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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세점 특허수수료 매출액 대비 최대 1%
인천공항 여객 수 연동 임대료 산정 부담
중국인 관광객 팬데믹 이전 80% 수준 그쳐
국내 면세점 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 3분기 면세점 대부분이 적자를 면치 못한 가운데 인천공항 임대료 인상까지 겹치며 사면초가에 놓인 것이다. 면세 업계는 인력 조정과 비용 절감 등 일제히 비상 경영에 돌입했다.
50% 감면 특허수수료, 올해부터 전액 부과
13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정부가 2020년부터 적용해 온 보세판매장 특허수수료 50% 감경 조치가 올해로 종료된다. 이번 조치에 따라 국내 면세점들은 수수료 감경 혜택이 사라진 2024년분 수수료를 내년 초 일제히 납부해야 한다. 현행 관세법에서는 면세점 이익의 사회 환원을 도모한다는 취지에서 매출액의 일정 비율을 특허수수료로 징수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수수료율은 매출액 2,000억원 이하 면세점은 최대 0.1%, 매출액 1조원 초과 면세점은 1.0% 등 매출액별로 차등 적용된다. 면세사업자는 사업 당해년도 이듬해 3월까지 특허수수료를 납부해야 한다.
앞서 정부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불황을 겪고 있는 면세점 업계의 고충을 덜어주고자 특허수수료를 50% 감면해 줬다. 관세법 시행규칙 개정을 통해 2020년부터 3년간 감경 혜택을 준 것이다. 기재부는 당초 약속한 3년이 지난 만큼 올해부터는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코로나19가 종식된 만큼 더 이상 감경 규정을 적용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밝혔다.
면세 업계에서는 정부의 수수료 감경 조치로 연간 최소 140억원의 비용이 절감되는 것으로 추산했다. 아직 시장의 불황이 끝나지 않은 만큼 수수료 감경 혜택 종료가 면세 업계에 막대한 부담으로 다가올 것이란 주장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매출액 기준으로 특허수수료를 부과할 경우 적자를 기록해도 수수료를 내야 한다”고 지적하며 “특허수수료 부과 기준을 영업이익 기준으로 바꾸는 등 특허수수료율을 손보지 않으면 면세 업계는 공멸하고 말 것”이라고 우려했다.
치솟는 인천공항 임대료 또한 면세 업계의 시름을 깊게 만드는 요소다. 면세사업의 주요 매출처인 인천공항이 2022년부터 면세점 임대료 부과 기준을 기존 고정 임대료 방식에서 여객당 임대료로 변경했기 때문이다. 여객 수에 응찰단가를 곱해 임대료를 산정하는 탓에 인천공항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할수록 임대료 또한 올라가는 구조다. 신라면세점과 신세계면세점, 현대면세점 등 3사는 방문객 1명당 최저 2,000원에서 최고 9,000원의 임대료를 제시해 인천공항 면세사 업권을 따낸 것으로 전해진다.
이같은 여객 수 연동 임대료 산정 방식은 곧바로 적용되지 않았다. 인천공항이 확장 공사 중인 탓에 면세점 대부분이 임시 매장 형태로 운영됐고, 코로나19 여파에 따른 임대료 감경 조치까지 적용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천공항 확장 공사가 끝난 올 7월부터는 면세점 업체들이 속속 정식 매장으로 전환했고, 이에 여객 수 연동 임대료가 적용되고 있다.
문제는 올해 해외여행객 규모가 팬데믹 이전 수준에 버금가는 만큼 이용객 수 기준으로 임대료를 낼 경우 면세점의 영업 실적에 엄청난 타격이 예상된다는 점이다. 코로나19 확산 전인 2019년 출국장 승객 수(연간 3,500만 명)를 기준으로 면세 업계가 인천공항에 내야 할 임대료는 최대 8,000억원가량으로 추산된다. 신라면세점과 신세계면세점이 각각 4,000억원대, 현대면세점이이 390억원대다. 신세계면세점의 연평균 인천공항 매출이 6,000억원인 것을 감안하면 임대료로만 매출의 60%이상이 빠져나가는 셈이다.
