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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기시다 정권의 엔저 정책, 이명박 정권의 원화 평가 절하 정책과 판박이
2008년 금융위기 극복 방안, 실제론 국민 주머니 털어 수출기업만 배불렸다 비판
일본 상황도 유사, 향후 사회 갈등 극복할 재분배 정책에 고민 쏟아야 할 시점
일본의 2023년 1인당 국민소득(GNI)이 자료 조사 이래 처음으로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보다 낮게 나타났다. 지난 5일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은 36,194달러(약 4,989만원), 일본은 35,793달러(약 4,934만원)로 집계됐다.
국민소득 역전의 원인을 한국의 꾸준한 성장과 일본의 장기 침체에서 찾기도 하지만, 실질적인 이유는 일본의 지나친 엔저 정책이라는 것이 경제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견해다. 현재 1달러 150엔대를 넘어 160엔대를 넘나드는 상황이 일본 정부의 의도적인 엔저 정책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정상 환율 기준으로 일본의 국민 소득은 여전히 1990년대에 도달했던 4만 달러 중반으로 보는 것이 옳다는 의견이 강하다.
그러나 국민들은 장기 환율보다 단기 환율에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달러 환산 기준 실질소득이 감소한 일본 사회의 모습은 빠르게 바뀌는 중이다. 흥미로운 점은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이명박 대통령도 비슷한 정책을 취했었다는 것이다.
2008년 이명박 정권의 원화 평가 절하
지난 2007년 당시 미국 월가의 4대 투자은행이었던 베어스턴스가 무너지고, 이어 2008년에 리만 브라더스마저 도산하면서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에 휘몰아쳤다. 이때 엔화는 안전 자산으로 분류돼 빠르게 절상되는 반면, 원화는 위험 자산으로 분류돼 평가 절하가 이어지고 있었는데, 이명박 정권은 선거 공약이었던 △연 평균 7%씩 고속 성장 △10년 내 1인당 국민소득 4불 시대 △세계 7위권 선진대국 진입 등 이른바 '7·4·7 공약'을 시행하기 위해 원화를 추가로 평가 절하했다.
이로 인해 2009년과 2010년에 유학생들의 해외 체류비는 순식간에 2배로 뛰어 올랐고, 원유 수입 가격을 비롯한 대부분의 해외 수입품들의 가격도 동반 상승했다. 갑작스러운 생활 물가 상승으로 국민들의 생활이 어려워지던 당시, 정부는 수출 기업들이 저가 수출을 통해 얻은 이익을 국내에 돌려주는 '낙수 효과(Trickle down effect)'를 주장하며 수출 기업들에 전폭적인 지원을 해 줬다. 원화 평가 절하를 통한 금융위기 대응이라고 표현했지만, 사실상 국민들의 주머니를 털어 수출 기업들에게 보조금을 준 셈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수출 기업들을 통한 낙수 효과는 크지 않았다. 오히려 2010년대를 기점으로 수출 중심의 대기업들과 중소기업들의 연봉 격차가 크게 벌어져 이제 청년들이 대기업이 아니면 취직하지 않으려고 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22년 대기업 근로자의 월 평균소득은 중소기업의 2.1배였다. 20대에서는 1.6배의 차이를 보였지만 50대로 올라갈 경우 무려 2.4배로 격차가 커진다.
더욱이 우리나라 대기업의 평균 초봉은 경쟁국인 일본의 1.5배, 대만의 2배가 넘는다. 한국 대기업 평균 임금이 20년 새 157%나 상승했기 때문이다. 반면 같은 기간 일본의 대기업 임금은 되레 6% 감소했다. 이명박 정권 5년간 국민 주머니를 털어 만들어 준 수출 보조금으로 대기업과 대기업 직원들만 일본, 대만을 앞서게 된 것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지난 문재인 정권 시절에는 중소기업 채용 지원을 위한 청년내일채움공제, 청년일자리사업 등에 재정 지출이 이뤄지기도 했다.
2020년대 아베-기시다 정권의 엔저
한편 일본 정부는 1990년대 이후 지속된 제로 금리와 디플레이션을 극복하기 위해 지난 2010년대에 한 차례 양적 완화 정책을 시도한 바 있다. 이에 2분기 연속 물가 상승세가 둔화하기도 했으나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고, 오히려 시장 불균형을 야기했다는 이유로 정권을 잃었다. 그러다 최근 코로나19 팬데믹과 더불어 다시 한번 도전 중인 엔저 정책은 일단의 목표는 달성한 상황이다. 드디어 제로 금리를 탈출 했고, 물가는 30년 만에 처음으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이는 2008년 이명박 정권 때 많은 부분 닮아 있다.
실제로 수출 기업들은 엄청난 호황을 누리고 있다. 도요타 자동차는 역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2022년부터 매년 갱신하고 있고, 일본 닛케이지수는 34년 만에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일본 국민들의 주머니는 훨씬 더 빡빡해졌다. 달러당 엔화 가치가 1달러당 100~110엔 박스권을 형성했던 2021년까지 대비 160엔대를 넘나드는 상황은 수입 물가가 60% 이상 뛰었음을 의미한다. 일본도 국민 주머니를 털어서 수출 기업들에 보조금을 주는 것과 같은 상황이 된 것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국민 반발과 국제 시장 변화 등의 이유로 엔저를 장기간 유지하기는 힘들 것으로 전망한다. 닛케이 지수가 39,000을 웃도는 상황에서 2026년까지 55,000을 예측하는 전문가들도 엔저가 종료되지 않는다는 전제를 깔아둔 상태다. 엔저가 끝난 이후에는 한국의 2015년 이후가 그랬듯이, 수출 기업들 일부에만 막대한 이익잉여금이 쌓인 상태가 될 것이다.
한국은 사실상 중소기업들이 폐업하고 반도체나 자동차를 비롯한 일부 산업만 살아남은 국가가 됐다. 일본도 엔저의 후폭풍으로 수출지향적인 기업들 일부를 제외하고는 폐업의 수순을 밟게 될 것이다. 엔저가 끝나면 국민소득은 다시 1인당 4만 달러 중반으로 돌아가겠지만, 국가의 부는 소수에게만 쏠리게 된다.
한국의 재분배 정책은 거센 저항을 받고 있고,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일본은 엔저의 후폭풍을 어떤 재분배 정책으로 풀어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