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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G넥스원 근태 관리 시스템에 직원들, "불합리하고 비효율적"
경직적 시스템에 R&D 효율 우려도, 군 출신 사장 선임 영향일까
"IT기업서 이미 실패한 바 있는데, 구태여 다시 꺼낼 이유 없다"
방위산업업체 LIG넥스원이 새로운 근태 관리 시스템 도입을 두고 직원들의 반발에 부딪혔다. 20분간 마우스가 움직이지 않으면 비업무 모니터링 시스템에 시간이 적립되는 게 시스템의 골자인데, 직원들은 "PC 활용이 적은 직원들까지 PC로 근무 여부를 판단하는 건 불합리하다"는 목소리를 쏟아내는 모양새다. 근태 관리 실패의 책임을 직원에 떠넘기는 규모가 지나치다는 비판도 있다. 의견 수렴 및 정책 재설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LIG넥스원, '마우스' 감시해 근태 관리한다?
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LIG넥스원은 오는 15일부터 유연근무제 시행 속 직원들의 근태 관리를 위해 ‘비업무 모니터링 시스템’을 도입한다. 이 시스템은 20분 이상 직원들이 이용하는 모니터의 마우스 움직임이 없으면 비업무 모니터링 시스템에 시간이 적립되는 게 특징으로, 적립된 시간 관련 기록은 주 1회 팀장에게 메일로 자동 발송된다. 이에 대해 LIG넥스원 관계자는 "20분 이상 자리 비움이 생긴 이유가 회의나 미팅 등 적합한 자리 비움이었을 경우엔 윗선에 소명하면 된다"며 "업무 시간을 명확히 해 합리적으로 (직원들의) 근무 환경을 관리하기 위해 해당 시스템을 도입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시스템 도입을 두고 직원들은 거센 반발을 쏟아내고 있다. PC로 일하는 시간이 많지 않은 직원들까지 PC를 활용해 근무 여부를 판단하는 건 불합리한 일인 데다, PC를 활용할 일이 많다 해도 마우스 사용 시간을 근태의 근거로 삼는 건 지나친 행태라는 것이다. 경고와 소통도 하지 않은 채 대규모의 징계부터 내려놓고 이를 앞세워 근태 관리 시스템을 일방적으로 도입했다는 지적도 있다.
매주 월요일에 지난 한 주에 대한 직원들의 자리 비움 내역이 조직장에게 메일로 알람이 가는 점도 직원들의 반발을 사는 지점이다. 사유가 소명돼도 총 이석 누적 시간이 부서장에게 통보돼 인사고과 평가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 등 각종 커뮤니티에서도 반대 의견이 주를 이룬다. “마우스 감시라니, 인권 침해다”, “업무상 자료를 찾아 읽는 경우가 많은데 단지 마우스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근로 시간이 아니라니 말이 안 된다”, “최대 매출, 최대 영업이익 기록 후 돌아온 것은 모니터링 시스템” 등 회사 내부 직원의 게시글은 이미 폭발 직전의 상태다. 다른 직장에 근무하는 블라인드 이용자들도 "재택이 아닌데도 그렇게 하는 거냐", "스페이스바에 지우개 올려놓으면 그만 아니냐", "지x을 하는구나" 등 부정적인 반응을 쏟아냈다.
"지나치게 경직된 시스템, R&D 효율 감소 우려"
LIG넥스원 사내에서는 팀마다 제각기 성격과 업무 방식이 달라 이 같은 유연성 없는 시스템은 정착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거듭 나오는 모양새다. 한 관계자는 "LIG넥스원 근무자의 약 60%는 연구·개발(R&D) 인력"이라며 "이들은 회의, 연구 자문, 외근 등 업무가 많아 근무시간을 분 단위로 감시할 경우 효율성이 낮아지는 것은 물론 오히려 근무 시간이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생긴다"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해 기준 LIG넥스원 전체 임직원 4,284명 가운데 R&D 관련 인력은 57.5%에 달한다. 다른 관계자는 "최근 LIG넥스원은 사업 분야 확대에 따라 직원이 급증하자 R&D 센터를 신규 조성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며 "직원 수 급증에 따라 R&D 인력을 더욱 효율적으로 활용할 근무 환경을 조성하겠단 게 LIG넥스원의 목표였는데, 이번 근태 관리 시스템은 이 같은 목표에 오히려 역행하는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선 이번 마우스 근태 관리 사태가 새로 임명된 LIG넥스원 사장의 입김이 적잖이 들어간 처사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앞서 LIG넥스원은 지난 3월 말 정기 주주총회에서 신익현 사장을 사내이사로 신규 선임했다. 작년 12월 인사에서 사장으로 승진해 올해 1월 1일부터 사장직을 수행하다 주총을 통해 대표이사로 공식 취임한 것이다.
