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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기 말 사업자·가계대출 총 잔액 1,056조원 ‘역대 최대’
다중채무자 등 취약 차주들, 연소득 65% 빚 갚는 데 사용
코로나 '호흡기' 떼자 줄폐업 시작, 금융권 부실 전이 우려
고금리와 소비 부진 속에 자영업자가 갚지 못한 사업자대출 원리금이 역대 최대 규모까지 불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자영업자의 빚, 연체액, 연체율 모두 역대 최고치를 가리키고 있는 가운데, 전체 가계대출자의 빚 상환 부담도 갈수록 커져 평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2분기 연속 다시 올랐다. 특히 여러 곳에서 대출을 끌어 쓴 저소득 취약 차주(저소득·저신용 다중채무자)의 경우 최소 생계비 정도를 뺀 거의 모든 소득을 빚 갚는 데 쓰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1분기 자영업자 대출 연체액 10.8조원
1일 한국은행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양부남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분기별 자영업자·가계대출자 대출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 1분기 현재 자영업자의 전체 금융권 사업자대출 연체액(1개월 이상 원리금 연체)은 모두 10조8,000억원으로 집계됐다. 해당 연체액 통계는 금융기관들이 제출한 업무보고서에 기재된 실제 연체액 현황을 합산한 결과로, 2009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가장 큰 연체 규모다. 지난해 4분기(8조4,000억원)와 비교해도 불과 3개월 만에 2조4,000억원이나 뛰었다.
분기별 연체액 증가 폭(직전분기 대비)은 작년 1분기 2조2,000억원(2022년 4분기 4조1,000억원→2023년 1분기 6조3,000억원)에서 2분기 1조원(6조3,000억원→7조3,000억원), 3분기 1조원(7조3,000억원→8조3,000억원), 4분기 1,000억원(8조3,000억원→8조4,000억원)으로 계속 줄다가 다시 2조원을 훌쩍 넘어선 모습이다.
자영업자 전체 금융권 사업자대출 연체율도 작년 4분기 1.30%에서 올해 1분기 1.66%로 석 달 사이 0.33%포인트(p) 치솟았다. 2013년 1분기(1.79%) 이후 11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가계대출까지 포함한 자영업자의 전체 금융권 대출 잔액은 1분기 말 현재 1,055조9,000억원(사업자대출 702조7,000억원+가계대출 353조2,000억원)으로 추산됐다. 직전 분기(1,053조2,000억원)보다 2조7,000억원 더 늘어난 것으로 이 역시 역대 최대 기록을 갈아치웠다.
가계대출자들의 대출 상환 부담도 다시 커지는 추세다. 한은은 가계부채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1분기 말 현재 1,973만 명이 총 1,852조8,000억원의 가계대출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했다. 1인당 평균 9,389만원씩 금융권 대출을 안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4분기와 비교해 대출자 수와 대출 잔액이 각 6만 명(1,979만 명→1,973만 명), 5,000억원(1,853조3,000억원→1,852조8,000억원) 줄었지만 1인당 대출액은 22만원 늘었다.
이들 가계대출자의 평균 DSR은 38.7%로 추산됐다. DSR은 대출받는 사람의 전체 금융부채 원리금 부담이 소득과 비교해 어느 정도 수준인지 가늠하기 위한 지표로 해당 대출자가 한해 갚아야 하는 원리금 상환액을 연 소득으로 나눈 값이다. 결국 우리나라 가계대출자는 연 소득의 약 39%를 대출 원리금을 갚는 데 쓴다는 의미다.
가계대출자 평균 DSR은 2022년 4분기 40.6%를 찍고 이후 지난해 3분기 38.4%까지 떨어졌지만, 같은 해 4분기 38.5%로 반등한 뒤 두 분기 연속 오름세를 이어갔다. 3개 이상 금융기관에서 가계대출을 받은 다중채무자의 평균 DSR 역시 작년 4분기 58.2%에서 올해 1분기 58.8%로 더 높아졌다. 이들 다중채무자의 평균 대출액은 1억2,401만원에 이르렀다. 대출 상환 측면에서 가장 상황이 좋지 않은 취약 차주의 DSR(64.8%)도 한 분기 사이 2.2%p(62.6→64.8%) 뛰었다.
자영업자 절반 이상이 다중채무자, 폐업·파산 사업자도 속출
문제는 자영업자의 절반 이상이 다중채무자라는 데 있다. 작년 말 기준 다중채무 자영업자는 173만1,283명으로 전체 개인사업 대출자의 51.5%로 집계됐다. 절반 이상의 자영업자들이 더 이상 제도권 대출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란 의미다. 이들의 대출 잔액은 전체의 62.3%로, 다중채무자는 ‘빚으로 빚을 돌려막는’ 경우가 많아 한번 빚을 못 갚으면 연쇄 부실로 이어질 수 있어 우려가 커진다.
