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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규제당국, 자국 기업에 '중국산 AI 칩' 구매 권고해
AI 칩 기술력 끌어올린 화웨이, 엔비디아 빈자리 채울까
자체 HBM 개발에도 속도 내는 中, 목표는 HBM2
중국이 자국 기업에 엔비디아 반도체 대신 현지에서 생산한 제품을 구매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미국 기업인 엔비디아에 대한 자국 시장의 의존도를 낮추고, 화웨이를 비롯한 중국 인공지능(AI) 칩 제조 업체의 성장을 지원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中 당국 "엔비디아 AI 칩 쓰지 마라" 권고
27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은 사안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 공업정보화부를 비롯한 중국 규제당국이 AI 모델을 개발하고 운영하는 데 사용되는 엔비디아의 중국 시장용 H20 그래픽처리장치(GPU)를 구매하지 말라고 자국 기업에 권고하는 이른바 창구 지침(window guidance)을 하달했다고 보도했다. 창구 지침이란 각국 중앙은행이 시중은행에 내려보내는 가이드라인과 유사한 것으로, 법적 강제력은 없다. 소식통들은 중국 당국이 자국 AI 스타트업에 부담을 줄이고 미국과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을 피하기 위해 권고 형태의 지침을 내렸다고 분석했다.
중국의 이번 권고에 대해 블룸버그도 “중국 반도체 산업을 발전시키고 미국의 제재에 대응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평가했다. 당국이 해당 권고를 통해 중국 AI 칩 제조업체의 시장 점유율 성장을 지원하고, 현지 기술 기업들이 미국의 잠재적인 규제에 대비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는 관측이다.
엔비디아 빈자리, 내수 기업이 채운다?
업계에서는 엔비디아가 이번 권고를 계기로 중국 시장에서 힘을 잃게 될 경우 화웨이 등 자체적인 AI 칩 기술력을 갖춘 중국 기업들이 내수 시장을 장악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지난 8월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로이터통신 등 외신은 화웨이가 최신 AI 칩인 ‘성텅 910C(어센드 910C)'를 개발, 중국 인터넷 회사·통신 회사들과 테스트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지난 29일에는 화웨이가 성텅 910C 프로세서를 하드웨어 테스트와 구성을 위해 엔비디아의 주요 고객인 대형 중국 서버 회사들에 제공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이같이 보도하며 "화웨이가 신규 어센드 910C 샘플을 제공하며 미국 제재 속 중국 반도체 자급 추진의 새로운 돌파구에 근접하고 있다"며 "화웨이가 중국 AI 산업 지원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분명하다"고 진단했다.
화웨이는 잠재 고객사에 성텅 910C의 성능이 미국 엔비디아의 H100과 유사하다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 성텅 910C의 성능이 엔비디아의 H100과 비등한 수준일 경우, 화웨이가 미국의 제재를 뚫고 AI 칩 분야에서 기술력 확보에 성공했다는 사실이 전 세계에 입증되는 셈이다. H100은 2022년 출시된 엔비디아의 AI 칩으로, 집적도가 두 배 높은 H200과 함께 엔비디아의 핵심 AI 칩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HBM 자체 생산에도 '박차'
화웨이는 AI 칩 생산을 넘어 AI 칩에 투입되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자체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앞서 지난 4월 미국 정보기술(IT) 전문매체 디인포메이션은 화웨이가 주도하는 반도체 컨소시엄이 중국 정부의 자금 지원을 받아 2년 이내에 HBM을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개발에 돌입했다고 보도했다. 컨소시엄에는 화웨이 외에도 중국의 메모리 반도체 제조회사인 푸젠진화집적회로공사(JHICC)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화웨이 HBM 컨소시엄의 현재 목표는 2세대 제품인 HBM2 개발·생산인 것으로 전해진다. HBM2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2016년 표준화를 주도하고 양산에 성공한 제품이다. 이와 관련해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2세대 구형 HBM은 여전히 데이터센터 등 AI 서버에 쓰이고 있으며, 시장 내에서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면서 "화웨이 HBM 컨소시엄이 주요 데이터센터에서 활용되는 수준의 HBM을 자체적으로 양산할 역량을 갖춘다면, 중국의 자체 AI 모델 운영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