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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 출범 후 동남권투자공사 설립 추진 지역 민심 먹구름, "산은 대안 불가" 쓴소리 박형준 시장, 산업은행 부산 이전 방침 재확인

이재명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한국산업은행의 부산 이전 대신 동남권투자은행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산은도 한동안 모든 이슈를 집어삼켰던 이전 논란을 털어놓을 수 있게 됐지만, 내부 수습엔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새 회장 인선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사실상 '동남권산업은행'인 투자공사 출범 이후 산은의 역할과 정체성에 대한 교통정리도 필요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부울경 산업 개발 및 육성 위한 금융기관
3일 금융권과 정치권에 따르면 동남권투자은행 설립에 속도가 붙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19일 국정기획위원회 업무보고 당시 동남권투자은행 세부 공약 이행 방법을 보고했고,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일에 ‘동남권산업투자공사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해 동남권투자은행에 관한 밑그림을 보여줬다.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 시절 공약으로 제시했던 동남투자은행을 구체화한 것이다.
민 의원이 발의한 법률안에 따르면 “동남권산업투자공사는 동남권 산업의 개발·육성 등 지속가능한 성장 촉진 등에 필요한 자금을 공급·관리해 동남권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고용을 늘려 지역 간 균형 발전을 도모한다”고 명시돼있다. 초기 자본금은 3조원으로 규정했다. 초기 자본금은 △정부 △지방자치단체 △금융회사 등으로부터의 출연금으로 마련한다. 민 의원은 “부산·울산·경남(부울경)은 조선·자동차·석유화학·기계산업 등의 중심지로 성장했지만, 최근 글로벌 산업 환경 변화와 지역 내 산업 구조의 변화로 인해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며 동남권투자은행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여당은 동남권투자은행이 부산시에 설립될 경우 부울경의 경제활력은 회복에 마중물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대부분 금융·투자 인프라는 수도권 중심으로 조성돼 있어 동남권 기업들이 자금 조달과 투자 유치에 있어서 불리한 측면이 있는데, 동남권투자은행이 설립이 된다면 해당 문제는 해결될 것으로 본다.
게다가 부산은 국제금융지구로서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 현재 부산국제금융지구에 BNK부산은행, 캠코, 한국 거래소 등 다양한 금융기관들이 들어섰지만 아직은 부족하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이에 여당은 동남권투자은행이 들어서면 국제금융지구로서의 경쟁력 강화와 부울경 산업에 맞춤형 지원을 통한 경쟁력 상승, 인재채용을 통한 인구유출 방지 등의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리더십·정체성 해결 '난망'
다만 현실성은 제로(0)에 가깝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가장 큰 문제는 산은의 방향성과 정체성이다. 당장 리더십이 부재가 첫 손에 꼽힌다. 강석훈 산은 회장은 지난 6일 임기가 만료돼 퇴임했다. 현행 김복규 전무이사 대행 체제에선 활동 범위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평가다. 금융권에선 행장의 공석이 길어질 것이란 전망이 많다. 정부가 기획재정부 개편을 추진하는 가운데 조직 개편, 금융위원장 인선 등 앞서 해결돼야 할 선행 절차가 수두룩해서다.
체질 개선에 활력을 불어넣을 주니어 직원이 부족한 점도 걱정거리다. 산은과 노조 측에 따르면 2022년 1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부산 이전 공약을 발표한 뒤 작년까지 3년간 235명이 퇴사했다. 과거 한 해 퇴사자가 30~40명에 그쳤던 것과 비교하면 2배 이상 많은 것이다. 입사 경쟁률 역시 2020년 67대 1에서 2024년 30대 1로 반 토막 났다. 금융권 관계자는 "젊은 세대에서 부산 이전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컸다"며 "가장 활발한 1~5년차 인력을 잃은 건 단시간에 해결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동남권투자공사 출범 후 정체성을 두고 양 사간 갈등이 일어날 것이란 우려도 적지 않다. 당장 투자공사와 산은과 업무가 중복되는 까닭이다. 동남권투자공사는 지역 특성상 해운 및 조선업을 지원할 가능성이 큰데, 중후장대 산업을 기반으로 금융을 지원하고 있는 산은과 영역이 겹친다. 산은은 이미 부산에서 동남권투자금융센터를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실용성을 중시하는 이 대통령의 성향을 고려했을 때 동남권투자공사가 완주할 가능성은 극히 적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부산시장 “고래(산은)와 참치(동남권투자은행)를 바꿀 수 없다”
박형준 부산시장도 쓴소리를 내고 있다. 그는 부산시청 9층 기자실에서 열린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부산이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던 과제들을 해양수산부·HMM(옛 현대상선) 부산 이전 문제와 맞바꾸는 식으로 이재명 대통령 공약이 이뤄져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부산글로벌허브도시특별법과 산은 부산 이전, 가덕도신공항 2029년 12월 개항은 지역균형발전을 이루려는 부산의 3대 핵심 사안이다. 박 시장은 이들 과제를 여야 정쟁의 대상으로 삼는 것을 경계했다.
박 시장은 “산은 본점 이전은 노무현 정부 때부터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를 거치면서 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 대상에도 들어가 있었는데 윤석열 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한 것이다. 그렇다면 산은 본점이 부산 밖에 올 데가 없는 것 아닌가.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부산에 (잔잔한 물가에 큰 파동을 일으키는) 메기와 같은 구실을 할 수 있는 정책 금융기관을 가져와야 된다는 건 대한민국 전체를 위한 것이다. 산은 본점 부산 이전은 혁신 균형 발전의 핵심 과제인데, 정부가 바뀌었다고 부산이 그 과제를 포기해야 되는 것처럼 얘기하거나 다른 것하고 바꿀 수 있다는 식으로 얘기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재명 대통령이 동남권투자은행을 부산에 설립하겠다는 공약에 대해서도 “동남권투자은행이 산은의 대체물이 될 수 있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동남권투자은행의 자본금이 3조원이라고 하지만 대부분이 현물 투자가 되고 실질적으로 가동할 수 있는 자금은 대단히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부산뿐만 아니라 동남권과 남부권 전체 지역 성장을 도모하는 정책 금융기관으로 위상을 정립하고자 산은의 부산 이전을 추진해 왔는데, 동남권투자은행이 과연 거기에 걸맞은 수준이 될 수 있느냐. 자칫 잘못하면 고래하고 참치를 바꾸는 수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