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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간 지속된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SK텔레콤(SKB·SKT) 간 망사용료 분쟁이 급작스럽게 종결됐다. 넷플릭스는 지난 18일 보도자료를 통해 “넷플릭스와 SK텔레콤, SK브로드밴드가 고객의 엔터테인먼트 경험 향상을 위해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고 발표, SK와의 모든 분쟁을 종결한다고 밝혔다.
언뜻 문제가 원만하게 해결된 듯 보이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두 기업의 소송전 속 등장한 망사용료 관련 법안이 추진 동력을 잃었다는 점이다. 글로벌 시장의 망사용료 법제화 움직임이 거세지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우리나라도 주저 없이 관련 법안을 밀어붙여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지지부진했던 소송전 종료
국내 통신사는 트래픽을 발생시키는 기업으로부터 접속 양에 비례해 망 이용 대가를 징수하는 '발신자종량제'를 채택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껏 이 같은 부담은 국내 기업에만 돌아갔으며, 해외 콘텐츠 사업자들은 추가적인 망 비용을 납부하지 않은 채 국내 사업을 영위해 왔다.
이에 2019년 SK 측은 엄청난 트래픽을 유발하는 넷플릭스가 망사용료를 내지 않는 것은 ‘무임승차’라고 판단, 본격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넷플릭스는 통신사가 최종 이용자와 콘텐츠공급사(CP) 양쪽에서 대가를 받는 것은 ‘이중 과금’이라고 반박하며 맞섰고, 이내 분쟁이 격화했다.
3년 가까이 진행된 두 기업의 망사용료 관련 소송은 갑작스러운 분쟁 종결 선언으로 흐지부지됐다.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던 두 기업이 갑자기 손을 잡은 것은 '실익' 때문이었다. 소송이 장기화하며 관련 부담이 점차 커져가는 와중, SKB의 경쟁사인 KT와 LG유플러스가 줄줄이 넷플릭스와 제휴 상품을 출시했다. SK가 시장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국내 OTT 업계 '공룡'인 넷플릭스와의 제휴가 필요했던 셈이다.
이미 1심에서 한 차례 패소한 넷플릭스 입장에서는 분쟁 종결이 반가울 수밖에 없다. 국내에서 패소 판례를 남기고, 본격적으로 망사용료를 납부하게 되면 해외 시장에서도 유사한 소송이 제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도미노 현상'이 발생하며 넷플릭스 측이 막대한 소송 비용·망사용료 부담에 직면할 수 있다는 의미다.
망사용료 관련 입법 추진력 잃었다
국내 망사용료 논의를 이끌던 두 기업의 분쟁이 막을 내린 가운데, 소송전의 물살을 타고 진행되던 국회의 망사용료 관련 입법 시도가 추진력을 잃게 됐다. 국회는 지금까지 소위 '넷플릭스방지법'으로 불리는 망사용료 의무화 관련 법안(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8건을 발의한 바 있다.
SK가 분쟁에서 승리할 경우 국회는 승소 판례를 발판으로 삼아 8개 법안 규제 논의에 속도를 낼 수 있었다. 하지만 두 기업 사이의 분쟁이 급작스럽게 종결됐고, 국회의 주요 입법 명분 역시 사라졌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대로 관련 논의가 정체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나온다. 넷플릭스 외에도 수많은 거대 글로벌 플랫폼이 국내 망사용료 규제와 관련한 입장 차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구글은 망사용료 입법 논의 국면에서 “법 개정이 이뤄지면 한국 사업 운영 방식 변경을 고려해야 할 수 있다”며 입법 반대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망사용료 납부가 강제될 경우 서비스 질이 저하될 수 있다는 일종의 위협을 가한 셈이다. 국내 시장과 해외 콘텐츠 기업의 의견이 여전히 좁혀지지 않는 가운데, 원만한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입법을 통한 '기초 가이드라인'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시장 망사용료 필요성 가시화, 우리나라는?
우리나라의 망사용료 관련 논의가 주춤한 반면, 해외에서는 망사용료 법제화 움직임에 본격적으로 속도가 붙고 있다. 올해 하반기 유럽에서 구글, 넷플릭스 등 빅테크에 망 이용 대가를 부과하는 법이 마련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세계 각국에서도 법제화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EU 집행위원회(EC)는 지난달 19일까지 ‘기가비트 인프라법’ 제정을 위한 의견 수렴을 마치고 본격적인 입법 절차에 돌입했다. EC는 이달 말까지 제출된 의견을 정리해 발표하고, 하반기에 법안을 의회에 제출할 전망이다. 브라질 통신규제기관 아나텔(Anatel)은 올해 3월부터 망 이용 대가 제도화 관련 의견 수렴을 진행 중이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에서도 지난달 콘텐츠제공사업자가 망 구축에 기여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업계에서는 이대로 가다간 우리나라의 망사용료 관련 논의가 글로벌 시장 대비 크게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거대 자본을 보유한 글로벌 콘텐츠 기업 대비 국내 통신사업자는 힘이 부족하다. 망사용료 법제화는 분쟁에서 국내 사업자를 보호하고, 글로벌 시장 흐름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한 '방어책'인 셈이다. 일선에서 망사용료 법제화를 외치던 SK가 한발 물러선 가운데, 시장은 차후 정부가 보일 움직임에 촉을 곤두세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