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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슬림', 발사 135일 만에 달 표면 안착 전력 생산 실패, 탐사 여부는 미지수 우주항공청 설립 앞둔 한국 현주소는?
일본의 무인 달 착륙선 슬림(SLIM)이 달 착륙에 성공했다. 미국과 옛 소련, 중국, 인도에 이어 세계 5번째로 달 착륙에 성공한 일본은 지구로부터 평균 38만㎞ 떨어진 달을 초정밀 조준해 착륙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본격적인 탐사에는 먹구름이 낀 상태로, 일본 내에서는 달 착륙을 자축하는 분위기와 ‘반쪽짜리 성공’을 아쉬워하는 분위기가 공존하는 모양새다.
“슬림 대체로 잘 움직이지만, ‘겨우 합격’ 불과해”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는 20일 오전 2시께 기자회견을 열어 슬림이 이날 오전 0시 20분 달 표면에 성공적으로 착륙한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쿠니나카 히토시 JAXA 우주과학연구소장은 “슬림이 달 연착륙에 성공해 데이터를 정상적으로 지구에 보내고 있으며, 대체로 잘 움직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본격적인 달 탐사에는 다소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쿠니나카 소장은 “슬림은 착륙 후 통신체계 확립까지 마친 상태지만, 현재 태양전지에서 전력을 생산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고 설명하며 “슬림으로부터 수집 가능한 데이터를 면밀히 분석하고, 향후 구체적으로 공유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슬림은 탑재된 배터리를 이용해 통신 중이며, 당초 계획했던 달 표면 암석에 포함된 광물 탐사 등은 대폭 축소할 전망이다.
높이 2.4m, 폭 2.7m, 무게 590㎏의 슬림은 달의 원하는 지점에 착륙할 수 있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어 ‘달 저격수(Moon Sniper)’로 불린다. 지난해 9월 JAXA는 슬림을 소개하며 “착륙할 수 있는 곳에 발을 디디는 시대에서 ‘원하는 곳에 착륙하는 시대로의 전환을 의미한다”고 밝힌 바 있다.
같은 달 일본 규슈 가고시마현 다네가시마 우주센터에서 H2A 로켓 47호기에 실려 발사된 슬림은 110일 만인 12월 25일 달 궤도 진입에 성공했다. 그리고 이달 15일부터 본격적인 달 착륙 준비에 돌입했다. 19일부터 시작된 하강은 다음 날로 넘어가는 자정께 달 상공 15㎞에 도달했고, 약 20분에 걸쳐 착륙했다. 슬림이 착륙한 지역은 1969년 미국 아폴로 11호가 인류 최초로 발을 내디딘, 이른바 ‘고요의 바다’ 남쪽에 위치한 시올리 충돌구(Crater)다. 지금까지 달 착륙선은 모두 평지에 착륙했지만, 슬림은 향후 전개될 달 탐사에 있을지 모르는 험지 착륙 등에 대비해 험준한 경사지를 착륙 지점으로 설정했다.
발사 당시 JAXA는 슬림의 임무 성공 기준으로 △달 표면 착륙 △100m 오차범위 내 착륙 △일몰까지 활동 지속 등 3가지를 제시했다. 이번 착륙에서 슬림은 탑재된 카메라를 통해 달 표면을 실시간 관찰, 스스로 착륙 지점을 설정하고 무사 안착하면서 소기의 성과를 이뤘다. 다만 태양 전지가 전력을 생산하지 못하면서 착륙선의 수명이 줄어드는 등 목적한 탐사 활동은 이루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야마카와 히로시 JAXA 이사장은 슬림의 달 착륙을 “최저한의 성공”으로 평가하며 “이번 프로젝트의 점수는 ‘겨우 합격’ 수준인 60점”이라고 말했다.
재사용 로켓 개발로 해외 수주 유치 박차
슬림의 ‘60점짜리’ 성공에도 일본은 항공우주 분야에서 한국보다 10년가량 앞서 있다는 평가를 듣는다. 일본은 우주발사체 개발 및 운용 기술 수준에서 미국의 85%를 기록하며 60%에 불과한 한국을 크게 앞선 것을 비롯해 우주물체 관측 및 우주 방사선, 위성 통신 장애 등 우주환경 관측·감시·분석 기술에서도 미국의 79% 수준을 자랑하며 한국(55.5%)을 크게 앞질렀다.
실제로 일본은 1980년대 미국의 델타 로켓 엔진을 수입해 일찌감치 H-1로켓을 발사하는 데 성공했고, 지금은 H2A(액체엔진), 입실론 로켓(고체엔진) 등을 운용 중이다. 나아가 JAXA는 미쓰비시 중공업 등 민간기업과 협력해 차세대 로켓 H3를 개발 중이다. 재사용 로켓으로 개발 중인 H3는 2026년까지 시제품 개발 및 2030년 첫 발사 및 실용화를 목표로 연구가 한창이다. JAXA 로켓의 기체를 재사용할 경우 발사 비용을 종전의 25% 수준으로 낮출 수 있어 해외 국가들의 위성 발사 수주가 급증할 것이란 기대를 내비치기도 했다.
여야 갈등에 발목 잡힌 우주항공청, 기술은 ‘제자리걸음’
오랜 시간 산업, 안보, 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우열을 가려온 일본이 항공우주 분야에서 빠른 속도로 앞서 나가자 한국 항공우주 기술의 현주소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지는 모양새다. 2022년 자체 기술로 생산한 위성 발사체 누리호를 쏘아 올린 이후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과제 중 하나였던 우주항공청 설립이 속도를 내는 등 관련 기술 개발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되면서다.
하지만 실제 우주항공청 개청과 각종 연구 활성화까지는 적지 않은 난항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기관의 위상과 연구 범위, 운영 방안 등을 두고 정부와 야당이 설전을 거듭하는 사이 예산 편성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오는 5월 설립을 목표로 조직 체계 정비 및 인력 유치에 돌입한 우주항공청은 과학기술정통부와 산업통상자원부의 우주 정책 업무를 이관받게 되며, 두 부처의 관련 예산을 넘겨받아 첫해 8,000억원 규모의 예산 투입이 점쳐진다. 다만 기획재정부의 협의 등을 남겨둔 만큼 축소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민간과의 적극적 협업을 위한 인프라 조성도 과제로 주어졌다. 이노스페이스 등 민간 발사체 기업 대다수가 국내에 발사장이 없어 해외를 전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남 고흥에 위치한 나로우주센터의 기존 발사시설은 누리호와 차세대발사체 등으로 포화상태에 도달한 지 오래다. 이복직 한국연구재단 우주기술단장은 “한국은 오랜 시간 국가 주도 우주개발을 해왔기 때문에 기업의 경쟁력이 약하다는 평가를 듣는다”고 짚으며 “우주항공청과 민간기업이 공동개발 주체가 되는 사례를 확대해 기술 개발을 앞당겨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