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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아시아·아프리카의 산업 기회 확산 관세가 촉발한 구조적 생산 이동 고용·수출·인프라로 확인된 변화
본 기사는 VoxEU–CEPR(경제정책연구센터)의 칼럼을 The Economy 편집팀이 재작성한 것입니다. 원문 분석을 참조해 해석과 논평을 추가했으며 본 기사에 제시된 견해는 VoxEU 및 CEPR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음을 밝힙니다.
미국과 중국이 주고받은 고율 관세는 애초 양국을 겨냥한 무역 무기였다. 그러나 가장 뚜렷한 효과는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남미, 동남아, 남아시아, 아프리카에서 나타났다. 대체 수출지, 생산기지, 클라우드 인프라로서의 입지가 강화되며 글로벌 공급망의 중심축이 바뀌고 있다. 공장은 본국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새로운 땅에 뿌리를 내렸다.

브라질: 부품에서 농산물까지, 반사이익 전방위 확산
브라질은 이번 무역 충격의 대표적인 수혜국이다. 미국이 중국산 전자부품과 금속에 100% 넘는 고율 관세를 부과하면서, 브라질은 자동차 부품·중간 전자재·철강 제품 등의 대미 수출을 빠르게 확대했다. 동시에 중국의 미국산 농산물 보복 관세로, 브라질의 대중 대두 수출도 상승세를 탔다. 2025년 수확이 본격화되면 트럼프 1기 당시의 흐름이 재현될 가능성도 크다.
커피와 신발도 기회가 열린 산업이다. 미국이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산 커피에 고율 관세를 예고하면서, 브라질과 콜롬비아산 커피의 가격 경쟁력이 주목받았다. 브라질은 세계 최대 커피 생산국이며, 콜롬비아가 그 뒤를 잇는다. 중국산 신발에 대한 관세도 브라질산 제품의 미국 수출 확대 기대를 키우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산업에서 수출 기회가 열리자, 브라질은 비교적 안정적인 생산지로 부상했다. 미국 기업들이 중국산 부품과 소재의 대체 공급처를 찾는 과정에서, 관세 리스크가 낮고 기존 수출 기반이 탄탄한 브라질이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다. 글로벌 기업의 투자도 잇따르고 있다. 스텔란티스는 60억 달러를 투입해 하이브리드 차량 생산설비를 구축 중이며, BYD는 포드 철수 용지에 배터리 공장 세 곳을 착공했다. 단순 조립을 넘어 고부가가치 분야로의 이동이 본격화되고 있다.
관련 수치는 이러한 전환을 뒷받침한다. 브라질의 대중국 수출은 관세 직후 급감했지만, 대미 수출은 증가세로 돌아섰다. 물동량 기준으로도 동일한 방향성이 확인된다. 가격 변화만이 아니라, 수출 구조 자체가 바뀌고 있는 셈이다. 중국 수요는 줄었지만, 미국 중심의 고수익 시장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주: 패널 A-중국(A.1) 및 미국(A.2) 수출액 변화, 패널 B-중국(B.1) 및 미국(B.2) 수출량 변화/관세 인상 전(진한 색), 관세 인상 후(연한 색)
다만 과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브라질의 내수 물류비는 멕시코보다 납품 단가 기준 41% 높아, 관세로 얻은 가격 경쟁력을 상당 부분 상쇄하고 있다. 여기에 브라질 정부가 미국산 자동차 부품에 대해 10%의 상호주의 관세를 검토 중인 점도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지금의 기회를 장기 경쟁력으로 전환하려면, 생산성 향상이 필수다. 연안 운송 개편, 고속도로 민간 투자 확대, 직업교육 정비 등 구조적 개혁 없이는 일시적 반사이익에 그칠 수 있다.
인도: '제2의 선택지'로 부상
인도는 규모의 경제와 제도적 유인책을 바탕으로 미중 무역 충격의 수혜를 흡수하고 있다. 2025년 3월, 애플은 미국의 스마트폰 46%의 예고된 관세를 피하기 위해 타밀나두에서 생산한 아이폰 20억 달러어치를 한 달 만에 항공편으로 선적했다. 이는 관세 회피 전략이자, 인도 생산 체계에 대한 신뢰의 방증이었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 Trade and Development, UNCTAD)에 따르면, 2024년 한 해에만 약 98억 달러(1조4천억원) 규모의 전자산업 제조 시설 투자가 인도에 유입됐다. 대부분은 기존 공장 확장이 아닌, 외국 기업의 신규 투자였다. 기업들은 “중국에서 이탈한 주문”을 핵심 요인으로 꼽는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이 생산 연계 인센티브(Production Linked Incentive, PLI) 제도다. 일정 수준의 규모와 부가가치를 달성해야 보조금이 지급되는 구조로, 단순 조립을 넘어 부품 가공·회로 설계 등 고도화를 유도한다. 폭스콘, 타타, 페가트론 등이 이 구조에 맞춰 생산 체계를 정비하고 있다.
물론 한계도 존재한다. 반도체 부품에 대한 관세 탓에, 인도 내 생산 비용은 중국보다 6~11% 더 높다. 그러나 이는 PLI 제도의 전략적 설계를 간과한 지적이다. 보조금 요건이 곧 학습곡선으로 작동하며, 생산 생태계 내재화를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매달 100만 명씩 늘어나는 노동연령 인구, 전용 물류 회랑, 재생에너지 기반도 인프라 측면에서 인도의 경쟁력을 뒷받침하고 있다.
