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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대중 수출통제 속 화웨이 '자강' 실현 화웨이 스마트폰 속 부품 상당수 중국산 삼성 엑시노스는 수율 문제로 탑재 불발
화웨이의 스마트폰이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칩과 운영체제(OS) 자립에 성공하며 지난달 출시한 신제품 가격을 20% 이상 낮추는 데 성공했다. 최근 스마트폰의 기능 혁신이 한계점에 도달한 상황에서 제조 기술 자립화는 외부 업체에 지불해 온 OS 로열티를 줄이고 자체 개발한 칩으로 원가를 낮출 수 있는 만큼, 가격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전략으로 평가된다. 다만 애플에 이어 화웨이까지 사실상 기술 자립을 실현함에 따라 AP칩과 OS를 외부 업체에 의존해 온 삼성전자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화웨이 기술 자립으로 신제품 가격 20% 낮춰
2일 업계에 따르면 화웨이가 지난달 26일 출시한 신제품 '메이트70' 시리즈에는 화웨이가 자체 개발한 6나노 공정의 AP칩 '기린 9100'이 탑재됐다. 기술적으로는 지난해 '메이트60' 시리즈에 적용된 7나노 공정의 자체 개발 AP칩 '기린 9000s'보다 발전된 형태다. 특히 메이트70 시리즈에는 구글 안드로이드 오픈소스 코드를 사용하지 않은 독립 OS인 '하모니 넥스트'가 탑재됐다. 화웨이는 자체 개발한 AP칩와 OS를 탑재한 메이트70의 출고가를 전작인 메이트60(6,999위안) 대비 21.4% 저렴한 5,499위안(약 106만원)으로 책정했다.
지난 9월 화웨이가 출시한 폴더블폰 메이트XT의 경우 AP칩을 비롯해 디스플레이, 카메라, 통신용 칩, 배터리 등 핵심 부품 대부분이 중국산 제품으로 구성됐다. 메이트XT는 세계 최초로 두 번 접는 트리폴드폰으로 공개와 동시에 폭발적인 관심을 끌면서 사전 예약 하루 만에 선주문 200만 건을 넘겼다. 이 제품에 적용된 AP칩 기린9010은 화웨이 자회사 하이실리콘이 설계했고 제조는 중국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SMIC가 담당했다. 완전히 펼치면 10.2인치에 달하는 폴더블 화면은 중국 최대 디스플레이 제조사 BOE가 공급했다.
국산 폴더블폰 배터리 용량(4,400mAh)보다 1.2배 더 큰 배터리(5,600mAh)는 홍콩 배터리 업체 ATL이 중국 광둥성 공장에서 생산했다. ATL은 중국 업체뿐 아니라 삼성전자와 애플에도 배터리를 공급하는데 이 중 화웨이 폰에 탑재된 배터리는 두께 1.9mm에 불과하다. 이와 관련해 화웨이는 실리콘 음극재 기술이 탑재돼 얇으면서도 오래간다고 설명했다. 실리콘 음극재 방식은 기존 음극재(흑연)보다 에너지 밀도가 높아 같은 용량의 배터리를 더 얇게 만들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다만 안정성 논란 때문에 아직 삼성전자와 애플 등은 도입하지 않고 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화웨이 폰에 탑재된 중국산 카메라 모듈·배터리·통신용 칩 등 주요 부품 상당수가 단순히 외국 제품을 대체하는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는 점이다. 특히 7나노 이하 공정으로 제조된 첨단 칩의 경우 화웨이가 축적한 제조 공정 기술이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했음을 방증한다. 미국의 대중 수출 제재로 7나노 이하 공정의 첨단 칩을 생산할 때 사용하는 EUV(극자외선) 노광 장비를 수입할 수 없는 상황에서 SMIC는 구형 장비로 레이저를 여러 번 쏘이는 전략으로 7나노 이하 첨단 칩을 생산해 냈기 때문이다.
美 기술 제재로 화웨이 '기술 자립', "역설적 상황"
전문가들은 미국의 대중 수출통제가 중국 반도체 산업에 큰 타격을 입혔지만 한편으로는 중국의 자체 기술 개발을 강제하는 역효과를 냈다고 평한다. 미국은 2018년부터 중국 반도체 산업을 겨냥한 규제를 본격화했다. 푸젠진화반도체, 화웨이 등 일부 중국 기업을 거래 제한 리스트에 올려 반도체 장비와 첨단 반도체칩 수출을 제한한 것이다. 2020년 5월에는 외국산 제품이라도 미국의 기술·소프트웨어·장비·소재·시설을 사용해 생산된 경우 수출 허가를 받아야한다는 해외직접생산품 규칙(Foreign Direct Product Rule: FDPR)을 도입하며 규제를 강화했다.
