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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램 평균 가격 8월 이후 줄곧 하락세
가격 낮춰 경쟁사 적자 키우는 전략
기술확보·생산 단가 하락은 과제로
10년 넘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의 3강 독점 체제가 이어져 온 글로벌 D램 시장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저가 D램을 앞세워 시장에 진출한 중국 기업들이 생산량까지 크게 늘리며 굳건했던 3강 체제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일각에선 10여 년 전 삼성전자가 주도한 D램 시장의 ‘치킨게임’이 다시 한번 반복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우리 기업들은 중국 업체들의 성장을 견제하기보다는 각자의 수익성 확보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업계 3위’ 마이크론 자리 넘보는 CXMT
26일 업계에 따르면 중국 D램 제조업체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스(CXMT)는 D램 생산능력을 2022년 월 7만 장 수준에서 지난해 월 12만 장, 올해 월 20만 장으로 꾸준히 확대하고 있다. 이에 따라 CXMT의 글로벌 생산능력 비중은 2022년 4%에서 올해 연말이면 12%에 달할 전망이다. CXMT는 내년 연말 월 30만 장 수준의 생산능력을 갖춘다는 목표를 제시했고, 이런 목표가 현실화할 경우 CXMT의 생산능력 비중은 15%를 넘어서게 된다.
2016년 설립된 신생 기업 CXMT이 단기간 가파른 성장세를 기록한 배경에는 ‘반도체 굴기’를 내세운 중국 정부의 대규모 보조금이 자리하고 있다. 중국 반도체산업 육성 펀드인 국가집적회로 산업투자기금 규모는 올해 5월 기준 3,440억 위안(약 66조원)에 달한다. LS증권에 의하면 내년 CXMT의 설비투자(CAPEX)는 전년 대비 45% 증가한 55억 달러(약 7조6,114억 원)에 달할 전망이다.
2010년대 이후 D램 시장에서 3강 체제를 굳건히 지켜온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은 CXMT의 가파른 성장세를 예의주시하는 모습이다. 이들 기업의 글로벌 D램 생산능력 비중은 각각 37%, 25%, 17% 수준으로, 특히 3위 마이크론의 경우 CXMT의 추격 가시권에 놓이기도 했다. 글로벌 D램 시장에 다시 한 번 치킨게임이 시작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는 이유다.
치킨게임은 특정 시장에서 둘 이상의 기업이 경쟁하고 있을 때 어느 한쪽이 포기를 선언할 경우 상대적으로 큰 손해를 안고 시장을 떠나게 되지만, 누구도 양보하지 않을 경우 모두가 출혈을 피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을 의미한다. 결국 D램 치킨게임에서 패배하지 않기 위해선 가격경쟁을 극한으로 밀어붙여 경쟁사의 적자 규모를 키우고, 회생 불가 상태에 빠트려야 하는 셈이다.
시장에서는 이미 가격 하락 움직임이 포착되며 치킨게임의 서막을 알렸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의 조사에서 9월 기준 DDR4 8Gb(기가비트) D램의 평균 고정거래 가격은 1.7달러로 전월 대비 17.07% 하락했다. CXMT가 본격적인 증산에 돌입한 8월(전월 대비 2.38% 하락)에 이어 낙폭을 더 키운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한 업계 관계자는 “중국 기업들은 공급이 많아져서 가격이 내려가는 것을 신경 쓰지 않는다”며 “저가형 제품으로 시장을 장악하고 상위 시장이 무너지면 그곳까지 점령하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엘피다 밀어낸 삼성전자’를 밀어내려는 中 기업
D램 시장 내 치킨게임은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현상이다. PC에 주로 사용되는 D램은 PC를 대체하는 새로운 기기들이 속속 등장할수록 가격 하락세와 시장 경쟁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면서 이런 현상은 눈에 띄게 가속했다. 대표적으로는 삼성전자가 주도한 2010년대의 사례를 꼽을 수 있다. 당시 삼성전자는 수요 감소에 대응해 전체적으로 공급을 줄이기보다는 오히려 공급을 늘려 경쟁 업체를 밀어내는 전략을 취했다.
삼성전자의 제물로는 일본 엘피다가 낙점됐다. 엘피다는 여러 개로 나뉘어 있던 일본의 D램 반도체 업체들이 삼성전자와 대적하기 위해 하나로 뭉친 일종의 ‘일본 D램 연합군’이다. 2007년과 2008년 모두 2,000억 엔이 넘는 적자를 낸 엘피다는 2009년 300억 엔의 공적자금을 지원받고, 4개 은행으로 이뤄진 채권단으로부터는 1,000억 엔을 융자했다.
이에 힘입어 2009년과 2010년 반짝 흑자를 기록했지만, 2010년 말부터 다시 위기를 맞았다. D램 가격 급락에 엔고까지 겹치면서 5분기 연속 적자를 거듭하게 된 것이다. 결국 2012년 2월 엘피다는 6,000억 엔 상당의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고 파산을 선언했다. 이전까지 엘피다의 글로벌 D램 시장 점유율은 12.2%에 달했다.
엘피다가 백기를 들고 시장을 빠져나가는 사이 삼성전자는 2007년 30%를 밑돌던 시장 점유율을 45%까지 끌어올렸다. 이를 두고 샌포드 번스테인 마크 뉴먼 애널리스트는 “D램 업계는 이번 엘피다의 파산으로 몇 개 업체가 전체 공급량을 통제하는 등 사실상 가격경쟁이 존재하지 않는 독과점 시장이 될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지금과 같은 3강 체제가 구축된 배경이다.
결국 기술력 싸움, 점유율→수익성에 방점
중국 기업들이 삼성전자의 전례를 고스란히 반복하기 위해 애쓰는 가운데, 변수로는 생산 단가가 꼽힌다. 미국 정부의 견제를 받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중국 업체들의 기술 확보와 그에 따른 생산 단가 하락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 업체들은 10나노미터(㎚·10억분의 1m)급 D램 개발을 위한 미세 공정 실행에 사용되는 EUV(극자외선) 노광 장비 확보에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우리 업체들도 한층 방어 태세를 강화하는 모습이다. 앞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내년 레거시 D램 외 고부가가치 제품인 HBM과 선단 공정의 D램 제품 생산에 집중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기존 공정 전환을 가속화하고 레거시 제품 비중을 줄인다는 설명이다. HBM이나 기업용 eSSD 등 고부가가치 제품에 대한 의존도를 높여 수익성을 확보한다는 복안이다.
최근 글로벌 D램 시장 내 수요가 인공지능(AI) 서버용 메모리에 집중되고, 여타 IT 기기에 대한 수요 회복은 더딘 만큼 이와 같은 전략은 일정 수준 효과를 거둘 전망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재 명확하게 수요가 발생하는 분야는 AI 서버밖에 없는 탓에 HBM이 기업 수익성에는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이규복 한국전자기술연구원(KETI) 연구부원장 또한 “앞으로 하이엔드는 한국이, 레거시는 중국이 각각 독식하는 구도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