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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에 몸살 앓는 파나마, 광산 개발 '급브레이크'에 韓도 '난처' 당장 영향은 적겠지만, "파나마 대선 이후 동광 공급에 차질 가능성 있어" 국내 상황에 해외 기업 손실, 론스타 사태의 '데자뷔'
우리 업체가 일부 지분을 보유한 파나마 코브레 구리 광산 개발 사업에 제동이 걸렸다. 파나마 정부와 개발 기업 간 체결한 계약이 파나마 법원에 의해 위헌 판단을 받으면서다. 시위의 직접적인 요인은 정부가 짧은 기간 내에 광산 개발 승인법을 재빨리 통과시킨 데 있었다. 실제 파나마 정부는 단 5일 만에 해당 법안을 통과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국가 내부 상황에 의해 해외 기업 입장에 있는 우리나라 또한 손실이 불가피해지면서 입장이 다소 난처하게 됐다.
파나마 대법원 "광업권 계약 승인법은 '위헌'"
파나마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8일(현지 시각) "지난 10월 20일 발효된 정부와 미네라파나마(Minera Panamá S.A.) 간 광업권 계약 승인법은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결했다. 코브레 광산을 개발하는 미네라파나마는 캐나다 업체인 퍼스트퀀텀미네랄(FQM)에서 90%, 한국광해광업공단(옛 광물자원공사)에서 10%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현행 파나마 헌법에 따르면 모든 광물 매장지는 국가 소유다. 이와 관련해 마리아 에우헤니아 로페스 대법원장은 "대법관 9명 만장일치로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며 "해당 법률은 생명권과 오염되지 않은 환경에서 거주할 권리 등 지역 주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 경제 성장을 추구하는 민간투자에서 발생하는 이익은 주민의 권리보다 앞설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계약 과정에서 검토된 환경영향평가 보고서가 2011년에 작성된 것이란 점도 지적했다. 최근의 상황을 반영할 수 없어 정보 접근권을 위반한 행위라는 것이다. 대법원은 "비슷한 사유로 과거에 유사 법령에 대해 위헌 결정을 받았음에도 문제점을 고치지 않은 채 다시 계약한 것은 삼권분립 정신에 대한 모독"이라며 파나마 정부를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이는 파나마 환경단체가 2017년에도 유사한 소송에서 승소했던 점을 언급한 것이다. 최근 파나마 정부가 재협상에 나서 FQM과 재계약을 맺게 된 것도 당시 소송 결과가 단초가 됐다.
"광산 개발 악영향 다분, 너무 성급했다"
이번 사건의 시작은 지난달 20일 공표된 ‘파나마 정부와 미네라파나마 간의 광산 개발 양허계약 승인법(Ley 406 de 20 de octubre de 2023)’이었다. 시위의 직접적인 요인은 정부가 단 5일 만에 광산 개발 계약 승인법을 통과시킨 의사결정 과정에 있다. 실제 해당 법률은 상당히 바쁘게 처리됐다. 10월 16일 페데리코 알파로(Federico Alfaro) 산업부 장관이 해당 승인법을 의회로 제출했고, 20일 의회에서 이를 최종 승인했다. 또 같은 날 라우렌티노 코르티소(Laurentino Cortizo) 대통령이 최종 서명해 관보에 ‘제406번 법(Ley 406)’으로 공표했다. 파나마 법률은 고나보에 공표하는 순간 효력을 가진다. 이에 파나마 국민들 사이에선 "주민의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채 정부가 성급하게 결정을 내렸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파나마 내 시민사회단체들은 환경 오염 등 악영향이 다분한 개발에 극도로 반대하고 있다. 이들은 "고도의 채굴기술을 기반으로 한 ‘노천광산(open-pit)’ 개발 방식은 주민의 고용을 크게 활성화할 수 없다"며 "도시빈민층의 생활 여건 개선에도 도움 되지 않는 광산 개발은 오히려 폐수를 발생시켜 돌이킬 수 없는 수자원 및 토양오염을 초래할 수 있다"고 일갈했다. 