신 사장은 2007년 청와대 안보전략비서관실 행정관, 2010년 공군 제8전투비행단장, 2013년 합동참모본부 전력기획처장 등을 지내다 지난 2017년 LIG넥스원에 합류했다. 신 사장이 주목받은 건 그의 출신성분이 공군사관학교인 탓이다. 군 관계자 출신 인물이 요직에 앉은 후 갑작스럽게 강직된 정책이 하달된 것도 이와 관련이 없진 않을 것이란 게 일부 커뮤니티 이용자들의 주장이다.
근태 문제 해결 위함이라지만, "책임 소재는 분명히 해야"
이 같은 의견이 나오는 건 지난날의 LIG넥스원은 방산업체임에도 상당히 유연한 모습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LIG넥스원은 지난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확산하기 시작할 당시 내부 확진자가 나오기 전부터 필수 인원을 제외하고 전 직원을 대상으로 재택근무를 실시한 바 있다. 당시 사내·외 대면 회의 및 외부 인원 출입, 사업장 간 이동과 회식을 전면 금지했으며,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에 따라 임직원 대상 출장 자제, 다중 밀집 공간 방문 자제 등 내용을 임직원에게 공지하고 방역을 강화하기도 했다. 방산업체가 선제적인 코로나19 대응을 진행한 건 LIG넥스원이 최초였다. 결국 마우스 근태 관리 시스템은 유연한 대응을 보였던 LIG넥스원이 신 사장 체제 아래 경직되어 갈 것임을 암시하는 발단의 전개인 셈이란 게 이들 주장의 근간이다.
다만 LIG넥스원의 선택이 어쩔 수 없었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LIG넥스원이 급격한 변화를 꾀한 원인은 애초 각종 근태로 말썽을 일으킨 내부 직원의 원죄 때문이란 것이다. LIG넥스원에 따르면 일부 직원들은 수면실에서 부정 근태를 저지르거나 개인 운동 시간을 업무 시간으로 조정하는 등 각종 부정을 일삼았다. 일부는 휴일 근무 시 자택 근처 타 사업장으로 출근 등록을 한 뒤 소속 사업장으로 이동하기도 했으며, 사원증 태그 시스템을 악용해 근무 중이 아님에도 근무 중인 것처럼 꾸미는 부정을 저지른 이도 있었다. LIG넥스원이 근무 시간 측정 시스템을 전면 변경하고 나선 배경이다.
문제는 LIG넥스원이 일부 직원의 일탈 행위에 따른 책임을 지나치게 타 직원에까지 전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내부에선 "PC상 퇴근 버튼을 눌러야 종무 처리가 되면, 정시에 자리에서 업무를 마쳐도 게이트 밖을 나가기까지 초과 근무가 돼버린다"며 "근로 시간 관리를 강화한다면서 52시간이 지나면 PC를 사용할 수 없는 PC 오프 제도는 정작 빼놓는 건 의도적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LIG넥스원이 새 근태 시스템을 도입한 데) 이유가 없는 건 아니지만, 저런 시스템을 제안하고 받아들인 사람은 모자란 것 같다", "그런 꼼수야 어느 회사나 다 있는 건데, 그걸 막자고 마우스 근태 시스템을 도입한 건 빈대 잡겠다고 집에 불을 지르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이해는 되지만, 아무리 그래도 업무 효율을 너무 떨어뜨리는 처사 아니냐" 등 회의적 의견이 지배적이다.
실제 LIG넥스원이 취하고자 하는 방식은 이미 과거 게임·IT업체 등에서 자행된 바 있다. 당시에도 직원들 사이 분 단위로 직원들을 감시한다는 비판이 빗발쳤고, 결국 해당 기업들은 제도 도입 자체를 무산했거나 다른 형태로 바꿔 운영을 이어가는 상태다. 예컨대 넥슨의 경우 직원들이 사용하는 마우스가 일정 시간 움직이지 않더라도 비업무로 바로 전환하지 않고 모니터링 시스템상 기록으로만 남게 해놨다. 엔씨소프트는 회사 건물의 정문 출입구부터 흡연구역, 사내병원, 헬스장 등에 태깅(Tagging) 시스템을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공간을 단위로 근태 관리를 하기 위해서다. 다른 기업에서 실패한 케케묵은 정책을 구태여 오늘날 다시 꺼내 들 이유는 없다. 근태의 책임은 직원에게 있으나 근태 관리의 책임은 기업에 있음이 분명한 만큼, LIG넥스원은 직원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보다 고차원의 정책을 다시 짜낼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