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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 반발로 상장 중단 전례
가전 구독 실패 경험 ‘전화위복’
‘신흥국 프리미엄’ 겨냥 본격화

LG전자가 지난 4월 중단했던 인도법인의 기업공개(IPO)를 이르면 오는 9월 재추진할 것이란 보도가 나왔다. 앞서 상장을 철회했던 배경에는 미국발 통상 이슈보다는 투자자들의 밸류에이션 반발이 더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슷한 시기 인도에서 시도한 가전 구독 서비스가 실패로 막을 내리며 시장 오판이 드러나긴 했지만, 상장 이전 실패를 경험했다는 점에서 충격을 피할 수 있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업가치 고평가 논란에 전략 재정비
19일(이하 현지시각) 블룸버그통신은 사안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LG전자가 여름 이후 인도 금융당국에 최신 재무 실적을 반영한 상장예비심사 서류를 다시 제출할 계획”이라며 “이르면 연내 IPO가 진행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앞서 지난해 12월 LG전자 인도법인은 인도 증권거래위원회(SEBI)에 IPO를 위한 서류를 제출했고, 올해 3월 당국의 승인까지 완료했다. 그러나 4월 돌연 IPO를 중단하며 시장 상황에 따라 향후 일정을 조율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당시 LG전자는 미국의 상호 관세 정책 발표에 따른 글로벌 시장 불확실성을 중단 이유로 지목했지만, 실제로는 투자자들의 반발이 더 큰 원인이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LG가 인도법인의 기업 가치를 지나치게 높게 책정하려 했고, 이를 부담스러워한 주요 투자자들이 이탈 조짐을 보이면서 상장 일정 자체가 틀어졌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2조원대 몸값’이라는 수치에 집착한 LG전자의 욕심이 상장 시점을 놓치게 했다는 평가마저 나왔다.
LG전자 인도법인은 인도 내 소비자가전 시장 점유율 1위를 자랑하는 데다, 빠르게 성장하는 중산층 수요를 흡수하며 실적 또한 꾸준한 우상향을 그리고 있었다. 이런 배경 덕분에 외형적 조건만 보면 IPO의 성공은 예견된 일이라는 분석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기업가치 산정에서 투자자와 기업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았고, 이 과정에서 상장 자체가 리스크로 비춰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특히 지난 4월은 글로벌 증시 전반의 분위기가 침체했던 시기인 만큼 투자자들의 눈높이는 더욱 보수적으로 돌아서 있었다. 결국 LG전자는 결국 무리한 강행보다는 후속 전략 재정비를 택했다.
위험 요인 사전 확인 “불행 중 다행”
이런 가운데 시장에선 LG전자 인도법인이 지난해 11월 시범 출시한 가전제품 구독 서비스를 3개월 만에 중단했다는 소식이 뒤늦게 전해졌다. 세탁기, TV 등 주요 생활가전을 대상으로 매월 일정 금액을 납부하고 사용하는 해당 서비스는 인도 대도시 거주자의 수요와 구독경제 트렌드에 대응하기 위한 LG전자의 실험이었다. 당시 LG전자는 구매력은 낮지만 최신 기술을 경험하고 싶어 하는 젊은 세대에 적합할 것이란 판단 아래 델리, 노이다, 구루그람 등 일부 도시에서 시범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소비자 반응이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면서 올해 1월 서비스를 종료했다. 이를 두고 현지 업계에서는 ‘소유’에 대한 선호가 강한 인도 소비자들의 특성과 불안정한 서비스 구조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해석했다. 정기 납부 방식은 초기 비용 부담을 줄여주긴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총비용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인식과 서비스 유지에 대한 신뢰 부족 등이 구독 모델의 확산을 가로막았다는 분석이다.
다만 이 같은 서비스 중단이 IPO 이후가 아닌 상장 중단 이전 발생했다는 점은 LG전자 입장에서 오히려 “불행 중 다행”이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만약 IPO가 완료된 뒤 서비스 철회가 이뤄졌다면, 시장 신뢰도에 타격을 주는 것은 물론 주가 하락과 투자자 반발이라는 이중고에 직면했을 것이란 관측에서다. IPO는 기업 이미지와 비즈니스 모델 전반을 시장에 드러내는 과정인 만큼 상장 직후 이와 같은 전략 실패가 노출됐다면 상장 프리미엄조차 지키기 어려웠을 것이란 게 시장 참여자들의 주된 시선이다.

글로벌 가전 시장 침체 속 성장 가능성에 주목
야심 차게 추진한 구독 서비스의 실패에도 LG전자가 인도법인의 상장을 다시 추진하려는 배경에는 글로벌 가전 시장의 중심축이 선진국에서 신흥국으로 옮겨가는 흐름이 자리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등 전통 소비시장에서는 고금리와 경기둔화 영향으로 수요가 정체되거나 위축된 반면, 인도는 빠른 도시화와 중산층 확대에 힘입어 세계 주요 가전업체들이 앞다퉈 진출하는 전략적 요충지로 부상했다는 판단이다. LG전자 입장에서는 이번 IPO가 단순한 자금조달 수단을 넘어 인도 시장 내 존재감을 공고히 할 수 있는 수단인 셈이다.
1997년 인도에 진출해 올해로 28년 차를 맞은 LG전자는 오랜 시간 현지 생산기반과 브랜드 신뢰를 천천히 다져 왔다. 그 결과 LG전자 인도 법인은 올해 1분기 매출 1조2,428억원, 순이익 1,243억원을 기록하며 분기 기준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이처럼 안정적인 실적과 함께 가전제품 전 라인업을 보유한 풀 스펙 공급이 가능한 만큼, 상장 이후 현지 투자자 기반을 확보하면 기업가치를 극대화하는 데 무리가 없을 것이란 게 시장 전반의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