이들의 시위가 거세지자 파나마 정부는 군대까지 동원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이날 결국 대법원은 광산 개발에 제동을 걸었다. 코르티소 파나마 대통령도 자신의 SNS 계정을 통해 "대법원의 결정을 겸허히 수용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이번 사건으로 FQM은 적잖은 손해를 입게 될 전망이다. 로이터통신은 "이번 판결로 FQM은 콩고민주공화국에서 광산 계약 취소에 대한 중재 절차를 제기한 뒤 자산 매각 방식으로 철수한 10여 년 전의 경험을 되풀이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우리나라 또한 미네라파나마에 1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장기적인 손실을 입을 수 있다. 이번 파나마 시위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제406번 계약승인법은 광해광업공단을 '관계사' 및 '가입사(afiliado)'로 명시하고 있다. 때문에 해당 기업은 일반적으로 캐나다 회사로 인식되고 있지만, 일부 SNS 게시물 등에서 '캐나다와 한국 합작기업'으로 표기된 경우가 있어 사태가 심화할 경우 한국이란 국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 또 2022년 기준 한국은 파나마의 제3위 동광(HS 2603) 수출 대상국이다. 현재 시위가 당장 광산 조업이나 한국의 동광 공급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작다고 평가되지만, 이번 시위의 배경에 2024년 5월로 다가온 파나마 대선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고 있어 갱신된 계약에 대한 향후 안정성에 대해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는 형국이다. 당장 계약 갱신이 추진된 것도 기존 승인된 계약법(1997)의 절차상 하자를 이유로 대법원이 위헌 판결(2018)을 내림에 따라 촉발된 것이니 만큼 꾸준한 모니터링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파나마, 韓 론스타 사태와 닮은꼴?
한편 이번 파나마 시위 사태를 두고 일각에선 우리나라의 '론스타 사태'가 떠오른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정부 및 국가 내부 상황으로 인해 해외 기업이 손실을 보게 됐다는 점에 공통 분모가 있다는 시각에서다.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는 지난 2003년 외환은행 지분 51%를 1조3,834억원에 인수한 뒤 2012년 하나금융지주에 이 지분을 3조9,156억원에 팔았다. 이 과정에서 론스타는 한국 정부가 매각 승인을 늦게 내려 외환은행을 더 비싸게 팔 수 있었음에도 손해를 봤다며 2012년 11월 ISD를 제기했다. ISD는 외국 투자자가 투자 국가의 법령이나 정책으로 인해 이익을 침해받은 경우 국제중재를 통해 손해배상을 받도록 한 제도다. 당시 한국 금융당국은 론스타를 둘러싼 각종 의혹, 외환은행 ‘헐값 매각’ 논란에 대한 검찰 수사 등으로 인해 매각 승인 지연이 불가피했다고 반박했다.
다만 중재재판부는 금융 쟁점 부분에서 론스타 측 주장 일부를 받아들였다. 론스타는 2011~2012년 하나금융에 대한 외환은행 매각 과정에서 금융당국이 부당하게 매각 승인을 지연했고 하나금융과 공모해 외환은행 매각 가격을 인하하도록 압력을 가해 자신들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는데, 중재판정부는 금융위가 매각 가격이 인하될 때까지 승인을 지연한 행위는 '금융당국의 권한 내 행위가 아니다'fk며 공정·공평대우 의무 위반에 해당한다고 판정했다. 해당 사건의 핵심 쟁점이 금융당국의 승인 지연에 정부의 부당한 압박이 있었는지 여부였던 만큼, 중재판정부가 이를 인정한 이상 사실상 우리나라 입장에선 패소한 판결이 됐다. 이는 정부 상황에 따라 해외 기업이 손해를 입었단 정황이 보다 확실시됐다는 의미기도 하다. 파나마 정부와 우리 정부 사이의 '데자뷔'가 이번 시위 사태의 핵심을 찌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