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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내년도 국방 예산 175조원 ‘훌쩍’, 글로벌 군비 경쟁 본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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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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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577조원 상당 결속 기금 안보에 활용
동맹국에 자기방어 주도 요구한 트럼프
지난해 전 세계 군사비 지출 ‘역대 최고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전쟁이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가운데 글로벌 군비 경쟁이 격화하는 모습이다. 전쟁의 당사국은 물론, 눈앞에서 무력 충돌을 경험한 국가들 또한 미래의 위협 요인에 대응하고 나선 것이다. 이에 더해 동맹국에 더 큰 방위비 분담을 요구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이 다가오면서 전 세계 각국의 국방비 확대는 그 폭을 넓히고 있다.

2025년 러시아 국방비 예산 29.8% 증가

2일(현지 시각) 타스통신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러시아 정부는 전날 2025년도 국방예산으로 총 5,000억 루블(약 175조2,300억원)을 편성했다고 밝혔다. 이는 전년 대비 29.8% 증가한 수준이자 교육과 의료, 경제 관련 예산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은 금액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비 비율은 올해 28.3%에서 내년 32.5%로 확대됐다. 이미 10여 일 전 러시아 하원(국가두마)과 상원 승인을 마친 해당 예산안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서명으로 최종 확정됐다.

러시아보다 앞서 내년 예산안을 발표한 우크라이나의 경우 내년도 방위비로 2조2,300억 흐리우냐(약 75조3,000억원)를 편성했다. 전체 예산안이 3조6,000억 흐리우냐(약 121조5,700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방위비 비율은 61.9%에 달한다. 여기에는 군인 급여·연급 지급을 비롯해 무기, 무인기(드론) 조달과 생산 비용 등이 포함된다.

러시아가 막대한 국방예산을 편성하며 주변국을 위협하자, 유럽 국가들도 일제히 무장을 강화하는 모습이다. 폴란드는 내년 국방예산으로 올해보다 17.3% 증가한 487억 달러(약 64조4,100억원)를 지출할 계획이며, 네덜란드와 핀란드는 국방비를 각각 10%, 12% 늘리기로 했다.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한 긴축예산을 선언한 프랑스도 국방 지출을 7% 상향했다.

유럽연합(EU) 차원의 안보 강화도 추진된다. EU는 그간 군사 분야에 사용이 제한됐던 3,920억 유로(약 577조6,000억원) 규모의 결속 기금을 방산에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한다. 해당 기금은 무기 및 탄약을 생산하는 방산과 군 이동성을 강화하는 인프라 시설 투자에 활용된다.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와 최근 휴전 협정을 맺은 이스라엘도 군비를 늘렸다. 이스라엘 의회(크네세트)는 올해 275억 달러(약 38조6,000억원) 수준이던 국방 예산을 내년 401억 달러(약 56조3,000억원)로 늘리는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시아에서는 일본과 대만이 각각 역대 최대 규모의 국방예산을 편성했다. 대만은 내년 국방 예산을 올해보다 7.7% 늘어난 6,470억 대만달러(약 27조8,000억원)로 편성했다. 연일 대만을 포위하며 군사훈련을 강행하는 등 침공을 예고하는 중국에 대응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일본 방위성은 전년 대비 7.4% 증가한 8조5,389억 엔(약 80조원) 규모의 방위비 예산을 의회에 제출한 상태다.

트럼프, 동맹국 ‘무임승차’ 지적

전문가들은 전 세계적 방위비 강화 배경에 트럼프 당선인의 행보 또한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한다. 트럼프 당선인은 이전 취임 당시는 물론 이번 선거 유세 기간에도 동맹국들이 좀 더 자기의 역할을 강화하고, 자기방어에 대한 주도적인 역할을 해주기를 요구한 바 있다. 2기 행정부에서는 이와 같은 요구의 강도가 더 강해질 것이라는 게 외교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실제로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 9월 대선 유세 중 현재 GDP의 2%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방위비 분담금 목표치를 3%로 올리겠다고 선언했다. 대부분 NATO 동맹국이 ‘무임승차’하고 있다는 데 트럼프 당선인의 주장이다. 올해 기준 방위비가 GDP의 3% 이상인 국가는 33개 NATO 회원국 중 폴란드, 미국, 그리스,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등 다섯 곳뿐이다.

한국 또한 트럼프 당선인의 타깃이다. 그는 후보 시절 주한미군 철수를 거론하면서 한국에 방위비 분담금으로 100억 달러(약 14조원)를 받아낼 것이라고 공언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을 ‘머니 머신(money machine·현금지급기)’이라고 부르며 높은 방위비 분담금을 지불할 능력이 충분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다만 한미 양국은 지난달 초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정(SMA)을 체결하고 2026년 분담금을 전년 대비 8.3% 높은 1조5,192억원으로 설정한 상태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SMA 재협상을 시도할 수도 있지만, 우리로서는 나름의 방어책을 준비해 둔 셈이다.

한국 무기 사들이는 유럽·중동 국가들

이런 가운데 시장에서는 방위산업의 성장세에 주목하는 모습이다. 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 벌어진 두 개의 전쟁이 촉발한 글로벌 군비 경쟁이 트럼프 당선인의 방위비 분담 압박까지 겹치며 그 규모를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의 ‘2023년 세계 군사비 지출 추세’ 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2년 차인 지난해 전 세계 군사비 지출은 사상 최고치인 2조4,430억 달러(약 3,730조원)를 기록했다.

우리 방산도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한 단계 더 도약할 기회를 맞았다. 이미 폴란드와 루마니아 등은 러시아가 일으킨 전쟁의 위기감을 한국산 무기로 대비하고 있다. 특히 루마니아는 지난 7월 K9 자주포 54문(약 1조3,800억원어치)을 계약한 데 이어 K2 전차와 ‘신궁’ 대전차미사일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또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이라크 등 중동 국가들은 원리주의 테러집단의 미사일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LIG넥스원의 ‘천궁-2’ 방공미사일을 앞다퉈 사들였다.

강은호 전 방위사업청장(전북대 방위산업연구소장)은 “유럽과 중동의 국가들은 눈앞에서 전쟁을 경험하면서 미래의 위협 요인에 대비하기 위해 군비 증강에 나설 수밖에 없다”면서 “트럼프 당선으로 우리 방산에는 더 큰 시장이 열릴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이어 “다만 글로벌 군비 증강 흐름 속에서 우리 방산만 수혜를 보는 것은 아니다”라고 짚으며 “기존의 방위산업 강국인 미국과 유럽이 생산능력을 확충하고 견제에 나설 것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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