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재무 위기에 허덕이는 효성화학, 작년 총부채 3조537억원 수준
특수가스사업부 매각 타진했지만, 연대책임 의무가 '족쇄'
돌파 전략은 영업양수도, "효성이 특수가스 신설법인 모회사 될 듯"
재무 위기에 빠진 효성화학이 특수가스사업부 소수 지분(49%) 매각을 추진 중인 가운데, 딜을 원안대로 진행할 시 그룹 지주사 효성이 특수가스사업을 담당할 신설법인을 직접 품는 방안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수가스사업을 영위하는 계열사가 지주사의 손자회사가 아닌 자회사가 되는 셈이다.
효성화학 특수가스사업부, 지주사 효성이 직접 품나
22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효성은 효성화학 특수가스사업부 신설법인의 모회사가 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효성화학이 특수가스사업과 관련된 자산을 신설법인에 양도한 뒤 해당 법인에 효성과 재무적투자자(FI)가 51:49로 출자하는 방식을 택할 것으로 알려졌다. FI는 구주를, 효성은 신주를 인수해 지분율을 맞추기로 했다. 이 방안을 택할 경우 효성화학은 효성과 FI에 특수가스사업을 전량 파는 것이기에 한순간 막대한 자금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효성화학은 이 같은 방안과 특수가스사업부의 경영권 지분을 파는 방안 등을 모두 열어놓고 일부 원매자에게 관련 사실을 통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통보받은 원매자들은 원안대로 소수 지분을 사는 경우와 경영권을 인수하는 경우로 나눠서 이달 말까지 상세한 조건을 다시 제안하기로 했다.
다만 특수가스사업부 경영권 지분 매각의 경우 실제로 이뤄지지는 않을 공산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효성 측이 크게 원하지 않는 데다 효성 측과 원매자들 간 입장 차가 커 매각 성사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예비입찰에서 FI들이 적어낸 지분 49%의 가격은 3,500억~4,000억원 수준이다.
그러나 업계는 효성 측이 경영권 매각으로 선회할 경우 FI들이 써낸 가격의 2배 이상(경영권 프리미엄을 더한 가격)을 원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의 몸값도 이미 비싸다는 게 FI의 대체적인 입장임을 고려하면 이들 간 입장이 한쪽으로 모이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관계자들의 평가다.
분할 대신 영업양수도, "연대책임 의무 벗겠단 것"
효성이 특수가스사업부 직접 매각안을 내놓은 건 효성화학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높은 PP 사업의 업황이 부진을 면치 못하면서 부채가 급증한 가운데 채무 연대책임 문제가 떠오른 탓이다. 상법 제530조의9에 의하면 분할해 설립되는 회사는 분할 전 회사의 채무를 연대해 변제할 책임을 지닌다. 효성화학의 PP 사업 부문 지난해 매출 및 영업이익률은 각각 1조7,572억원, -11.5%(약 2,020억원 영업손실 추정)에 달한다. 매입자가 한순간에 부담을 떠안아야 할 수도 있단 의미다.
그나마 필요한 경우 이 연대책임을 배제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가 정비돼 있으나, 이를 통해서도 빚보증을 전적으로 회피하는 건 불가능하다. 분할되는 회사(특수가스사업부)와 관련 있는 채무만 책임지도록 조율하는 건 가능하나, 이마저도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만 하도록 돼 있다. 알짜인 특수가스사업부가 분리돼 나가면서 부채 3조원에 대한 연대보증 책임을 피하는 게 기존 효성화학 채무자에겐 상당한 악재로 작용할 것임이 명백한 만큼 방지책을 세워둔 것이다.
그러나 이번 효성처럼 물적분할이 아니라 영업·자산양수도를 할 경우 상법상 부채 연대책임 의무에서 벗어날 수 있다. 결국 효성이 특수가스사업부를 직접 품게 된 건 어쩔 수 없는 고육지책이었던 셈이다. 이와 관련해 IB 업계의 관계자는 "다른 회사의 영업이나 자산을 양수해 오는 경우엔 채무 연대책임을 지지 않게 된다"며 "효성화학 입장에선 그것만이 거의 유일한 대안이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효성화학 총부채 3조원, "매각 여의치 않았을 수도"
한편으론 매각 과정이 여의치 않은 탓에 직접 매각안을 전면에 배치한 것 아니겠냐는 의견도 있다. 앞서 효성화학의 특수가스사업부 매각전은 문전성시를 이룬 바 있다. 지난 4월 특수가스사업부 소수 지분 매각 주관사인 KDB산업은행 인수합병(M&A)컨설팅실과 UBS가 발표한 숏리스트도 어펄마캐피탈크레딧, 스틱인베스트먼트, IMM 프라이빗에쿼티(PE), IMM 인베스트먼트, KB자산운용 등 9개사에 달했다.
발목을 잡은 건 역시 부채 연대책임 문제였다. 인수 측이 특수가스사업부의 순차입금 1,800억원을 떠안고 채권단과 협상 과정에서 효성화학의 채무를 연대 보증해야 할 가능성이 높은 탓에 효성 측이 특수가스사업부에 대한 희망 매각가를 온전히 받을 수 없었던 것이다.
불황 장기화로 부채가 늘어난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효성화학의 연결기준 부채는 총 3조537억원까지 확대했다. 유동부채(1년 내 갚아야 할 부채)도 2조1,474억원으로 유동자산(1년 내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 6,992억원의 3.07배까지 치솟았고, 부채비율 또한 4,934.6%로 3년 연속 급증세를 보였다. 업계 관계자는 "자칫하면 현금 부족으로 채무불이행(디폴트) 위기에 내몰릴 수도 있는 상황"이라며 "이 같은 부담을 리턴 없이 떠안으려는 기업은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