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부실 정리 후에도 연체율 고공행진
고금리 대출에 금융 취약층 몰려
‘회수 우선’ 기조 아래 추심 전선 확대

올해 들어 국내 카드사의 연체율이 2%에 근접하며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 일찌감치 부실채권을 대거 매각하며 위험 최소화에 만전을 기울였지만, 연체율 증가세를 막기엔 역부족인 모양새다. 카드론과 현금서비스 같은 고금리 금융상품이 부실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되는 가운데, 개별 카드사들은 추심 인력을 확충하고 조직을 재편하며 자금 회수에 팔을 걷어붙였다. 다만 다중채무자가 몰린 취약 차주 중심으로 부실이 번지면서 실질적 회수는 담보할 수 없는 실정이다.
3년 사이 2배 가까이 치솟은 연체율
20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이정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내 8개 전업 카드사(신한·삼성·현대·KB국민·롯데·하나·우리·BC카드)가 지난 1분기에 매각한 부실채권 규모는 9,505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기록한 6,915억원과 비교해 38%가량 증가한 수준이자, 2021년(7,749억원)과 2022년(6,705억원)의 연간 매각액을 넘어선 수치다.
카드사별로는 롯데카드가 2,798억원의 부실채권을 정리하며 가장 큰 규모를 기록했고, 이어 KB국민카드(2,295억원), 우리카드(1,293억원), 신한카드(1,095억원) 등 순을 보였다. 이 가운데 KB국민카드는 지난해 1분기 매각액(135억원)의 17배에 달하는 부실채권을 매각해 가장 큰 증가세를 보였다.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이들 8개 카드사의 연간 총 부실채권 매각 규모는 지난해(3조3,799억원) 수준을 크게 웃돌 전망이다.
이처럼 카드사들이 부실채권 매각을 확대하고 나선 배경에는 꺾일 줄 모르는 연체율 상승세가 자리하고 있다. 8개 카드사의 실질 연체율(대환대출 채권 포함 1개월 이상 연체율)은 2022년 1분기 1.0%에 불과했지만, 꾸준히 올라 올해 1.93%까지 치솟았다. 특히 하나카드의 올 1분기 연체율은 2.15%로 집계되며 2014년 12월 출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나타내기도 했다.
업계는 국내 신용카드 발급 수가 2년 전 역대 최고치를 찍은 상황에서 서민들의 팍팍한 주머니 사정이 더해지며 연체율이 높아진 것으로 보고 있다. 기업데이터연구소 CEO스코어가 진행한 국내 신용카드 산업 현황 조사에서 국민 1인당 보유한 신용카드 수는 2004년 3.5장에서 2023년 4.4장으로 늘었다. 신용카드 이용 실적 또한 같은 기간 357조4,190억원에서 999조3,730억원으로 3배 가까이 증가했다.
금융당국, 카드론 급증 카드사에 ‘경고’
시장에선 카드업계 연체율 급등이 단순한 소비 지출 연체를 넘어 카드론을 포함한 고금리 금융상품의 무분별한 확장에서 기인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간 카드업계는 수익성 확보를 위해 금리 수익이 높은 카드론, 리볼빙, 현금서비스 등 대출성 상품 영업을 적극적으로 확대해 왔다. 특히 금리가 빠르게 오르던 2022년 이후에는 저축은행이나 캐피탈보다 접근성이 높은 카드론이 급전 수요자들의 주요 통로가 되면서 건전성 악화의 뇌관이 됐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최근 금감원은 카드론 급증세를 보인 일부 카드사에 ‘경영유의’ 조치를 통보하며 이 같은 해석에 힘을 보탰다. 금감원의 정기 검사 결과 경영유의 사항 8건, 개선 사항 15건이 드러난 현대카드는 연체율 자체는 0%대를 유지하고 있지만, 카드론 잔액 증가 폭이 커지며 관리 강화를 요구받았다. 이는 수치상 연체율이 낮아 보여도 대출 구조 자체가 리스크를 내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금감원은 “현대카드의 카드론 이용자 중 저신용자의 비중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으며, 다중채무자의 잔액도 늘어나는 추세”라고 짚으며 “저신용자와 다중채무자 대상 카드론 취급 현황과 연체율 등 건전성 현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리볼빙(일부 결제대금 이월 약정) 최소 결제 비율인 10%를 적용받는 저신용자 비중이 전년 말 대비 급증해 상환 능력 악화 가능성이 있다”면서 “대출성 상품 취급 시 신용도와 상환 능력 등을 고려하는 등 한도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카드사들이 집중적으로 밀어붙였던 현금서비스 상품도 연체율 상승의 한 축이다. 일명 ‘서민 급전 창구’로 불리는 해당 서비스는 이자율이 연 18%에 달하지만, 급하게 현금이 필요한 이용자들 사이에선 여전히 수요가 많다. 여신금융협회에 의하면 지난 1분기 8개 카드사 개인 고객의 현금서비스 사용액은 17조3,990억원으로 전년 동기(16조8,622억원) 대비 6,000억원가량 늘었다.

부실채권 회수 위한 추심 강화 움직임
연체율 상승으로 자금 회수에 비상이 걸린 카드사들은 담당 인력 확대와 조직 개편 등 대응책 마련에 한창이다. 취약 자주가 빠르게 늘어나는 상황인 만큼 맞춤형 관리를 통해 회수율을 높인다는 구상이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채권 회수 인력은 채권량에 따라 수시로 변동되는데, 최근에는 연체율이 늘면서 대부분 카드사가 평소보다 인력을 늘려 운영 중”이라고 설명했다.
채무조정 프로그램을 손질하는 카드사도 일부 눈에 띈다. 단순히 추심을 강화하기보다 장기 연체자를 대상으로 이자 감면, 상환 유예 등 채무조정 제도를 확대하려는 시도다. 다만 여전히 대부분의 카드사는 ‘회수 우선’ 기조를 유지하고 있으며, 실제 채무조정 프로그램이 적용되는 비중은 극히 제한적이다. 금융당국도 추심 과정에서 불법행위나 과도한 압박이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를 강화한다는 방침이지만, 제도적 한계로 인해 사후 대응에 머무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채무자의 상환 여력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추심 강도만 높아질 경우 연체 해결보다는 갈등과 부담만 커질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취약 차주 가운데 상당수가 다중채무자인 만큼 여러 금융회사로부터 동시다발적 추심을 받는 경우가 흔하며, 이에 따른 심리적 압박, 민사소송 전환 등 사회적 비용 또한 확산하고 있단 지적이다.
카드사 입장에서도 채권 추심과 소비자 만족 사이에서 균형을 잃는 순간 브랜드 신뢰도와 수익성 모두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판단에 관련 사안을 조심스럽게 다루는 분위기다. 이에 최근에는 충당금 확대, 리스크 점검 강화 등 중장기 대응책 마련에 착수하는 카드사가 하나둘 늘고 있다. 현대카드는 지난해 충당금 규모를 전년 대비 1,313억원 늘렸으며, 우리카드와 하나카드도 각각 345억원, 114억원 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