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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경기 침체의 영향에 따라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 조건이 까다로워지면서 단계별 투자 라운드에 따른 세부 투자 조건에 대한 논의가 심화하고 있다. 투자 전문가들은 투자금 회수(EXIT) 환경이 다변화됨에 따라 투자 원금 혹은 이익금 회수 방식에 대한 예측이 힘들어지면서 EXIT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세부 투자 조건이 부각하는 추세라고 밝혔다.
투라 라운드별 세부 조건에 대한 논의 증가
기업 밸류에이션이 높게 평가되던 시기엔 투자 지분을 먼저 확보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투자금 대비 지분율이나 운영 참여권 정도가 주된 관심사였다. 하지만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금리 인상으로 인해 경기가 침체하면서 투자자들의 포트폴리오에 있는 기업의 가치가 크게 하락했다. 일부 기업의 가치는 투자 완료된 자금의 총액보다 낮은 경우도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기업 가치 하락에 이어 EXIT 환경마저 다변화하면서 투자자들이 고려해야 할 조건이 매우 복잡해졌다고 설명한다. 투자 포트폴리오에 있는 기업들이 유동성 확보나 신규 자금 조달 등 생존을 위한 자구책을 모색함에 따라 기존 투자자들의 상황에 변수가 발생한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투자 라운드 단계에 따른 청산 우선권이다. 청산 우선권이란 기업이 자산이나 지분을 매각하는 경우, 선순위에 있는 청산권자가 투자금을 먼저 돌려받을 수 있는 권리다. 미국의 경우 시리즈 A, B, C, D 등의 투자 라운드에서 가장 최근 라운드에 참여한 투자자가 선순위 청산 우선권을 가진다. 미국 표준 청산 우선권 구조를 가진 기업이 시리즈 F까지 진행했다고 가정했을 때, 그 기업의 가치가 투자한 총자본금 이하로 하락하면, 시리즈 F에 참여한 투자자가 1순위 청산 우선권자가 된다.
시드 투자 전문 벤처캐피탈(VC) 파운더콜렉티브(Founder Collective) CFO 조 디필리피(Joe DeFilippi)는 “투자 라운드 조건별로 EXIT 시나리오에 따른 성과가 달라지기 때문에 EXIT 환경이 다변화할수록 투자 세부 조건 검토가 중요해진다”며 “만약 스타트업에 투자한 투자자라면 본인이 어떤 라운드에서 어떤 조건으로 투자를 진행했는지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덧붙여 “M&A, IPO, 신규 투자 라운드 등 지분 변동이 발생하는 상황에서 어떤 일이 발생할지 미리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M&A 상황에서 유리한 조건
다양한 EXIT 방식 중 M&A는 투자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방식이다. 전략적 인수자나 바이아웃 전문 기업에 회사를 매각하면 투자 수익은 물론 투자 포트폴리오에 좋은 레퍼런스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수합병 시장이 침체한 현 상황에서 기업 매각을 진행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만약 인수자를 찾는다 하라도 매각 금액이 기존 기업가치보다 낮을 경우 투자자들이 매각 딜에 동의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A라는 기업에 투자된 총투자금이 2억 달러(약 2,684억원)고, 시리즈 D 투자자가 1억 달러(약 1,342억원)를 1배 청산 조건으로 투자했다고 가정해보자. 선순위 채권자가 없는 상태에서 1억2,000만 달러(약 1,342억원)의 금액으로 기업을 매각한다면, 미국 표준 청산 우선권 구조에 따라 시리즈 D 투자자에게 1억 달러(약 1,342억원)를 지급하고, 2천만 달러(약 268억원)는 그 금액 이상을 투자한 시리즈 C 주주에게 지급된다. 반면 기업에 먼저 투자한 시리즈 A, B, 시드 투자자는 투자금을 잃게 된다.
이 경우 과반수 이상의 투자자가 매각을 승인해야 하므로 초기 단계에 참여한 투자자일수록 기업 매각을 반대할 확률이 높아진다. 시리즈 D 투자자가 매각 딜을 추진하기 위해선 청산금의 일부를 초기 라운드 투자자와 공유하는 별도의 협상을 진행해야 한다. 미국 소재 VC B캐피탈(B Capital)의 M&A 자문 책임자 로난 케네디(Ronan Kennedy)는 “경기 침체 상황에서 불리한 조건의 매각 딜을 진행할 땐 합리적인 제안을 설계해 모든 투자 라운드의 투자자들에게 동의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케네디는 “다른 기업에 지분 100% 포괄적 인수합병 구조로 매각하는 경우, 투자자가 보유한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한 방식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지분 100% 포괄적 인수합병 구조 매각을 원활히 진행하기 위해선 3배 수익을 원하는 시리즈 A 투자자가 0.5배의 수익을 원하는 시리즈 D 투자자가 적극적인 합의를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케네디는 초기 라운드 투자자의 보통주 일부를 후기 라운드 투자자에 딜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협상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조언했다.
IPO 상황에서 유리한 조건
IPO(기업공개)는 스톡옵션으로 회사 주식을 보유한 기업 임직원들과 투자금 대비 많은 주식 수를 배당받은 초기 라운드 투자자들이 선호하는 방식이다. IPO 상황에선 모든 우선주가 보통주로 전환되므로 투자 계약의 지분율 조건에 따라 배당금을 받을 수 있다.
만약 IPO 시 기업가치 금액이 기존 평가된 기업가치보다 낮을 경우, 높은 가치로 기업에 투자한 후기 라운드 투자자들이 투자 손실을 보게 된다. 최근 IPO를 진행한 미국의 식료품 배달업체 인스타카트와 마케팅 자동화 플랫폼업체 클라비요가 여기에 해당한다. 투자 자문 기업 펜윅(Fenwick) 변호사 랜 벤츄어(Ran Ben-Tzur)에 따르면 “주주들은 IPO 진행에 대한 발언권이 없고 이사회에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며 “후기 라운드 투자자들은 손해가 분명한 상황에서도 의견 제시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덧붙여 “인스타카트 IPO 이후 후기 라운드 참여 조건으로 투자 수익을 보장하거나, IPO 가치가 투자 금액보다 낮을 경우, 하방 보호 조항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밝혔다.
신규 투자 라운드 상황에서 유리한 조건
신규 투자 라운드가 진행될 땐 기존 투자자들이 신규 투자자에게 1배 이상의 청산 우선주가 부여되는 것을 가장 우려한다. 향후 불리한 매각 딜 발생 시 기존 투자자들이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반면 신규 투자자들은 투자 금액 대비 많은 지분을 보유한 초기 투자자들이 추가 자금을 투자하지 않을 경우를 우려해, 모든 투자자의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해 자본금 증자 상황에서 지분 희석을 강제하는 페이투플레이(Pay to Play) 조항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투자 전문 기업 파운더콜렉티브(Founder Collective)의 제너럴 파트너 미샤 로센브룸(Micah Rosenbloom)은 “추가 투자 라운드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건 증자로 인한 지분율 희석”이라고 설명하며 “기업 지분 구조에 어두운 초기 투자자는 자신이 보유한 기업 가치가 계속 감소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