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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배터리 기업이 올해 막대한 국가 보조금과 각종 혜택에 힘입어 내수시장 수요의 2배가 넘는 배터리를 생산할 전망이다. 이에 글로벌 배터리 업계는 중국에서 남아도는 배터리가 글로벌 시장에 쏟아질 경우 배터리 가격 덤핑 현상이 야기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한국 배터리 기업 역시 이같은 글로벌 단가 인하 흐름에 고전을 면치 못할 가능성이 커 관련 대책이 시급한 상황이다.
올해도 과잉생산, 중국산 배터리
지난 3일(현지 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는 원자재 시장분석업체인 CRU그룹 데이터를 인용해 올해 중국 배터리 공장들의 생산 능력이 1,500GWh(기가와트시)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구체적인 중국 기업들의 계획 용량은 1,448GWh다. 이는 전기차 약 2,200만 대를 제조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양인 데다 중국 내수시장 배터리 수요 예측치인 636GWh의 두 배를 훌쩍 넘기는 수치다. FT는 “이대로 가면 2025년 중국에서 생산되는 배터리 총용량이 내수 시장 수요의 4배에 달하는 4,800GWh까지 이를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하기도 했다. 한 마디로 과잉생산이다.
중국산 배터리는 지난해에도 과잉생산으로 문제가 된 바 있다. 작년 중국 기업들의 배터리 생산량은 총 545.9GWh였지만 전기차 생산용 국내 수요 294.5GWh, 고정형 에너지 저장용 국내 수요 84.3GWh로, 수출 물량 68.1GWh를 다 합쳐도 약 99GWh가 남았다.
이에 시진핑 국가주석은 올해 3월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 자국 배터리 업계의 묻지마식 확장세에 우려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이미 대기업과 기술 스타트업은 물론 배터리와 전혀 관련이 없는 업체까지 배터리 산업에 뛰어드는 상황"이라며 "이제와서 진화하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말했다. 심지어 중국 지방 도시조차 향후 수요 급증을 전망하며 정부 보조금을 사용해 세제 혜택, 연구개발 자금 지급 등 배터리 기업들에 각종 지원책을 펼치는 추세다.
막대한 양의 중국산 잉여 배터리에 리튬 가격 하락세까지
문제는 가격 경쟁력과 생산 능력을 모두 갖춘 중국 배터리 업체의 난립이 글로벌 배터리 가격 덤핑 현상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이다. 프랑스 배터리 기업 버코의 올리비에 뒤푸르 공동 창업자는 “현 상황에 매우 걱정 중”이라며 "지금 배터리 업계는 과거 철강 알루미늄 태양광 패널 분야 때의 양상과 매우 유사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앞서 중국은 알루미늄 태양광 패널 산업에서 거대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자국 기업을 키운 뒤, 자국 시장이 포화 상태가 되자 재고를 헐값이 수출해 글로벌 시장 장악에 나선 이력이 있다.
뒤푸르가 최근 유럽연합(EU) 관리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프레젠테이션에서도 “2030년 기준 유럽에서는 500GWh의 배터리 공급 공백이 있을 것”이라며 “이 공백은 중국 배터리 과잉 생산량으로 채워질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한 것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아울러 배터리를 만드는 데 필수 광물인 탄산리튬 가격도 하락해, 장차 글로벌 배터리 가격 인하가 가시화될 거란 예측도 나왔다. 한국자원정보서비스(KOMIS)에 의하면 지난해 11월 리튬 가격은 톤당 59만5,000위안(약 1억851만원)으로 정점을 기록한 뒤 하락세를 타고 있다. 올해 4월 약 15만 위안(약 2,700만원)으로 최저가를 찍은 리튬 가격은 다시 소폭 상승하고 있지만,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모양새다.
현재 리튬 가격은 19만5,500위안(약 3,556만원)이다. KOMIS는 “탄산리튬 가격이 오는 2025년까지 꾸준히 하락세를 탈 것으로 보인다"며 “톤당 약 15만5,000위안(약 2,800만원) 선에서 정리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에 상품 전문가들은 2021년 초 관측됐던 ‘리튬 가격 상승→ 양극재 가격 상승→ 배터리 가격 상승’의 사이클이 앞으로 반대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한국에도 공장 짓는 중국 배터리 기업, 중국과 가격 경쟁 가능할까?
한편 중국 배터리 업체는 한국에도 배터리 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지난 7월 30일(현지 시각) 블룸버그 통신은 “최근 넉 달 동안 중국 배터리 기업 론바이 등이 한국에 배터리 공장 5곳을 짓기 위해 총 5조1,000억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며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극복하기 위한 중국 기업들의 행보로 읽힌다”고 전했다. IRA에 따라 우려국가 기업의 부품이나 우려국에서 가공된 광물이 미국 전기차에 사용될 경우, 오는 2024년부터는 세액공제 혜택이나 보조금 등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IRA의 우려국가 대상이 정확히 규정되진 않았지만,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법인 만큼 중국 기업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는 셈이다.
그러나 국내 배터리 기업에는 악재가 아닐 수 없다. 막대한 양의 상품을 쏟아내 품질 제고를 견인하는 중국 기업 특성상, 한국 기업에서 중국 경쟁사의 행보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다면 가격 경쟁력을 잃어 시장 주도권을 뺏길 수 있다. 이미 글로벌 상위 10대 배터리 생산업체 중 6개가 중국 기업이며, 중국을 제외한 세계 시장의 중국 배터리 업체 점유율은 계속 늘고 있는 추세다.
실제로 글로벌 1위 중국 배터리 기업인 CATL의 상반기 비중국 시장 점유율은 27.2%로 전년 동기 대비 6.7%P 늘었고, 글로벌 2위 중국 배터리 기업인 BYD의 비중국 시장 점유율도 0.4%에서 1.6%로 증가했다. 반면 한국 배터리 3사로 꼽히는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의 비중국 시장 합산 점유율은 23.3%로 전년 동기 대비 2.5%P 하락했다. 국내 배터리 업계의 발 빠른 대처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