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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대출' 의혹에 발목 잡힌 조 행장 "조직 쇄신 위해 연임 않겠다" 의사 전달 금감원 공개 압박 지속, ‘인사 개입’ 시각도
우리은행의 '기업금융 명가' 재건 선봉장이었던 조병규 행장이 조직 쇄신을 위해 용퇴를 결정했다. 조 행장 임기 만료를 앞두고 후임 선정 절차가 진행 중인 가운데, 연임하지 않겠다는 뜻을 확실히 한 것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금융감독원의 강도 높은 압박이 겹치면서, 금융당국의 인사 개입 논란에도 불이 붙은 모습이다.
조병규 행장, 이사회에 사퇴 의사 전달
26일 우리금융그룹은 조 행장이 조직 쇄신을 위해 연임을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이사회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조 행장은 또 자회사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자추위)에 은행장 후보 롱리스트에서 자신을 제외하고 후임 은행장을 선임해 달라고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는 조 행장은 금융당국 뿐 아니라 검찰 수사까지 확대되는 등 손태승 전 회장 부당대출 사태에 따른 경영진 책임론 파장을 감안해 최종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금융은 이르면 이번주 차기 우리은행장을 공개할 방침이다. 현재 거론 중인 유력 후보로는 김범석 우리은행 국내영업부문 부행장, 박장근 우리금융지주 리스크관리부문 부사장(은행 리스크관리그룹 부행장 겸임), 이정수 지주 전략부문 부사장, 정진완 은행 중소기업그룹 부행장, 조병열 은행 연금사업그룹 부행장, 조세형 은행 기관그룹 부행장 등이 꼽힌다. 우리금융 관계자는 "자추위는 이에 따라 후임 은행장 선임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6개월간 우리은행 릴레이 검사
검찰은 우리은행이 2020년 4월부터 올해 1월까지 손 전 회장 친인척과 관련된 법인 및 개인사업자에게 350억원 규모의 부당대출을 해줬다는 조사 결과를 넘겨받아 지난 18일 우리은행 본점과 조 행장 사무실,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 사무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금감원도 우리금융과 우리은행에 대한 정기검사 종료 시점을 지난 22일에서 추가로 일주일 연장한 상태다.
지난달 7일 정기검사를 시작한 금감원은 원래 종료 시점이었던 지난 15일에도 보다 심도깊은 조사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검사 기한을 이미 한 차례 연장한 바 있다. 당초 정기검사는 6주간 진행돼 이달 15일 마무리될 예정이었지만 확인할 것이 많다는 판단에 따라 검사 기한을 한 차례 연장한 것이다. 금감원의 우리은행에 대한 검사는 약 6개월간 진행되고 있다. 손 전 회장 친인척 부당대출이 수면위로 드러난 뒤 6~7월 수시검사, 8~9월 추가 수시검사를 실시했다. 이어 곧바로 정기검사를 10월부터 돌입했다. 정기검사는 내년에 예정됐던 일정을 1년 앞당긴 것이다.
여기에 검찰까지 가세함에 따라 우리금융·은행에 대한 압박수위는 점차 높아지고 있다. 검찰은 조 행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하고, 불법 대출을 승인한 혐의로 전 우리은행 부행장 성 모씨를 구속 기소했다. 검찰이 수십억원 불법대출 혐의를 추가로 파악한 만큼 금감원 정기검사 기간도 계속 연장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금감원은 이번 정기검사에서 내부통제 시스템, 조직문화, 건전성 등 경영관리 전반을 점검할 예정이다. 아울러 대규모 부당대출에 대한 원인도 함께 들여다볼 방침이다. 수시검사에서 우리은행의 대출심사가 부실했다는 문제점을 발견했으나, 내부통제와 지배구조, 경영진 책임 등 더욱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하기엔 부족하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금감원은 임 회장과 조 행장이 부당대출을 인지했음에도 감독당국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점에 강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다. 금융사고 미보고는 은행법 위반에 해당한다.
우리금융의 조직문화도 세밀하게 들여다볼 예정이다. 금감원 검사 결과 우리은행, 우리금융저축은행, 우리금융캐피탈 등 계열사 전방위로 퍼진 부당대출은 우리은행 출신 전현직 직원들이 서로 밀고 당겨주며 이익을 취하는 과정에서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금감원 내부에서는 아무런 제한 없이 은행 퇴직자가 계열사로 재취업하는 일이 과연 합당한 것인지 의구심을 팽배하다.
현재 금감원은 정기검사와 수시검사에 대한 제재절차를 동시에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제재 결과는 이르면 내년 1분기에 나올 것으로 보인다. 조직문화에 대한 제재는 법률적인 근거가 없는 만큼 경영유의 등 행정지도 조치로 진행될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 관계자는 "추가로 확인해야 하는 사안들이 생겨 검사 일정을 연장하고 있다"며 "파벌 등 조직문화에 대한 우려는 계속 전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인사 개입' 우려 목소리도
이런 가운데 금융권에서는 조 행장의 사퇴를 두고 금융당국의 인사개입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물론 유독 우리금융에서만 대규모 금융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어 경영진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는 분위기지만, 업계는 금융사고 미보고가 최고경영자 거취까지 결정할 수준의 제재 사안인지에 대해선 의문을 표하고 있다.
임 회장은 올해 3월 부당대출 보고를 받았으나, 내부 확인을 이유로 4~5개월가량 금감원 보고를 미뤄왔다. 즉 회장이 신고를 지연한 상황에서 조 행장이 먼저 나서기도 상식적으로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금감원의 행보도 이례적이다. 금감원은 부당대출과 관련해 지난 6월부터 수시검사에 돌입했는데, 10월부터 정기검사로 전환하면서 6개월째 상시검사를 진행 중이다. 이 역시 전례 없는 조치다.
이렇다 보니 일각에서는 금감원의 칼끝이 사실상 임 회장까지 겨냥하고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검찰이 우리금융 압수수색에서 임 회장의 사무실까지 들여다봤고, 금감원이 이례적으로 '검찰에 협조하겠다'는 입장까지 내놓은 만큼, 단순히 조 행장이 물러난 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내부통제 중요성을 계속 강조하는 상황에서 문제가 발생했다면 경영진이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법에 근거해 원칙으로 대응하면 충분한데, 금감원이 마치 칼을 든 정의로운 무사처럼 징벌적 조치를 행하는 것은 우려스러운 대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