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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저케이블 생산공정 도면 유출 의혹 LS "전방위 기술 빼갔다" vs 대한 "사실과 다르다" 경찰, 대한전선·가운건축사무소 압수수색
경찰이 국내 전선업계 1위인 LS전선의 해저 케이블 기술을 빼갔다는 혐의를 받는 경쟁사 대한전선 공장에 대해 추가 압수수색에 나섰다. 이번 압수수색은 지난 6월과 7월에 이어 세 번째다.
경찰, 기술 탈취 여부 등 조사
22일 전선업계에 따르면 경기남부경찰청 산업기술안보수사대는 이날 오전 9시경부터 충남 당진시 대한전선 공장에 수사관들을 투입해 압수수색을 진행 중이다. 충남 당진 공장은 장거리 송전이 가능한 해저 케이블을 생산하는 곳이다. 경찰은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내부 서류 등을 토대로 LS전선의 해저케이블 기술이 실제 대한전선에 유출됐는지 등을 살펴본다는 방침이다.
경찰은 LS전선이 보유한 해저케이블 공장 설계 노하우가 가운종합건축사무소를 통해 대한전선에 유출됐다는 의혹에 대해 수사하고 있다. 경찰은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등 혐의로 대한전선 및 가운건축 관계자 등을 형사 입건하고 해당 업체들을 대상으로 여러 차례 압수수색을 벌여왔다. 경찰이 대한전선 측을 압수 수색한 것은 이날로 세 번째다.
첨단 기술 유출 의혹, 날선 신경전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을 종합하면 양사 분쟁의 쟁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해저케이블 품질 경쟁력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초고압 직류 송전(High Voltage Direct Current, HVDC)’ 기술 유출 의혹이고, 다른 하나는 공장 설비 세부 정보를 포함한 배치 도면, 이른바 '레이아웃'을 보호법익으로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다.
HVDC는 전력을 더 멀리, 고효율로 송전하는 차세대 기술로 풍력,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발전에 주로 쓰인다. 다만 개발 난이도가 높고 까다로워 극소수의 글로벌 기업만이 기술을 확보한 상태다. 국내에서는 LS전선과 대한전선이 이 기술을 보유 중이다. 그중에서도 LS전선은 해저, 대한전선은 육상 쪽에 특화돼 있다.
LS전선은 대한전선이 자사의 해저케이블 제조 관련 핵심 기술 데이터를 탈취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구체적으로 대한전선 측이 가운건축을 통해, LS전선의 강원도 동해시 해저케이블 공장(1~4동) 설비 도면과 배치 계획, HVDC 자료를 불법 입수했다는 것이다. 가운건축은 2008년부터 2023년까지 LS전선과 파트너십을 유지하며 해당 공장 건축 설계 작업을 수행했다. 이후 대한전선의 충남 당진공장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오랜 경쟁 관계인 두 회사가 동일한 건축사무소에 설계를 의뢰하면서 분쟁이 발생한 셈이다.
기술 유출 의혹에 대한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이를 둘러싼 양사 간 공방도 이어지고 있다. LS전선은 지난 7월 공식 입장을 내고 "대한전선의 기술 탈취가 사실로 밝혀질 경우 국내외에서 모든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한전선도 설명 자료를 내고 LS전선의 영업비밀을 탈취 및 활용한 바가 없으며 가운건축은 공정하게 선정된 업체라고 주장했다. 대한전선은 "대한전선이 가운건축에 먼저 연락해 수 차례 설계를 요청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고 경쟁사의 계약 금액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며 "가운건축은 공장 공간을 설계하는 업체로, 당사는 전문업체를 통해 해저케이블 설비를 제작, 설치했다"고 일축했다.
대한전선, 해저케이블 생산설비 대규모 투자
경찰 압수수색은 기술 탈취 의혹의 변곡점이라고 할 수 있다. 국내외 해저케이블 공사 수주를 놓고 양보 없는 경쟁을 벌이는 두 기업은 물론이고 업계 전반에 영향을 미칠 새로운 변수로 주목받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대한전선이 해상풍력 송전망 해저케이블 사업을 강화하면서 LS전선과 더욱 치열한 수주 경쟁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대한전선은 해상풍력발전 송전망에 쓰일 해저케이블 수주를 위해 발표가 임박한 정부의 해상풍력발전 사업자 입찰 결과 발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올해 하반기 해상풍력발전 입찰물량은 총 1.5GW(고정식 1.0GW, 부유식 0.5GW)로 결과는 12월 중 개별 사업자(디벨로퍼)에 통보될 예정이다. 이후 낙찰 사업자들이 입찰계획서에 써낸 해저케이블 제조사들과 공급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업계에서는 개별 풍력 터빈의 전력을 모아 해상변전소로 연결하는 저전압 구간을 ‘내부망(Inter-Array Submarine Cables)’, 해상변전소에서 지상변전소까지 연결하는 고전압 구간을 ‘외부망(Export Submarine Cables)’로 구분한다. 통상 저전압 전선인 내부망 해저케이블의 기술 난도가 낮고, 고전압 전선인 외부망 해저케이블이 기술 난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한전선은 올해 2월 154kV급 초고압 해저케이블 시스템 개발을 마치고 외부망 해저케이블 생산 준비를 완료했다. 또 HVDC 해저케이블과 다이내믹 해저케이블 등 차기 케이블을 개발 중이다.
대한전선이 해상풍력발전 해저케이블 사업에 본격 진입한 건 올해 5월로, 충남 당진에 내부망 해저케이블을 생산하는 1공장 1단계 설비 준공을 마치면서다. 현재 대한전선은 2027년 완공을 목표로 1조원 규모의 해저케이블 2공장 건립 계획을 확정했다. 2공장은 2025년 상반기 완공 예정인 해저케이블 1공장 2단계와 마찬가지로 외부망 해저케이블을 생산할 예정이다. 대한전선 측은 2공장 완공 시 생산능력(캐파)이 현재 연간 약 2,500억원에서 약 5배 늘어난 연간 1조1,000억~ 1조2,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