부진한 실적에 비상 경영체제 돌입
더 큰 문제는 공항이나 면세점을 찾는 여행객 수의 증가가 매출 확대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국의 경기 침체로 중국인 단체 관광이 급감한 데다, 대량으로 물건을 매입해 중국에서 되파는 보따리상 또한 줄어든 결과다. 한국관광 데이터랩에 따르면 관광을 목적으로 한국을 방문한 중국인은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총 179만8,407명으로 코로나19 확산 이전인 2019년 223만3,256명의 80.52% 수준에 그쳤다.
중국인 관광객의 감소는 면세점 실적 악화로 직결됐다. 면세점 업계에서 가장 먼저 3분기 실적을 발표한 호텔신라는 3분기 적자 전환했다. 영업손실이 170억원으로 면세점 부진의 영향이 컸다는 설명이다. 호텔신라의 면세 부문 영업 손실은 387억원으로 전년 동기(163억원 적자) 대비 그 폭을 키웠다. 롯데·신세계·현대면세점의 3분기 성적표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이와 비슷한 수준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에 면세점 업계는 저마다 실적 개선을 위한 움직임에 돌입했다. 대표이사 교체, 신규 브랜드 유치 등을 통해 사업 경쟁력을 제고하고, 활로를 모색한다는 복안이다. 먼저 현대백화점그룹은 주요 계열사 대표를 전원 유임시키면서도 현대면세점에는 수장 교체를 단행했다. 현대면세점의 새 대표이사로는 33년째 면세점 업계에 몸담은 박장서 영업본부장이 선임됐다. 지난 2020년 영업본부장으로 현대면세점에 입사한 이후 4년 만에 대표이사직에 오르게 된 것이다.
롯데면세점도 상황이 비슷하다. 롯데면세점은 지난 6월 비상경영체제를 선포, 임직원의 일하는 방식을 변경해 조직 효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비용 지출의 형평성을 제고하는 등 내실 다지기에 돌입했다. 또 잠실 월드타워점 타워동 매장 반납을 통해 비용 절감과 고객 쇼핑 편의 극대화에 나서는 등 경쟁력 회복에 힘을 쏟았다. 하지만 이르면 이달 말 진행될 임원 인사에서 김주남 대표이사의 유임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中 소비풍조 변화에 전 세계 유통가 찬바람
한편 꽉 닫힌 중국인들의 지갑은 자국 명품 업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한때 세계 명품시장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급성장했던 중국 시장이 차갑게 식으면서 명품 브랜드들이 일제히 매출 급감에 직면한 것이다. 루이뷔통, 크리스챤디올 등 브랜드를 보유한 LVMH는 올 3분기 매출이 전년동기 대비 3% 하락했으며, 구찌와 발렌시아가 등을 보유한 케링그룹은 매출 감소 폭이 16%나 됐다.
중국 명품시장 위축 가장 큰 원인으로는 경기 부진이 꼽힌다. 올 1분기 5.3%를 기록한 중국의 경제 성장률은 2분기 4.7%, 3분기 4.6%로 계속 둔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3대 성장 동력으로 꼽히는 수출과 투자, 소비 가운데 투자와 소비가 바닥에서 헤어나지 못한 탓이다. 중국의 월별 소비증가율은 지난 3월부터 3%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중국 내에서는 경기 침체 장기화 속에 중산층 분화, 양극화가 본격화된다는 분석이 나온다. 경기에 관계없이 높은 소득을 거두는 고소득층의 구매력은 일정 수준을 유지하지만, 경기에 따라 소득 부침이 큰 중산층은 명품 및 여행 소비가 위축된다는 설명이다. 중국 포털사이트 시나닷컴은 “수개월 치 월급을 털어서 명품을 사거나 여행을 떠나는 사치 풍조가 그동안 중국 시장 급성장의 동력이었다”고 짚으며 “경기 침체와 시장 환경 변화로 이같은 소비풍조가 변하는 추세”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