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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째 이어지고 있는 네이버와 쿠팡의 이커머스 '각축전'이 끝나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쿠팡에 비해 배송 서비스 열위에 있던 네이버가 사실상 이커머스 사업 성장을 내려놓고 수익성에 집중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OTT 서비스인 쿠팡플레이가 호선전을 기록하면서 쿠팡의 이커머스 사업으로 고객들을 불러들이고 있는 것도 쿠팡의 승리를 예견하는 데 힘을 실어주는 대목이다.
한편 업계에선 네이버의 수익성 중심 이커머스 사업 전략이 자사의 검색 서비스를 흔들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네이버의 이커머스 시장 점유율이 점차 떨어지고 있는 가운데 자칫 네이버가 해당 시장에서 완전히 발을 빼게 되면, 쿠팡이 쇼핑 관련 트래픽을 모두 흡수하고 난 뒤 검색 서비스 시장에 뛰어듦으로써 업계 1위인 네이버의 입지를 더욱 좁힐 수 있다는 지적이다.
'쿠팡플레이' 성공이 쿠팡의 이커머스 점유율 성장에 영향 미치는 이유
12일 업계에 따르면 네이버의 올 상반기 커머스 부문 매출액은 1조2,387억원으로 전년 동기(8,559억원) 대비 45% 증가했다. 커머스와 밀접한 사업적 관계가 있는 핀테크 부문 매출도 동 기간 5,704억원에서 6,579억원으로 뛰었다. 커머스와 핀테크 합산 매출액이 네이버 전체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올 상반기 40.4%로 검색부문 매출 비중인 37.6%를 사상 처음으로 넘어서기도 했다.
쿠팡의 성장세도 만만치 않다. 시장조사기관 왓이즈굿즈에 따르면 쿠팡 앱 이용자수는 올 상반기 기준 2,944만 명으로 우리 국민 5명 중 3명이 사용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경제활동인구를 감안하면 이들 대부분이 쿠팡을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가운데 쿠팡플레이가 OTT 시장에서 두각을 드러내면서 이커머스 시장에서 차지하고 있는 네이버의 입지가 줄어드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시장조사기관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쿠팡플레이의 지난달 월간활성이용자수(MAU)은 562.5만 명으로 동종 업계 1위를 장식했다. 쿠팡은 새벽 배송 외에 쿠팡플레이 무료 이용이 가능한 '와우 멤버십(월 4,990원)'을 제공하고 있는데, 쿠팡플레이 이용을 위해 와우 멤버십에 가입하는 이용자들이 크게 늘고 있다. 현재 와우멤버십 가입자는 1,100만 명 수준이다. 즉 쿠팡플레이 이용자수 증가가 쿠팡의 이커머스 시장 점유율 증가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고, 이에 따라 시장 파이를 뺏길지 모른다는 생각에 네이버가 바짝 긴장하는 모양새가 됐다는 것이다.
이커머스 점유율 쟁탈전은 사실상 네이버와 쿠팡 간 '2파전'으로 자리 잡은 모양새다. 현재 온라인 이커머스 시장에서 1, 2위를 다투는 쿠팡과 네이버는 이미 수년 전부터 이커머스 패권 싸움을 벌이며 경쟁해 왔다. 2010년 소셜커머스로 사업을 시작한 쿠팡은 2015년 지금의 직매입 기반 온라인 유통사로 전환한 뒤 코로나19 시기에 급성장하며 2021년 3분기 네이버 추월에 성공했다. 이어 지난해 3분기엔 사상 처음 분기 흑자를 내는 데 성공했으며, 올해 연간 실적 역시 영업이익을 낼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는 분위기다.
여기에 맞선 네이버도 멤버십, 네이버페이 등과 연계 전략을 통해 쿠팡 추격전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도착보장 서비스'도 시작했다. 네이버 도착보장 서비스는 평일 기준 밤 12시까지 제품을 주문하면 다음 날 바로 받아 볼 수 있는 서비스로, 약속 기간 내 도착하지 않을 경우 네이버페이 포인트로 보상한다. 이런 각축전 가운데 양사의 시장점유율 차이는 2% 포인트 안쪽으로 유지되고 있다.