미국의 수출통제는 2022년 10월 중국 기업 전체로 확대돼 '특정 기업'이 아닌 '특정 품목'을 제재하기 시작했다. AI 시스템 및 고성능 컴퓨팅에 필수인 18나노 이하 D램·128단 이상 낸드플래시·14㎚ 이하 로직칩 등이 통제목록에 올랐고 지난해 11월 미국은 통제목록을 확대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 2일 미국 상무부는 첨단 반도체 장비와 고대역폭메모리(HBM)의 중국 수출을 금지하는 추가 제재안을 발표했다. 첨단 반도체 수출 금지 대상 기업 리스트에 중국의 반도체 기업 24곳과 장비 업체 100여 곳을 포함해 총 140곳을 추가했다. 미국의 수출통제 정책은 '좁은 울타리, 높은 장벽(small yard, high fence)' 방식으로 불린다. AI 분야 등 핵심 분야만 겨냥해 시장 혼란은 최소화하면서도 중국의 핵심 반도체 산업의 성장은 저지하겠다는 복안이다.
실제로 미 당국의 규제로 화웨이는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2019년부터 퀄컴 등으로부터 통신용 반도체를 받을 수 없게 된 화웨이는 자회사가 설계한 칩을 TSMC에서 제조하는 방식으로 반도체를 조달해 왔는데 FDRR로 인해 이 루트가 막히면서 화웨이는 한동안 최신 스마트폰을 출시하지 못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미국의 수출 규제는 중국의 '자강'으로 이어졌다. 이에 힘입어 중국은 이제 미국의 기술 통제에 맞서 기술 자립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올해 초 2035년 '과학기술 강국 건설'을 목표로 제시하고 과학기술 자립을 강조했다. 지난 5월에는 역대 최대인 64조원 규모의 반도체 투자기금을 조성했으며 이미 저사양 HBM의 생산 능력도 갖췄다. 중국 창신메모리(CXMT)가 생산하는 HBM의 경우 SK하이닉스나 삼성전자 제품보다 사양이 떨어지지만, 생산 속도 면에서는 시장의 예상보다 1~2년 앞당겨졌다.
삼성전자, 스마트폰 매출 늘어도 영업이익 줄어
반면 AP칩을 외부에 의존하는 삼성전자는 매년 신제품을 출시할 때마다 퀄컴의 AP칩 단가 상승에 따른 부담을 안고 있다. 삼성전자가 자체 개발한 엑시노스 AP칩이 있지만 수율 문제로 퀄컴과의 가격 협상력은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IT 매체 GSM아레나 등 외신에 따르면 엑시노스 AP칩은 낮은 수율 문제로 내년 출시 예정인 갤럭시S25에는 퀄컴의 AP칩만 탑재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AP칩 단가가 오르는 상황에서 이를 제품 가격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면서 삼성전자의 MX사업부 수익도 흔들리고 있다. 삼성전자의 올해 3분기 MX사업부 매출은 30조5,200억원으로 전년(30조원) 대비 1.7%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오히려 14.5% 줄었다.
삼성전자 스마트폰 부문 경쟁사인 애플의 경우 자체 설계한 AP칩과 OS(iOS)를 탑재하면서 3년 연속 제품 가격을 동결했다. 지난 2022년 출시한 아이폰14부터 올해 출시한 신제품 아이폰16까지 가격을 올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도 애플의 가격 동결 전략에 대응하기 위해 갤럭시S24 기본 모델의 가격을 동결했지만, 갤럭시S24 울트라 모델은 AP칩은 부품 가격 상승을 반영하면서 전작 대비 8.3% 가격을 올렸다. 시장조사기관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2분기 애플 스마트폰 사업의 영업이익은 110억5,000만 달러로 삼성전자의 약 7배에 달했다.
이런 가운데 중국 샤오미도 차기 스마트폰용 칩을 자체 설계해 내년부터 양산에 들어가는 것으로 파악된다. 샤오미는 지난달 출시한 '샤오미15'를 포함해 매년 플래그십 모델에 업계 최초로 퀄컴의 최신형 칩을 탑재할 정도로 긴밀히 협력 중이지만 한편으로는 퀄컴의 경쟁사로 기술 자립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외신에 따르면 지난 10월 샤오미는 3나노 공정으로 자체 설계한 칩을 파운드리 업체에 넘기는 테이프아웃 단계에 접어들었다. 삼성전자도 상용화하지 못한 3나노 칩에서 샤오미가 앞설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최근에는 샤오미15와 함께 '하이퍼AI'를 내장한 OS '하이퍼OS2'를 출시해 OS 독립을 위한 작업을 본격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