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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인수 결정 때는 1.3조, 실사 후 EBITDA 규모 축소 전망
연간 EBITDA 650억원의 20배에서 인하된 가격 예상
업계서는 1조1천억원대 초반에 거래될이란 것 전망도
효성화학이 재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진행 중인 특수가스 사업부 매각 협상이 난관에 봉착했다. 지난 7월 IMM 프라이빗에쿼티(IMM PE)와 스틱인베스트먼트 컨소시엄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지정되면서 1조3,000억원에 매각되는 것으로 협상이 이어졌으나, 실사 후 영업현금흐름이 기대치에 못 미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당초보다 매각 가액이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우협으로 지정될 당시에는 연간 상각전영업이익(EBITDA) 650억원의 20배인 1조3,000억원에 인수 희망가액을 제시했지만, 8월 중 진행된 실사에서 예상보다 EBITDA 예상치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앞서 효성그룹 측은 당초 49% 지분만 매각할 예정이었다가 효성화학의 재무 사정이 빠르게 악화되자 경영권 매각으로 방향을 바꾼 바 있다. 이번 매각을 통해 재무 상황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겠다는 방침이었으나, 매각 가액이 줄어들면서 기대보다 경영 정상화가 늦춰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효성화학, 재무 부담에 가격 협상 끌려다닐 수밖에 없었나?
14일 IB(투자은행)업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말 기준으로 효성화학의 유동부채는 2조9,118억이었던 반면, 자본 잠식에 해당할 만큼 자본금은 없는 상태였다. 베트남 공장에서 발생한 손실을 메워넣으면서 자본금이 모두 소진됐기 때문이다. 올해 초 급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추진한 500억원 사채 발행에도 실패할 정도로 시장에서는 효성화학의 재무 건전성에 의문을 품고 있다.
효성그룹 측이 당초에는 일부 지분 매각을 고민하다 경영권 전체 매각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도 회사 재무 사정 악화와 무관치 않다. 다만 이번 매각을 통해 1조1,000억원의 자금이 들어와도 여전히 1조8,000억원 규모의 부채가 남는 상황이라 효성 측은 가격 협상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견지했으나, 실사 후 EBITDA가 예상치보다 모자란 600억원대에 불과했다는 점과 국내 증시에 상장돼 있는 산업용 가스 관련 기업들이 EBITDA 배수 기준으로 10배 내외에서 거래되고 있는 점 등이 인수 측의 협상 지렛대로 작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국내 증시에는 원익머트리얼즈가 지난해 EBITDA 기준으로 약 10~11배 내외의 가치로 거래되고 있고, 동성화인텍이 9배, 태경케미컬이 7배에 거래되고 있다.
효성화학 측도 지나치게 낮은 몸값은 수용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유지했다. 효성화학의 특수가스 사업부가 주력으로 생산하는 삼불화질소(NF3) 시장은 반도체 산업 성장과 함께 동반 성장이 가능한 상품군인 만큼 일반 산업용 가스와 같은 배수는 받아들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효성화학 측은 자금난으로 어려웠던 특수가스 설비 확장이 가능해질 경우 반도체 산업 성장과 함께 회사의 수익성이 대폭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금융 협상 난항도 한몫, 금융기관들 급할 것 없다
당초 NH투자증권, KB증권, 신한은행이 인수금융을 주선했지만 실사 후 EBITDA 수치 조정이 있으면서 국내 금융기관들이 재고에 들어간 것도 가격 협상에서 효성화학이 어려움을 겪는 부분이다. 관계자에 따르면 계약 완료를 연말까지로 지정해 놓은 만큼, 국내 금융기관들도 상황을 보면서 대응하겠다는 태도로 바꾼 것으로 전해졌다. 인수가액이 낮아져야 인수 금융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매각 가액 하한선을 1조2,000억원으로 고집했던 효성화학 측 역시 효성화학 재무 사정, 영업현금흐름, 인수금융 사정 등을 감안해 인하된 가격을 수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예상이다.
특수가스 사업부 매각 자금은 부채 상환과 베트남 법인 살리기에 쓰일 예정이다. 효성화학의 재무 구조는 지난 2018년 연간 폴리프로필렌(PP) 60만 톤을 생산할 수 있는 베트남 공장 건설에 1조5,000억원 이상을 쏟아부으면서 악화되기 시작했다. 설비 문제 등으로 공장 가동과 중단을 반복하면서 적자가 지속된 데다 현지 정부 및 인력들과의 마찰이 반복되면서 생산 설비를 구축하는 데 예상보다 긴 시간을 쓰게 된 탓이다. 효성화학을 상속받는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측 관계자에 따르면 회사 내부적으로도 베트남 공장이라는 경영 패착이 없었다면 특수가스 사업부를 매각하지 않았어도 됐다는 아쉬움이 퍼져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현준의 경영 능력 본고사는 합격점?
그런가 하면 효성그룹 내부에서는 이번 매각이 조 회장의 경영 능력에 대한 시장 및 사내 평가와도 직접 관련이 돼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그간 외부에는 고(故) 조석래 전 명예회장이 뒤에서 지원만 한다고 알려졌지만 실질적으로는 조 전 명예회장이 회사 경영을 총괄하고 있었던 만큼, 조 회장이 경영 컨트롤을 직접 하게 된 후로 사실상 첫 번째 도전을 극복할 수 있느냐 여부를 통해 향후 효성그룹의 성장 가능성을 점치겠다는 것이다.
당초 베트남 공장 설립도 "100년 효성의 미래를 베트남에서 열겠다"던 조 회장의 의욕이 강하게 반영된 경영 결정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효성 그룹 내 가장 알짜 사업부에 해당하는 특수가스 사업부를 매각하면서까지 살리는 작업을 하고 있는 베트남 공장과 더불어, 효성TNC(효성티앤씨), 효성TNS(효성티앤에스) 등 핵심 계열사들의 베트남 현지법인들도 동반 실적 부진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효성화학이 베트남에서 직접 운영 중인 폴리프로필렌(PP) 공장은 PP 가격 급락으로 인해 2021년 725억원, 2022년 3,137억원, 2023년 2,594억원 규모 당기순손실을 각각 기록했으며, 올해 상반기에도 1,232억원 규모 적자를 냈다. 해당 기간 누적 손실만 7,700억원에 육박한다. 이어 효성티앤씨의 베트남 완전자회사(지분 100%)인 'Hyosung Dong Nai Co., Ltd.'(동나이 스판덱스)도 당기순이익이 2021년 3,289억원, 2022년 1,206억원, 2023년 628억원으로 3년 만에 81%나 줄어들었다. 2022년 하반기에 설립된 'Hyosung Dong Nai Nylon Co., Ltd.'(동나이 나일론) 역시 지난해 7억원 적자에 이어 올해 상반기에도 47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특수가스 사업부 매각에서 시장이 납득할 수 있는 협상력을 보여주느냐가 조 회장의 경영 능력을 보여주는 잣대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