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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 하락·대선 임박에 美 회사채 발행 랠리
韓 기업 회사채 발행도 한 달 새 순발행 2조원
신한·KB·키움·삼성證 등도 증권채 발행 봇물
미국 기업들이 9월 첫째 주 동안 사상 최대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 금리를 인하하기 전에 고수익을 찾아 나선 투자자들의 수요가 많았고, 오는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시장 변동성이 커진 점 역시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을 앞당긴 원인으로 풀이된다.
9월 첫 주, 미국 회사채 발행 '사상 최대'
8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 기업들이 9월 첫째 주에 사상 최대 규모에 달하는 회사채를 발행했다고 보도했다. 시장조사업체 LSEG에 따르면 지난 한 주 동안 회사채 시장에서 발행된 60여 개 미국 우량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 규모는 820억 달러(약 110조원)로 나타났다. 9월 첫 주 만에 9월 한 달 동안의 회사채 발행 예상치(1,250억 달러) 절반 이상을 넘어섰다. 이는 2020년 5월을 넘어서는 수준으로, 당시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경기 침체를 우려했던 기업들이 유동성 확보를 목적으로 회사채 발행에 나서며 역대 최대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특히 지난 한 주 동안 발행된 회사채 중 90%가량은 지난 3일과 4일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틀간 발행된 회사채 규모는 730억 달러(약 98조원)로, LSEG 기준 20년 만에 가장 큰 규모다. 지난 3일에는 29건에 달하는 미국 투자 등급 채권이 발행되면서 역대 최고 일일 기록도 썼다. 최근 회사채 발행에 나선 우량 기업으로는 포드자동차 계열의 할부금융사인 포드 모터 크레딧(25억 달러, 약 3조3,520억원), 타겟(7억5,000만 달러, 약 1조55억원), 우버(40억 달러, 5조3,700억원) 등이 있다. 우버의 경우 투자 등급 기업으로서는 처음으로 회사채 발행에 나섰다.
회사채 발행이 늘어난 데는 미국 국채 금리 하락이 주효하게 작용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비교적 저렴하게 자금 조달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회사채 금리는 미국 국채보다는 높지만, 시장 불확실성으로 다소 낮아진 상태다. ICE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데이터에 따르면 8일 기준 미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연 3.7%, 2년 만기는 연 3.6%에서 움직이고 있다. 지난달만 하더라도 연 4% 수준이었다.
지난달 미국 증시가 급락했던 점도 기업들이 회사채 발행을 서두르는 계기가 됐다. 지난달 2일 미국 노동부가 7월 실업률이 4.3%로 2021년 10월 이후 최고치로 치솟았다고 발표한 이후 뉴욕증시 3대 지수는 모두 하락했다. 이와 관련해 테디 호지슨 모건스탠리 채권 분석가는 "8월 초의 변동성은 채권 발행자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했다"며 "변동이 큰 기간에는 시장이 긍정적인 방향보다 부정적인 방향으로 훨씬 더 빨리 움직인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줬다"고 분석했다.
국내 기업도 회사채 발행에 속도
우리나라 역시 한동안 잠잠했던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최근 한 달간 회사채 순발행 규모는 2조1,684억원을 기록했다. 이전까지는 발행보다는 상환이 많은 순상환 기조를 보였으나 8월 후반부터 회사채 발행이 몰렸고 9월 들어서도 회사채 발행에 나서는 기업들이 적지 않다.
이는 기준금리 인하가 선반영되면서 기업들의 자금 조달 환경이 우호적으로 바뀐 영향이 크다. 신용등급 AA- 회사채 3년물 금리는 연초 3.989%였지만 지난 4일 3.506%를 기록했다. 지난달 초에는 3.402%까지 내려갔다. 이뿐 아니라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확대되고 있는 데다 9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이를 피해 선제적으로 발행하겠다는 의도도 깔린 것으로 분석된다.
