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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성장률 전망치, 기관별 최대 0.8%포인트까지 낮춰 연내 기준금리 2회 인하 전망 우세, 성장 방어에 무게 저출생·고령화에 생산성 둔화 겹쳐 구조적 침체 우려

전 세계 주요 기관들이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잇달아 1% 이하로 낮춰 잡으며 ‘저성장’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불과 한 달 사이 0%대 성장을 예상한 기관이 두 배 가까이 늘어나며, 비관적인 전망이 확산하는 분위기다. 장기적인 전망도 밝지 않다. 현재의 추세가 지속될 경우 2040년대에는 한국 경제가 사실상 제로 성장이나 마이너스 성장에 머물 것이란 분석 결과가 나왔다. 저출생과 고령화에 따른 생산성 저하 등 구조적인 문제까지 겹치며, 한국 경제의 성장 동력이 빠르게 약화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기관별 성장률 전망치 최저 0.3%, 최고 2.2%
지난달 30일(현지 시각) 블룸버그통신이 집계한 조사에 따르면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을 포함한 41개 주요 기관 중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 이하로 예측한 기관은 30곳으로 집계됐다. 지난달 초까지만 해도 1% 이하의 성장률을 예측한 기관은 16곳에 불과했으나, 불과 한 달 만에 두 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평균 전망치는 0.985%로 이는 한 달 전(1.307%)보다 0.322%포인트 하락했다.
기관별 전망치는 0.3%에서 2.2% 사이에 분포했는데, 이 가운데 프랑스 소시에테제네랄(SG)은 한국은행의 공식 전망치인 0.8%보다 0.5%포인트 낮은 0.3%로 가장 낮은 수치를 제시했다. 0%대 성장률을 제시한 기관은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0.8%), 캐피털이코노믹스(0.5%), 씨티그룹(0.6%), HSBC(0.7%) 등 21곳으로 전체 과반을 차지했고, 여기에 바클레이즈·피치·노무라증권 등 9곳은 1%를 예측했다.
기관별 조정 추이를 보면 크레디아그리콜은 1.6%에서 0.8%로, HSBC는 1.4%에서 0.7%로, 싱가포르 DBS그룹은 1.7%에서 1.0%, SG는 1.0%에서 0.3%로 각각 전망치를 하향했다. 반면 전망치를 상향한 곳은 골드만삭스(1.0%→1.1%), 바클레이즈(0.9%→1.0%), 블룸버그 이코노믹스(0.7%→0.8%), 모건스탠리(1.0%→1.1%)로 고작 4곳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들 역시 상향 조정 폭이 0.1%포인트에 그쳤고, 여전히 1%대 초반에 머물렀다.
생산성 하락에 2041년부터 마이너스 성장 전망, 더 빨라질수도
장기적인 전망은 더욱 암울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달 발표한 '잠재성장률 전망과 정책적 시사점' 보고서에서 "한국의 총요소생산성 증가율이 최근 10년(2015~2024년) 평균인 0.6%에 수렴한다고 가정할 경우 2047년쯤에 잠재성장률이 0%로 떨어질 것"이라고 추산했다. 총요소생산성은 성장에 기여하는 요소 중 노동, 자본을 제외한 기술 혁신과 경영 체제, 노동자 업무 역량 등 나머지 부분을 의미한다.
KDI는 경제구조 개혁이 지체돼 총요소생산성 증가율이 0.3%로 하락하는 비관적 시나리오에서는 한국 경제가 2041년쯤부터 마이너스 성장에 진입할 것이라 진단했다. 다만 인공지능(AI) 기술 발전과 확산, 경제구조 개혁 진척 등에 따라 총요소생산성 증가율이 0.9%까지 반등할 경우, 2050년 플러스 성장(0.3%)을 예상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생산성과 잠재성장률을 저하시키는 주된 요인으로 저출생·고령화를 꼽았다.
앞서 KDI는 지난 2022년 11월 보고서에서는 “구조 개혁 미흡 등으로 한국의 생산성 증가율이 0.7%로 정체되는 비관적 시나리오에서는 2050년에 잠재성장률 0%를 기록할 것”이라 전망했다. 비관적 시나리오만 놓고 비교하면 성장률이 0% 이하로 떨어지는 시기가 2년 새 9년가량 앞당겨진 것이다. 이에 대해 KDI 연구진은 “그동안 새로 발표된 인구 전망 등을 반영해 22년 당시보다 총요소생산성 증가율을 낮췄다”고 했다.
최근 0%대 경제성장률 전망이 속속 나오는 가운데 시장 전문가들은 2041년부터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시나리오마저 장밋빛 전망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내놓는다. 최근들어 국내 주요 제조업 분야 대부분이 중국의 저가 공세에 밀리거나 기술적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고 있다는 전망이 반복적으로 제기되고 있는만큼, 요소생산성 증가율이 연평균 0.6%라는 전망 자체가 시장 변화를 고려하지 않은 낙관론이라는 설명이다.

8월·11월, 연내 2회 기준금리 인하 전망 우세해
한국 경제가 제로 성장기에 진입할 것이란 우려가 확산하는 가운데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지난달 29일 한은은 금융통화위원회를 열어 기준금리를 25bp(1bp= 0.01%포인트) 내렸다. 5월 금통위 이후 국내외 증권사 15곳이 발표한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13곳은 오는 8월 한은이 추가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할 것으로 전망했다. 금통위원 6명 중 4명이 3개월 내 추가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뒀고, 성장의 하방 위험이 거세기 때문이다. 한 곳은 7월 추가 인하를, 나머지 한 곳은 8월 또는 10월 인하를 각각 예상했다.
교보증권은 "추가 인하 시점은 7월보다는 8월이 더 유력하다"며 "당분간 통화정책의 무게 중심은 성장 하방 리스크 대응에 맞춰질 것"이라고 판단했다. 키움증권은 "가계부채 이슈를 비롯해 금리 인하로 인해 자산시장으로 유동성이 흘러갈 가능성을 경계하는 모습"이라며 "7월 연속 인하하기보다는 8월에 인하한 후 신정부 정책을 점검하면서 대응할 가능성이 크다"고 제시했다. 다만 신영증권, IBK투자증권 등 일부 전문가들은 가계부채 급증, 외환시장 변동성 확대 가능성 등으로 추가 금리 인하 시점이 뒤로 밀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연내 금리 인하 횟수로 2회를 전망한 곳이 8곳으로 전체 15곳 중 절반을 넘겼다. 현재 연 2.5%인 기준금리가 연말까지 2.0%로 하락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한 것이다. SK증권은 인하 시점을 8월과 11월로 제시하면서 연속 인하를 피하고 속도 조절에 나설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대내외 여건에 따라 내년 1분기까지 금리 인하기가 이어질 것이란 예측도 나왔다. 메리츠증권은 8월과 11월 2차례 기준금리 인하를 예상하면서도, 11월 이후 미국 통화정책과 국내 추경 효과에 따라 올해는 2.25%에서 멈출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