성장보다 수익성에 집중하기 시작한 네이버
다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쿠팡과의 성장 격차를 메꿀 수 없다는 판단 아래, 네이버가 쿠팡과의 이커머스 시장 점유율 경쟁을 내려놓고, 그 대신 수익 중심형 사업을 영위하는 쪽으로 노선을 틀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실제 올 2분기 네이버의 북미 사업인 '포시마크'를 제외한 국내 이커머스 거래액 성장률은 전년 동기 대비 8.6% 성장에 그쳤다. 올해 시장 평균 성장률이 7.3%임을 감안하면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한 셈이다. 반면 쿠팡은 올 2분기에도 전년 동기 대비 21% 성장한 모습이다. 여기에 더해 전문가들은 올 2분기 네이버 컨퍼런스콜 내용에 주목,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와 제휴몰에 대한 언급도는 떨어진 반면 브랜드스토어, 크림과 같은 버티컬 서비스는 강조되고 있다는 점을 들며 네이버가 사실상 내부적으로 쿠팡과의 외형 거래액 규모 경쟁을 포기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동일선상에서, 앞서 살펴봤듯 네이버의 커머스 매출액 성장률이 전년 동기 대비 45% 증가한 부분은 이커머스의 성장으로 일궈 낸 게 아닌, 거래액 대비 매출 비중에서 상당한 실적 개선이 이뤄진 것을 의미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쉽게 말해 네이버가 기존 친셀러 정책에서 수익 기조 행보로 바꿨다는 얘기다. 실제 네이버 경영진 측은 지난 3월 네이버쇼핑의 정기구독 솔루션 사용료 부과에 나선 데 이어 4월엔 커머스 솔루션까지 유료화했다. 심지어 최근엔 도착보장 솔루션마저 유료화될 것이란 소식마저 들려오고 있다.
일각에선 네이버가 포시마크라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했기 때문에 쿠팡과 외형 규모 경쟁으로 인한 불필요한 출혈을 감수할 수요가 떨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들은 이같은 네이버의 국내 커머스 사업 행보가 북미 이커머스 업체 쇼피파이와 유사하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아마존과 외형 규모로 정면 대결하기보다는 D2C(소비자직거래) 사업자를 지원하고 여러 부가 서비스 판매로 추가 수익을 올리는 쇼피파이와 네이버가 현재 유사한 사업 전략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네이버는 쇼핑 검색 트래픽을 기반으로 한 막대한 광고 매출을 확보하고 있다. 여기에 부가 솔루션 판매 수익과 버티컬 수수료를 추가로 챙겨 국내 커머스 사업에서 확실한 캐시카우를 확보하겠다는 게 네이버의 전략인 것으로 분석된다.
쇼핑이 흔들리면 네이버 검색도 흔들린다
그러나 업계에선 네이버의 전략적 포기가 되레 네이버 사업의 근간을 뒤흔드는 악재가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최근 들어 네이버의 검색 시장 점유율이 지속적으로 하락세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웹사이트 분석업체 인터넷트렌드에 따르면 지난 4월 네이버의 국내 검색 시장 점유율은 55.2%로 지난해 5월 대비 9.6%포인트 감소했다. 이런 가운데 만약 쿠팡이 쇼핑 관련 검색 트래픽을 장악함으로써 검색 시장의 빈자리를 치고 들어온다면, 종국적으로는 네이버의 검색 시장의 입지마저도 좁아지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다시 말해 검색 시장에서의 점유율 하락을 막기 위해서라도 네이버가 커머스 규모 경쟁에서 완전히 밀려나선 안 된다는 게 업계의 공통 견해다.
실제 네이버의 이커머스 부문이 수익성으로 눈을 돌리면서 검색플랫폼 매출도 지지부진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 2분기 연결 기준 서치플랫폼 매출액은 9,104억원으로 지난해 4분기 대비 -0.65% 감소했다. 이와 관련해 네이버는 포털 점유율 제고를 위해 올 상반기 자체 초거대 생성형 AI인 '서치GPT'를 출시해 검색 품질을 업그레이드하는 등 역성장 방지에 바짝 힘을 내고 있는 모양새다.
다만 검색플랫폼 부진으로 네이버 광고 실적도 위축되는 분위기다. 그간 패션 브랜드들이 네이버 광고의 상당 비중을 차지해왔는데, 네이버 검색의 점유율이 줄어들고 있는 데다 지난 6월엔 네이버가 '파워 상품' 광고 서비스를 중단하는 등 홈페이지 개편을 단행하면서 패션 상품에 대한 광고 효과도 줄어들었다. 실제로 개편 이후 자사몰 매출 비중이 70~80% 이상인 의류 업체들의 네이버 광고 및 매출 등을 분석한 결과 전체적으로 광고 실적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익명을 요구한 연 매출 1천억원 규모의 업체 관계자는 "올 6월 SA(검색광고)와 DA(배너광고) 광고비가 각각 28%, 35% 감소하는 등 트래픽 유입이 크게 줄었다"며 " 최근 들어 효율이 나오지 않자 네이버 광고를 모두 중단키로 결정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