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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자 누적 사업, 최소 인원만 남기고 인력 감축
시장·기업 성장 멈추며 중단되는 프로젝트 줄 이어
“IT 업계, 비대면 문화 강조하며 필요 이상 채용”
네이버와 카카오를 필두로 한 정보통신(IT) 업계가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실적이 부진한 계열사를 위주로 대규모 인원 감축을 단행하면서다. 가파른 성장세를 거듭해 온 IT 산업이 성장을 멈추고 과잉 채용 정상화 등 자정 단계에 돌입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연초부터 대규모 정리해고, 카카오 내부에선 노조 반발도
19일 업계에 따르면 네이버는 최근 영어교육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을 운영하는 계열사 케이크의 인력을 50% 이상 감축했다. 케이크는 네이버 자회사 스노우가 주도한 신사업 계열사 중 하나로, ‘글로벌 1위 언어학습 앱’을 선보이겠다는 포부 아래 2018년 3월 론칭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매년 적자를 벗어나지 못했다. 네이버는 누적된 적자에 조직을 유지하기가 어렵다고 판단, 최소 인력으로 기존 서비스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번 결정에 따라 케이크 인력의 50%가량이 스노우, 네이버파이낸셜, 크림 등 8개 계열사로 이동했다. 네이버는 지난해 3월 영화 정보 제공 페이지 네이버영화 서비스를 중단하며 대대적인 사업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이후 7월에는 동영상서비스 플랫폼 네이버TV를 또 다른 콘텐츠 플랫폼 나우로 통합했고, 12월에는 문서작성도구 네이버오피스와 PC백신, 퀴즈 등의 서비스를 종료했다. 이 외에도 그라폴리오, PC부동산경매, 엑스퍼트 등이 서비스 통폐합을 앞두고 있다.
카카오도 지난해 하반기부터 본격 몸집 줄이기에 나섰다. 당초 카카오는 실적 부진 사업 부문의 인력을 그룹 내 다른 계열사로 옮기는 ‘공동체 이동 지원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등 인력 재배치의 의지를 보였지만, 자금 사정의 악화로 인력 감축을 피하지 못했다. 기업 간 거래(B2B) 부문 자회사 카카오엔터프라이즈는 지난해 8월 희망퇴직을 시행했고, 비슷한 시기 카카오게임즈의 자회사 엑스엘게임즈도 희망퇴직 절차를 밟았다.
구조조정이 본격화하면서 기업 내 분위기도 얼어붙었다. 카카오 노동조합 크루 유니언은 지난해 7월 경기도 성남시에 위치한 카카오 판교 사옥 앞에서 집회를 열고 회사 측에 직원들의 고용 안정 방안 마련을 촉구했다. 카카오 측은 경영효율화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못 박았다. 배재현 카카오 공동체투자총괄대표는 당시 “(계열사 전체적으로) 일부 경쟁력이 낮다고 판단되는 사업은 정리를 계획 중”이라며 한동안 구조조정이 계속될 것임을 시사했다.
게임 업계, 잇따른 프로젝트 무산
포털 서비스를 넘어 전체 IT 업계로 범위를 확대하면 이같은 감원 움직임은 더 활발하게 드러난다. 온라인 게임사 컴투스는 지난해 1월에 이어 올해도 두 자릿수 감원에 돌입했다. 최근 게임 시장의 상황과 경영 환경 등을 고려한 결과 프로젝트의 효율화가 절실하다는 결론에 이르렀으며, 이 과정에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컴투스는 지난 2022년 4분기부터 지난해 3분기까지 연이은 영업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4분기 실적은 아직 발표 전이지만, 증권가는 컴투스가 39억원가량의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일부 미니 게임을 제외하면 소비자들의 이목을 끌만한 대작을 출시하지 못했고, 미디어 산업에서도 영업손실이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컴투스 외에도 엔씨소프트, 넷마블, 넥슨, 스마일게이트 등 다수의 게임사가 사업 축소와 함께 인원 감축을 단행했다. 특히 넷마블은 넷마블에프앤씨 산하 자회사 메타버스월드의 약 70명에 달하는 전 직원에게 권고사직을 통보했다. 메타버스 월드는 기존 넷마블의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한 메타버스 ‘그랜드크로스: 메타월드’를 개발해 왔지만, 메타버스에 대한 시장의 관심이 시들해지며 프로젝트 폐기 수순을 밟게 됐다.
심지어 세계 최대 검색 엔진을 자랑하는 구글도 구조조정 바람을 피하지 못했다. 구글은 지난해 1월 전체 인력의 약 6%에 달하는 1만2,000여 명을 감원한 데 이어 올해 초에도 어시스턴트(AI 비서) 프로그램과 하드웨어 등 부문에서 수백 명을 해고했다. 굴지의 빅테크로 군림해 온 구글도 시장의 성장 둔화와 사업성 악화에서는 구조조정 외 다른 방도를 찾지 못한 셈이다.
“AI 인력 대체설은 과도한 해석, 시장 정상화에 가까워”
일각에서는 IT 기업들이 인공지능(AI) 도입을 늘리며 사람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지만, 전문가들은 과도한 해석이라고 입을 모았다. 다수의 IT 기업이 비대면 문화를 강조했던 팬데믹 당시 채용을 지나치게 많이 한 만큼, 최근의 감원 움직임은 사업 효율화를 위한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는 것이다.
애플이 음성 기반 AI 서비스 시리 개발팀을 해산했다는 사실도 이같은 해석에 힘을 싣는다. 지난 14일(현지 시각) 블룸버그를 비롯한 다수의 현지 매체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 있는 시리 개발팀이 해체되면서 120명이 넘는 직원이 일자리를 잃은 위기에 처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업계에서는 애플의 이같은 결단이 철저한 사업성 분석에 따른 결과라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기술 고도화에 추가 자금을 투입할 만큼의 미래 가치가 확인되지 않은 만큼 AI의 도입과는 무관하게 해당 프로젝트를 중단한 것에 불과하다는 해석이다.
IT 업계의 과잉 채용을 정상화하려는 움직임은 한동안 지속될 전망이다. 기술 분야 종사자 해고 현황을 집계하는 레이오프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에서는 26만2,682명의 기술직이 직장을 잃었다. 이는 2022년(16만4,969명)과 비교해 59.2% 증가한 수준이다. 골드만삭스 관계자는 “IT 업계의 경영 효율화 바람으로 전 세계 최대 3억 개의 정규직 일자리가 사라지거나 줄어들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