ASEAN: 모듈형 공급망의 연결 고리
동남아시아 국가연합(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 ASEAN)은 중국과 밀접하게 연결된 글로벌 공급망에서 ‘보완재’ 역할을 하며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 삼성의 스마트폰 생산망만 봐도 칩은 말레이시아, 외장 하우징은 태국, 조립은 베트남, 물류는 싱가포르가 맡는 구조다. 이런 ‘모듈형’ 체계는 공급처를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어 미중 갈등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무역전쟁 시나리오에서 ASEAN의 GDP 타격 절반가량이 무역전환 효과로 상쇄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삼성은 미국이 베트남산 스마트폰에 최대 46%의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이 제기된 상황에서도, 베트남 생산 거점에 27억 달러(3조7천억원)를 추가 투자했다. 이는 관세가 현실화되더라도 생산성 향상으로 충분히 상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자원 산업에서도 ASEAN은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2020년부터 니켈 원광 수출을 금지하고, 정제 니켈 생산에 집중했다. 지금은 전기차 배터리용 고성능 소재인 정제 니켈 세계 최대 생산국으로 올라섰다. 전기차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전략적 공급지로서의 입지를 확보한 셈이다. 이곳의 산업 역량은 단순한 관세 리스크만으로는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깊게 뿌리내렸다.
아프리카: 클라우드와 통신망 중심의 신흥 기회
아프리카는 제조업 반사이익보다는 클라우드와 통신 인프라 전환에 방점을 두고 있다. 2024년 11월, 남아공의 통신사 MTN은 화웨이, 차이나텔레콤과 함께 AI 연산용 클라우드 인프라 구축을 발표했다. 미국 클라우드 기업이 수출 제한으로 공급하지 못하는 고성능 연산 자원을 중국 기업이 대신 아프리카에 제공하는 구조다.
모바일 생태계 확장도 빠르게 진행 중이다. 중국의 스마트폰 제조사 트랜션은 아프리카 시장을 겨냥해 자사 저가형 스마트폰에 결제·배송·메신저 기능이 통합된 ‘슈퍼앱’을 기본 탑재했다. 이를 통해 아프리카 전역에서 모바일 결제 서비스 팜페이(PalmPay)의 이용자 수는 3,500만 명을 넘어섰다.
디지털 창업도 활발하다. 나이로비의 에듀테크 스타트업은 스트리밍 기술을 활용해 직업교육 콘텐츠 비용을 2020년 대비 7분의 1로 줄였고, 요하네스버그의 핀테크 기업들은 에지 컴퓨팅을 통해 데이터 전송 지연을 30밀리초 이하로 낮췄다. 그러나 기술 의존이 깊어질수록 데이터 주권 우려도 커지고 있다. 중국 클라우드 기업의 API에 의존하는 국가들의 주민등록 시스템은 감시 논란에 휩싸였고, 각국 의회는 관련 법제화를 논의 중이다.
데이터로 확인된 고용과 물류 변화
유엔무역개발회의에 따르면, 2024년 한 해 동안 ‘차이나 플러스 원(China Plus One)’’ 전략에 따라 동남아·남미 등에 대한 제조업 투자가 28% 증가했다. 또한 중국과 미국을 제외한 국가에서 약 130만 개의 신규 일자리가 생겼다. 이는 과거 미국 디트로이트 전성기 수준과 맞먹는다.
고용 변화는 지역별로 엇갈렸다. 유럽경제정책연구센터(Centre for Economic Policy Research, CEPR)의 분석에 따르면, 2017년 이후 중국 관세에 노출된 브라질 내륙 농업 지역은 미국이 중국산 대신 브라질산 제품을 수입하면서 고용과 임금이 증가했다. 반면, 미국 관세의 영향을 받은 브라질 해안 전자산업 지역은 소비재 수출 비중이 높아 대체 수요를 확보하지 못했고, 이에 따라 수출과 고용이 함께 줄었다.

주: 공식 고용(Panel A), 공식 임금(Panel B)/중국 관세 충격 효과(붉은 막대), 미국 관세 충격 효과(파란 막대)
무역 통계 역시 이 같은 흐름을 뒷받침한다. 브라질의 비자원 기반 대미 수출은 2021~2030년 사이 140%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장의 고용 담당자와 물류 전문가들이 먼저 체감하던 산업 재편의 흐름이 이제는 데이터로도 명확하게 나타나고 있다. 관세 전쟁은 단순한 무역 장벽이 아니라, 세계 생산 지형을 재구성하는 유도된 흐름이었다.
흐름을 바꾼 관세, 국경을 넘은 재편
보호무역은 공장을 미국으로 되돌리기보다, 생산 거점을 남쪽으로 이동시켰다. 브라질, 인도, 동남아, 아프리카 등지에서 새로운 산업 지형이 형성되고 있다. 이 변화가 구조로 굳어질지는 각국의 대응에 달렸다. 브라질은 물류비를 줄이고, 인도는 기술 인재를 키워야 한다. 동남아는 규제 통합, 아프리카는 데이터 주권 정비가 과제다. 관세는 원래 국경을 높이는 수단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무역전쟁은, 되레 그 국경 바깥에서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다.
원문의 저자는 티아고 카발칸치(Tiago Cavalcanti) 상파울루 경제대학원(Sao Paulo School of Economics) 교수 외 2명입니다. 영어 원문 기사는 The US-China trade war created jobs (elsewhere) | CEPR에 게재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