 이상 떨어졌다. JA, 통웨이, 트리나솔라, 론지, GCL 등 경쟁사들도 2022년 이후 80%까지 하락했다. 파산을 택하는 업체도 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솔라베의 집계에 의하면 올해 태양광 공급망에 있는 50개 이상의 중국 기업이 파산 신청을 했다.
이런 가운데 이달 초 상하이에서 열린 업계 최대 규모의 SNEC PV 컨퍼런스는 산업의 어려움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올해는 규모가 눈에 띄게 작아졌으며, 지난해 기조연설자였던 롱기와 통웨이 최고경영자(CEO)들은 불참했다. 진에너지 클린 에너지 테크놀로지의 양 리유 총괄 책임자는 "모두가 이 침체가 얼마나 깊고 오래 지속될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며 "완화되지 않았으며, 예상보다 더 깊고 길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전동화 국가’ 야망이 촉발한 공급 과잉 늪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중국 태양광 산업이 통제 불가 수준의 과잉 생산으로 수익성 악화에 빠지면서 중국의 국가 주도 태양광 성장 전략이 한계에 부딪혔다는 분석이 나온다.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하고 수요와 상관없이 정해진 가격으로 대규모 물량을 사들인 정책이 자국 산업을 공멸의 위기로 몰아넣었다는 지적이다.
에너지 시장 분석기관 우드매켄지에 따르면 중국 정부가 2011~2023년 태양광에 쏟아부은 보조금은 무려 500억 달러(약 67조4,000억원)에 달한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 태양광업계는 원료부터 최종 제품에 이르는 글로벌 공급망 80%를 장악하고 있으며 세계 최고 수준의 태양전지 효율을 달성하는 등 기술적인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수요를 뛰어넘는 과잉 생산에 따른 부작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중국 태양광 모듈업계의 생산량은 매년 글로벌 수요를 웃돌았고 급기야 지난해에는 격차가 2배 가까이 벌어졌다. 공급 과잉에 따른 가격 급락은 수익성에 직격탄을 날렸다. 2020년 와트(W)당 0.22달러였던 모듈 단가가 지난해 말 0.09달러로 60%나 급락한 것이다. 이 때문에 글로벌 시장을 주도하는 중국 5대 태양광 모듈 제조사의 지난해 말 적자 규모는 130억9,000만 위안(약 2조5,000억원)으로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났다. 5대 제조사 가운데 한 곳인 론지솔라의 중바오선 회장은 올 3월 업계 콘퍼런스에 참석해 “중국 태양광 발전 산업은 ‘위험 지대’에 들어섰다”며 깊은 위기감을 드러냈다.
열에 일곱은 중국산, 침식당한 K-태양광
문제는 이 같은 과잉 생산이 중국 내부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중국 태양광 업체들은 지난 몇 년간 원가에도 못 미치는 출혈 수출로 세계 각국의 산업 생태계를 교란했다. 이른바 ‘디플레이션 수출’이다. 수요보다 공급이 턱없이 많다 보니 중국은 물론 해외시장에서도 제 살 깎아 먹기 식 가격 인하 경쟁을 벌이는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중국 태양광의 저가 공세에 큰 영향을 받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한국 시장 내 중국산 셀 비중은 2019년 33.5%에서 2023년 74.2%로 2배 이상 급증했다. 같은 기간 국산 셀은 50.2%에서 25.1%로 줄었다. 국내에서 조립한 모듈에 중국산 셀을 사용한 경우가 많아 ‘무늬만 국내산’이라는 지적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또한 수출입은행은 ‘2024년 하반기 태양광산업 동향’ 보고서를 통해 “중국산 태양광 제품은 국내 태양광 시장에서 독점적 위치를 구축해 중국산 제품 없이는 국내 태양광 발전소 건설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중국산 태양광 셀을 수입할 때 관세가 부과되지 않은 것이 공급과잉의 직접적 배경이라고 보고 있다. 실제 중국은 문재인 정권 당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면서 수출 시 관세를 면제받고 있다. 중국산 태양광 셀이나 모듈을 사용해 전력을 생산해도 별다른 불이익이 없으니 값싼 중국산을 두고 국산 부품을 사용할 이유가 없다는 지적이다.
이런 가운데 미국은 중국의 저가 태양광 모듈 등의 유입을 막기 위해 지난달 중국의 ‘우회 수출로’로 알려진 동남아 4개국에 최대 3,521%의 전례 없는 관세 ‘폭탄’을 때렸고 유럽연합(EU)도 비슷한 조치를 추진하고 있다. 이에 한국 태양광업계에서는 미국과 EU 시장이 막히면 중국 저가 태양광의 한반도 공습이 더욱 거세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