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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나토의 새 기준 아시아에도 적용 지난해 GDP 2.8%(66조원) 지출, 약 2배 증액 요구 동맹국 부담 늘려 美 우선주의 관철

미국 국방부가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의 동맹국들도 국내총생산(GDP)의 5% 수준으로 국방비를 지출해야 한다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현재 미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에 GDP의 5% 수준으로 국방비를 지출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를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동맹국에도 동일하게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美 국방 "아시아 동맹도 GDP 5% 국방비 기준 따라야"
19일(이하 현지시각)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미 국방부는 이날 션 파넬 대변인 명의로 된 성명에서 “피트 헤그세스 장관이 전날(18일 상원 청문회)과 샹그릴라 대화에서 밝힌 것과 같이 우리의 유럽 동맹들이 우리 동맹, 특히 아시아 동맹을 위한 글로벌 기준을 설정하고 있다”며 “그것은 GDP의 5%를 국방 분야에 지출하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은 지난해 GDP의 2.8% 수준인 483억 달러(약 66조원)을 국방비로 지출했는데, 새 기준대로라면 국방비를 732억 달러(약 100조원)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
파넬 대변인은 “중국의 대규모 군비 확장, 북한의 지속적인 핵·미사일 개발을 고려하면 아시아·태평양 동맹국들이 유럽과 같은 수준과 속도로 국방비를 늘리는 것은 상식적인 조치”라며 “동맹의 안보 이익에 부합하고, 미국 국민의 이익에도 부합하는 ‘더 균형 있고 공정한 동맹 분담’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현재 미국은 나토에 국방 지출을 GDP의 5% 수준까지 상향할 것을 압박하고 있는데 이를 한국·일본 등 아시아 동맹에도 동일하게 요구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앞서 헤그세스 장관은 전날 상원 군사위원회에서 열린 2026 회계연도 국방 예산안 청문회에서 “나토가 국방 지출 확대 노력을 하면서 우리는 지금 아시아를 포함한 전 세계 모든 우리의 동맹들이 나아가야 할 국방 지출의 새로운 기준을 갖게 됐다”고 했다. 또 지난달 31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샹그릴라 대화 기조연설에선 중국과 북한발 위협에 직면한 아시아 동맹들이 유럽보다 적은 국방비 지출을 하는 상황에서 유럽에 GDP의 5% 수준 국방 지출을 요구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도 지적하기도 했다.
나토, 국방비 증액 잠정 합의
나토 국가들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방비 증액에 대한 내부 컨센서스를 형성하고 있는 만큼, GDP 대비 5%까지 국방비를 늘리는 방안에 잠정 합의한 상태다. 지난 6일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은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나토 국방장관 회의 직후 "(회원국들 사이) 폭넓은 지지가 있다"며 "3주 뒤 열릴 나토 회의에서는 완전한 합의에 도달하리라 확신한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요구에 따라 현행 GDP의 2%인 목표치를 5%로 올리는 방안이 내부적으로 논의됐지만, 나토 수장이 직접 공개석상에서 이 수치를 공식화한 건 처음이다. 그간 뤼터 사무총장은 관련 질의가 나올 때마다 아직 논의 중이라는 이유로 구체적 수치 언급을 꺼렸다.
뤼터 사무총장은 전체 5% 가운데 '3% 이상'은 직접 군사비로 지출하고, 나머지는 안보와 관련한 지출(간접비)로 채우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로선 2032년까지 직접 군사비 3.5%, 간접비 1.5%에 도달하자는 구상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뤼터 사무총장은 "새로운 목표치 합의 시 첫째 필요한 역량을 구축할 수 있는 규모여야 하며, 미국의 지출 비율과 같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기준 미국의 국방비는 GDP의 3.38%이었다.
아울러 "'2024년까지 2%를 달성하자'고 말만 해 놓고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은 2014년의 합의가 되지 않을 것"이라며 "회원국별로 매년 고려해야 하는 명확한 증액 폭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회원국들의 합의 이행 여부를 점검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앞서 나토는 2014년 GDP의 2% 목표치에 처음 합의했지만 법적 구속력이 없고 이행이 더뎌 '무늬만 합의'라는 지적이 있었다. 작년 기준 2%를 넘긴 회원국은 32개국 중 22개국에 그쳤다. 유럽의 안보 무임승차론을 제기한 트럼프 대통령의 불만도 여기에서 기인한다. 뤼터 사무총장은 1.5% 간접비 범주에 관해서는 아직 회원국간 논의가 계속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이와 관련 나토 32개국 국방장관들은 내달 5일 벨기에 브뤼셀에 집결해 정상회의 의제를 최종 점검할 예정이다.

"GDP 5%는 트럼프 희망사항, 외교적 대응 필요"
그러나 한국은 나토 회원국들과 상황이 다르다. 한국은 GDP의 2.32%인 446억1,700만 달러(약 61조2,470억원)의 올해 국방예산을 책정했는데, 전문가들은 이를 단기간 내 100조원대로 올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물론 헤그세스 장관은 유럽의 GDP 5% 국방 지출에 대해 '국방비 및 국방 관련 투자'를 포괄하는 수치라고 했다. 하지만 폭을 국방 관련 투자로까지 확대하더라도, 한국 정도의 경제 규모를 가진 중견국이 국방 및 관련 지출을 GDP의 5% 수준까지 올리는 일은 여타 분야 예산의 큰 삭감을 수반할 수밖에 없기에 국내적으로 합의를 도출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다만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공개적으로 운을 뗀 이상 앞으로 우리 정부와의 소통 계기에 한국 국방예산의 대폭 증액을 목표 시한과 함께 제시하라고 요구해 올 가능성이 있다는 게 외교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주둔비용 중 한국의 부담액인 방위비 분담금(올해 1조4,028억원)의 대폭 증액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돼 온 터에 한국으로선 더 큰 틀에서의 비용 분담을 요구받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트럼프 대통령은 외국(동맹국)을 지켜주기 위해 미국의 돈과 군인들을 투입하는 것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하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3월 마련한 '임시 국방 전략 지침'에서 중국의 대만 침공 대비와 미 본토 방어를 최우선 과제로 삼으며, 북한을 비롯한 다른 위협 요인에 대한 대응은 동맹국들에 대부분 맡기기로 하는 방안을 구상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미국 안보 정책의 '선택과 집중'을 위해 동맹국들이 더 많은 안보 관련 역할을 맡고, 지출을 늘리도록 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이 GDP의 5% 국방지출 요구에 내포된 것으로 풀이된다. 한 외교·안보 전문가는 "일단 GDP의 5%는 미국의 요구이자 희망사항이며, 당장 그것을 관철하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정부의 차분한 대응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