수요도 긍정적이다. 지난 4일 수요예측을 진행한 GS EPS는 수요예측에서 총 1,500억원 모집 대비 6배에 달하는 8,900억원을 주문받았다. 같은 날 하이트진로홀딩스도 목표액 대비 무려 10배 넘는 9,220억원을 확보했다. 이어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총 2,000억원 모집에 1조3,700억원, 삼성물산은 총 3,000억원 모집에 2조2,300억원을 주문받았다. 5일 수요예측을 진행한 현대제철은 12일 발행할 예정이다. 기업 입장에선 연말로 갈수록 수급 측면에서 불리해질 수 있기 때문에 자금 조달 시기를 앞당기고 있는 것이다.
실제 5일 기준 연말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은행채는 약 72조원, 공사채는 약 31조원 규모다. 이 중 10조원 넘는 금액이 한전채 물량에 속하는데, 한전채는 차환을 위해 6월부터 꾸준히 발행되고 있다. 이에 대해 김명실 iM증권 연구원은 "만기가 도래하는 물량이 많은 만큼 공사채, 은행채 발행 물량은 점진적으로 확대될 것"이라며 "이는 일반 회사채 수급까지 가져가는 블랙홀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하반기에만 4~5곳 증권사 회사채 발행
국내 증권사들도 회사채 발행 시장에 속속 뛰어들고 있다.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삼성증권은 오는 지난 5일 3,000억원 규모 회사채를 발행하기 위한 수요예측을 진행했다. 만기는 3년물과 5년물로 나눴고, 최대 5,000억원으로 증액 발행을 염두에 두고 있다. 발행일은 12일이며 주관 업무는 KB증권과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SK증권 등이 공동으로 맡았다. 희망금리 밴드는 개별민평금리 대비 ±30bp(1bp=0.01% 포인트)를 제시했다.
이번에 삼성증권까지 가세하면서 올해 하반기 들어 회사채를 발행했거나 발행 예정인 증권사는 총 네 곳에 이르게 됐다. 앞서 신한투자증권을 시작으로 KB증권과 키움증권이 증권채 발행을 마쳤다. 여기에 NH투자증권이 총 3,000억원 규모로 회사채 발행을 검토 중이다. NH투자증권까지 발행 대열에 합류하면 올해 하반기에만 다섯 곳의 증권사가 회사채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게 된다.
증권사들이 하반기 줄줄이 회사채 발행에 나서는 건 현시점이 저금리에 실탄을 확보할 절호의 기회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및 국내 기준금리 인하가 기정사실로 되면서 현재 회사채 시장의 금리 수준은 금리 인하가 선반영된 모습이다. 금융투자협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기준 AA급 3년물 회사채 금리는 3.5% 수준에 그치고 있다. 저금리에 실탄을 확보할 뿐만 아니라 단기 조달 수단인 기업어음(CP)과 전단채 대신 장기 조달 수단인 회사채 비중을 늘려 '차입구조 장기화'까지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복안으로 분석된다.
증권채에 대한 투자자들의 높은 수요도 확인됐다. 하반기 회사채 발행에 나선 증권사 모두 모집액을 뛰어넘는 주문액을 받으며 최종 증액 발행에 성공했다. 신한투자증권이 지난 7월 2,000억원 회사채 발행에 나서 총 1조500억원의 주문 수요를 받아 최종 3,000억원으로 증액 발행했고 KB증권도 지난달 3,000억원 발행을 위한 수요예측에서 8,400억원의 투자 수요를 확인해 5,000억원으로 최종 증액 발행했다. 이어 키움증권 역시 1,500억원 모집에 1조1,500억원의 수요가 몰리면서 최종 3,000억원으로 증액 발행했다. 다만 발행 금리 수준은 증권사별 희비가 갈리고 있는 모습이다. 신한투자증권의 경우 모든 만기 언더발행(2년물 -7bp, 3년물 -9bp)에 성공한 반면 KB증권(2년물 10bp, 3년물 5bp)과 키움증권(2년물 8bp, 3년물 1bp)의 경우 전 만기 오버금리로 모집액을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