특히 다중채무자 중에서도 20·30대 젊은 자영업자들의 처지가 가장 어려운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다중채무 자영업자의 연체액 증가율을 연령별로 봤을 때 30대(30∼39세)가 62.5%(1조7,039억원→2조7,691억원)로 가장 높았고, 이어 △60세 이상 58.0%(2조8,989억원→4조5,800억원) △50∼59세 56.0%(4조4,550억원→6조9,491억원) △40∼49세 43.7%(4조8,811억원→7조127억원) △29세 이하 36.1%(3,561억원→4,846억원) 순으로 집계됐다. 연체율은 29세 이하(6.59%)에서 최고였고, 30대가 3.90%로 두 번째였다. 40대(3.61%), 50대(2.95%), 60세 이상(2.51%)으로 연령이 높아질수록 연체율은 낮아졌다. 1년 사이 연체율 상승 폭도 29세 이하(2.22%p)와 30대(1.63%p)가 나란히 1·2위를 차지했다.
이렇다 보니 실제로 빚을 감당하지 못해 무너지는 자영업자들도 속출하고 있다. 지난해 개인사업자 폐업률은 9.5%로 전년 대비 0.8%포인트 높아졌고, 폐업자 수는 91만1,000명으로 전년 대비 11만1,000명 늘었다. 핀테크 기업 핀다의 상권 분석 플랫폼 오픈업에 따르면 지난해 폐업한 외식업체는 17만6,258곳으로 전체 외식업체의 21.52%에 달했다. 이는 코로나 때인 2020년(13.41%)보다 8.11% 높은 수치다.
폐업이 증가함에 따라 노란우산 공제금도 불어나는 추세다. 지난 1∼5월 폐업을 사유로 소상공인에게 지급된 노란우산 공제금은 6,577억원으로 지난해 동기보다 18.3% 늘었다. 노란우산은 소기업·소상공인 생활 안정과 노후 보장을 위한 공제 제도로 여간해서 깨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는데, 결국 버티지 못하고 폐업을 선택한 것이다.
채무조정 제도를 찾는 이들도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개인파산 신청 건수는 4만1,239건으로 전년(4만1,463건)보다 소폭 줄었으나, 개인회생 신청 건수는 12만1,017건으로 전년(8만9,966건)에 견줘 34.5%나 늘었다. 최근 10년 새 가장 많은 수치다. 영세기업들의 파산 신청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대법원에 따르면 올 1분기 법인들의 파산 신청 건수는 439건으로 전년 동기(326건) 대비 34.7% 늘었다. 코로나19가 최고조였던 2021년(204건), 2022년(216건) 등과 비교하면 두 배 넘게 급증했다.
빚내서 버티다 빚만 더 쌓였다, 정책금융의 그림자
자영업자들이 이처럼 빚의 수렁에 빠져들게 된 배경으로는 정부의 정책금융 지원 사업이 꼽힌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소상공인 및 자영업자를 지원하기 위해 각종 명목으로 대출을 진행했던 것이 저금리 국면과 정책 효과가 동시에 끝나면서 자영업자들의 부담을 가중시켰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고금리 장기화 및 내수 부진의 여파까지 더해지며 이자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결국 자영업자들은 폐업과 신용 악화라는 최악의 사태에 마주하게 됐다.
그럼에도 자영업자·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한 정부 정책들은 여전히 ‘빚으로 버티기’로 일관된 모습이다. 정부는 최근 금융권과 함께 소상공인과 서민 등 취약 금융 계층을 대상으로 한 ‘금융지원 패키지’를 발표했다. 여기엔 △은행권 민생금융 △소상공인 대환대출 △제2금융권 이자 환급 등이 담겼다. 이는 모두 정부가 예전에 추진했던 금융 지원과 궤를 같이한다.
정부는 이전에도 중소기업·소상공인에 대한 대출 만기연장과 원리금 상환유예 조치를 진행했다. 2020년 4월부터 유동성 문제를 겪는 중소기업·소상공인 대출의 만기 연장 및 원금·이자 상환 유예 지원에 들어간 것이 대표적이다. 해당 정책으로 2020년 4월 0.36%였던 개인사업자 연체율은 2021년 4월 0.23%, 2022년 4월 0.19%까지 낮아졌다. 하지만 지난해 들어 만기 연장 심사를 강화하는 한편, 같은 해 9월부터 상환 유예 조치를 종료하면서 이 여파로 작년 4월 개인사업자 연체율은 0.41%로 전년 대비 두 배 넘게 치솟았다.
이에 업계에서는 결국 정부가 그동안 저리 대환, 상환 유예 등의 조치를 취하면서 인공호흡기로 연명만 해준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정책금융 지원이 아니었다면 연체로만 이어졌을 대출 중 상당수가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고 억눌려 오다가 고금리 상황에 본격적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저신용 차주들이 주로 찾는 저축은행의 경우 이미 경고등이 켜진 상태다. 올해 1분기 기준 전국 79개 저축은행의 연체율은 8.8%로 지난해 말(6.55%) 대비 2.25%포인트나 급등했다. 이들 저축은행은 총 1,543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내면서 지난해 1분기(-527억원) 대비 순손실이 3배 가까이 늘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신용카드사의 카드론 잔액은 40조원을 넘어섰고 보험약관대출도 71조원을 기록하는 등 이른바 '불황형 대출'도 급증했다. 이런 가운데 앞으로도 연체율 상승세가 계속된다면 금융권의 도미노 채권 부실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