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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번가 '지분 스왑' 방식으로 인수하려던 오아시스, 관련 논의 '정지'
티몬·위메프 미정산 사태 이후 지분 스왑 관련 시장 인식 악화해
이커머스 업계에서 등 돌리는 투자자들, 매각·투자 유치 비상
오아시스의 11번가 인수 방안이 사실상 무산됐다. 양사의 이해관계가 지속적으로 충돌하는 가운데, 큐텐(Qoo10) 계열사인 티몬·위메프의 대규모 미정산 사태로 '지분 스왑' 방식 M&A(인수합병)에 대한 시장 우려가 커진 결과다. 업계에서는 티몬·위메프 사태의 여파로 인해 이커머스 업계 전반이 차후 매각·투자 유치 등에 난항을 겪을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흘러나온다.
오아시스, 11번가 인수 사실상 무산
12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오아시스의 11번가 인수 관련 논의는 멈춰선 상태다. 최근 오아시스는 11번가 지분 전량을 사들이는 방안을 타진해 왔다. 현재 11번가의 지분은 SK스퀘어가 80.26%를, 나일홀딩스컨소시엄(국민연금·H&Q코리아파트너스·MG새마을금고, 이하 나일홀딩스)이 18.18%를 보유하고 있다. 작년 말 SK스퀘어가 18.18%에 대한 콜옵션을 포기하며 매각 권한은 나일홀딩스 측에 넘어간 상태다.
당초 오아시스는 지분 맞교환 형태로 11번가 경영권 인수를 기대했다. 자사 주식과 물류 관계사인 루트의 주식을 섞어 11번가 주식과 맞바꾼 뒤, 상장을 통해 나일홀딩스가 현금을 엑시트(투자금 회수)해가는 구조다. 하지만 나일홀딩스는 이 같은 제안에 난색을 보였다. 나일홀딩스의 11번가 투자 기간은 현재 5년을 경과한 상태로, 엑시트가 필요한 시점에 지분 스왑을 통해 투자 기간을 연장할 경우 나일홀딩스에 돌아오는 실익은 크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서다. 지분 교환 대상에 포함된 루트가 지난해 46억원 규모 영업손실을 기록한 적자 기업이라는 점도 문제로 꼽혔다.
오아시스 측의 FI(재무적 투자자) 사이에서도 반대가 이어졌다. 연간 영업손실이 1,000억원 이상에 달하는 적자 기업 11번가가 향후 상장 추진 시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오아시스 모회사이자 상장사인 지어소프트는 주가가 전적으로 오아시스 이슈에 의해 움직이는데, 11번가 인수 얘기가 나온 이후 지지부진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며 "투자자들의 (11번가 인수에 대한) 여론이 썩 우호적이지 않다"고 설명했다.
티몬·위메프 사태도 '악재'
시장에서는 양사의 인수 논의가 멈춰선 또 다른 원인으로 최근 벌어진 티몬·위메프의 대규모 미정산 사태를 지목한다. 해당 사태를 계기로 금융당국이 지분 스왑 방식의 M&A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큐텐은 지난 2022년 티몬을 인수할 때 홍콩계 사모펀드(PEF) 운용사 앵커에쿼티파트너스(앵커PE)와 미국계 PEF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이 보유한 티몬 지분 전량을 큐텐 지분과 교환하는 방식을 사용한 바 있다. 지난해 위메프를 인수할 때 역시 큐텐 대주주인 원더홀딩스가 보유한 지분과 자회사 큐익스프레스 주식을 교환했다.
큐텐의 이 같은 '무자본 M&A' 전략이 성립한 이유는 티몬, 위메프 등의 투자자들이 간절히 지분 매각을 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례로 2015년 티몬 주주가 된 KKR과 앵커PE는 티몬의 경쟁력 저하로 인해 매각에 난항을 겪고 있었다. 일각에서는 티몬의 기업가치가 ‘제로(0)’에 가깝다는 혹평이 흘러나올 정도였다. 위메프 지분을 보유하고 있던 IMM인베스트먼트의 상황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시 큐텐이 국내 시장에서 공격적인 M&A를 이어가자, 업계에서는 큐텐이 큐익스프레스의 몸집을 키워 미국 증시(나스닥)에 상장하기 위해 '문어발'식 인수를 한다는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큐텐은 여론 악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리한 M&A를 이어갔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큐텐은 지난 2월 미국 기반의 글로벌 쇼핑플랫폼 위시를 1억7,300만 달러(약 2,300억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며 "업계에서는 큐텐이 위시 인수 대금을 마련하기 위해 티몬과 위메프 등 계열사 현금을 동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티몬·위메프 미정산 사태의 불씨는 큐텐의 무리한 M&A에서 시작된 셈"이라고 설명했다.
먹구름 낀 이커머스 매각·투자 시장
업계에서는 티몬·위메프 미정산 사태로 인해 이커머스 업계의 재무 건전성에 대한 불신이 커진 탓에 여타 이커머스 기업들의 매각·투자 유치 계획 역시 암초에 부딪힐 것이라는 우려가 흘러나온다. 일례로 투자 유치에 나선 신세계그룹(SSG닷컴)의 경우, 지난 2019년과 2022년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와 블루런벤처스(BRV)캐피탈로부터 IPO(기업공개)를 전제로 1조원을 투자받았다. 이후 SSG닷컴은 2021년과 2023년 두 차례 상장에 실패했고, FI의 엑시트를 도와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올해 6월 양측은 풋옵션(매도청구권)을 행사하는 대신 FI가 보유 중인 SSG닷컴 주식을 올해 말까지 제3자에게 넘기기로 합의했다. 문제는 당장 투자에 나설 제3자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시장에서는 SSG닷컴이 증권사들과의 총수익스왑(Total Return Swap, TRS) 계약으로 자금 조달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현재 다수의 증권사와 은행으로 구성된 클럽딜 협상이 진행 중이라는 전언이다.
오아시스와의 매각 협상이 사실상 결렬된 11번가 역시 궁지에 몰렸다. 11번가 측은 올해 2월 △신세계 △CJ △롯데 △큐텐그룹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등과 접촉하며 인수 의사를 타진했으나, 모든 협상이 실패로 돌아간 상태다. 지난 2019년 2조원을 호가하던 기업가치는 매각 작업을 거치며 1조원까지 미끄러졌다. 현재 업계는 11번가의 몸값이 FI들이 투자 원금을 회수할 수 있는 하한선인 5,000억원대까지 하락했을 것이라 보고 있다.
IPO 재도전 의사를 밝혔던 컬리와 오아시스도 티몬·위메프 사태의 역풍을 피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이들 기업은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인해 몸값을 인정받을 수 없게 되자 상장 계획을 자진 철회·연기한 바 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최근 티몬·위메프 사태로 이커머스 업계에 대한 투자 심리가 악화된 만큼, (컬리와 오아시스가) 상장에 재도전한다고 해도 역시 기대했던 수준의 기업가치를 인정받기는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며 "티몬·위메프 사태로 인해 투자자들의 마음이 떠나며 이커머스 업계 전반에 '먹구름'이 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