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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어드십 코드 손질한 정부, 기업 밸류업에 연기금 동참 촉진 정작 연기금은 '팔자' 행보, 주식 시장 '한파' 영향 휘둘리는 국민연금, 올해의 낚시꾼은 정부?
앞으로 연기금 및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자가 투자 대상 회사의 장기 기업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점검해야 하는 책무가 생긴다. 기관투자자들의 행동 지침인 '스튜어드십 코드'를 7년 만에 손질함으로써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들이 기업 밸류업 지원 방안에 동참할 수 있는 구체적 근거를 만들겠단 취지다.
밸류업 꿈꾸는 정부, 스튜어드십 코드 개정 나섰다
14일 금융위원회는 서울 여의도동 소재 한국거래소에서 김소영 부위원장 주재로 '기업 밸류업 지원 방안 관련 기업투자자 간담회'를 열고 스튜어드십 코드 가이드라인 개정 등을 논의했다. 지난 2017년 처음 도입된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관투자자들이 타인의 자산을 운용하는 수탁자로서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 이행해야 할 행동 지침으로, 현재 국민연금 등 연기금 네 곳을 포함해 은행·보험·기관 등 222곳이 가입돼 있다. 정부가 스튜어드십 코드 가이드라인에 칼을 대는 건 발간 이후 7년 만의 일이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7가지 원칙으로 구성돼 있는데, 기관투자자들은 세부 원칙을 모두 지키는 것을 기본으로 하되 예외적으로 일부 원칙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그 사유와 대안을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해야 한다.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반영될 원칙은 7개 원칙 중 세 번째인 '기관투자자가 투자대상회사의 중장기적 가치를 제고할 수 있도록 주기적으로 점검하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한국ESG기준원에 따르면 개정 가이드라인엔 '투자대상회사가 기업가치를 중장기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한 전략을 수립·시행·소통하고 있는지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 담길 예정이다. 기관 투자자들이 투자대상회사가 밸류업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지 짚고 그렇지 않을 경우 참여를 독려할 수 있는 구체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대목은 실제로 막대한 기관 돈이 주주가치 제고 노력을 하는 기업들로 쏠릴 가능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상당히 중요하게 다뤄진다. 국민연금 등 소위 '큰 손'들이 투자 기업의 밸류업 참여나 이행 여부 등을 요구하는 등 기업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공산이 커지는 셈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소영 부위원장은 “기관투자자들이 투자대상회사와 원활하게 소통하고, 기업가치를 보다 면밀히 평가해 투자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기관투자자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박현상 공무원연금공단 주식운용팀장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근본 목적은 한국 자본시장 및 상장기업의 체질개선이기 때문에 장기와 단기로 구분된 정책 아젠다가 필요하다”면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기관투자자로서 적극 협조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정부 기대 높지만, 순매도 이어가는 연기금
다만 문제는 최근 국내 주식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연기금들의 주식 판매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1월 연기금은 유가증권 시장에서 총 9,449억원을 순매도했다. 새해 첫 개장일 488억원 순매도로 시작한 연기금은 이후 19일까지 14거래일 연속 팔자 기조를 유지했다. 이에 시장에선 “국내 주식 단계적 축소 방침을 감안해도 최근 국민연금의 순매도는 과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작년 10월 말 기준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비중은 13.2%다. 연말 증시 반등을 고려하면 현재 비중은 14% 안팎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올해 목표 비중인 15.4%를 밑도는 수치다. 목표치를 초과한 것도 아닌데 연기금은 새해 들어 국내 주식을 1조원이나 팔아치우고 있는 셈이다.
연기금의 이 같은 '과한' 순매도는 수년째 반복되는 양상이다. 유가증권 시장에서 연기금은 2020년 2조8,130억원을 순매도한 데 이어 2021년(24조1,440억원)과 2022년(2조7,490억원), 지난해(2조9,470억원)에도 ‘팔자’를 택했다. 연기금의 행보는 사실상 국민연금의 행보로 취급된다. 국민연금은 굴리는 돈만 1,000조원가량에 달하는 세계 3대 연기금 중 한 곳이기 때문이다. 결국 거듭된 팔자 행보에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비중은 매년 목표치를 크게 하회하고 있다. 정부는 국민연금에 '기업 밸류업 참여'의 역할을 바라고 있지만, 정작 국민연금은 이와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는 셈이다.
'고래' 국민연금의 딜레마
다만 일각에선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투자 비중 축소를 마냥 국민연금의 탓으로 돌려선 안 된다는 반응도 나온다.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 투자 비중을 낮추는 건 오히려 시장 여론의 영향이 컸다는 것이다. 지난 2018년 10월 국회에서 열린 증시 관련 토론회에 참석한 이수철 당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기금운용본부장(CIO) 직무대리도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투자 비중 축소는 최근 결정한 것이 아니고 수년째 분산투자 차원에서 진행돼 왔다. 연금 운용의 공공성 원칙에 따라 국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차원에서 연금 운용 포트폴리오를 재편하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당시 우리 증시는 코스피 지수가 2,600선에서 1,900선까지 추락했고, 국민연금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 만에 6조원가량 손실을 봤다. 반면 미국 증시는 사상 최고가를 연일 경신하면서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비중을 줄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시장을 중심으로 쏟아졌다. 그런데 2021년께 코스피 지수가 다시 3,000선을 넘어서면서 여론이 뒤바뀌기 시작했다. 국민연금이 약 15조원가량의 국내 주식을 순매도하자 동학개미들로부터 국민연금이 박스피의 원흉이란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이들은 국민연금이 주가 부양을 위해 국내 주식을 더 사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기 시작했다.
결국 시장 여론에 따라 갈팡질팡하는 국민연금이 이번엔 정부에 의해 좌지우지될 상황에 놓였다는 비관적 의견이 나온다. 지난 몇 년 동안 국내 주식 투자 비중을 축소할 것을 강조하더니, 이제는 기업 밸류업을 지원하겠단 미명 아래 국내 주식을 강제로 배정하는 모양새가 연출될 가능성까지 생긴 탓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우려를 표하고 있다. 국민연금이 다시금 국내 주식 비중을 높일 경우 증시에 미치는 영향력이 더 커질 수 있단 것이다. 이런 와중 국내 증시가 거듭 하락을 맞는다면 국민연금이 그 위험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게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국민연금이란 거대한 고래의 움직임을 강제할 땐 보다 면밀한 시장 분석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