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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이익 보호 위해 수출 통제 강화” 중국, 전 세계 갈륨 생산량 98% 차지 핵심 소재 공급망 다변화 성과 가시화
중국이 갈륨과 게르마늄 등 반도체 산업에 활용되는 핵심 소재에 대한 대미 수출을 전면 금지하고 나섰다. 미국이 중국을 겨냥해 반도체 수출통제 조치를 강화하자, 단 하루 만에 맞대응에 나선 것이다. 다만 오랜 시간 중국에 집중됐던 반도체 핵심 소재 공급망이 최근 북미, 유럽 등으로 다변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의 수출 금지가 기대만큼의 효과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군사적 목적 활용 가능한 소재 수출 차단
3일(현지 시각) 중국 상무부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중화인민공화국수출통제법’ 등 관련 규정에 따라 국가 안전과 이익을 보호하고, 확산 방지 등 국제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이중용도 품목의 대(對)미국 수출 통제를 강화한다”고 밝혔다. 이중용도 품목이란 민수용으로 쓰이면서 미사일이나 전폭기 생산 등 군용으로도 활용 가능한 원자재나 기술, 데이터 등을 의미한다.
수출통제 강화에 따라 앞으로 중국 기업들은 이중용도 품목을 미국 군사 사용자에게 수출할 수 없다. 또 갈륨, 게르마늄, 안티모니 및 초경질 재료와 관련된 이중용도 품목의 미국 수출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특히 흑연 관련 이중용도 품목은 더 엄격한 최종 사용자 및 용도 검증이 수반된다는 게 중국 상무부의 설명이다.
중국 상무부의 이번 발표는 미국의 반도체 수출 규제가 발표된 후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나왔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전날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은 ‘중국의 군사용 첨단 반도체 생산능력 제한을 위한 수출통제 강화’ 방안을 발표하고 인공지능(AI) 개발에 필요한 고대역폭 메모리(HBM)의 중국 수출을 금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중국의 군 현대화와 연관된 기업 140개를 수출규제 명단에 추가했다.
미 상무부의 제재 방안 발표 직후 중국은 강력 대응을 시사했다. 중국 정부는 “최근 몇 년 동안 미국은 국가 안보 개념을 지나치게 확대하고, 경제, 무역, 과학 기술 문제를 정치화하고 무기화했다”고 짚으며 “수출 통제 조치를 남용하고 관련 제품의 대중국 수출을 부당하게 제한, 많은 중국 기업을 제재 대상에 포함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우리는 이처럼 국가안보 개념을 과도하게 확대하는 잘못된 접근 방식에 단호히 반대한다”고 말했다.
활용도 높고 대체 어려운 갈륨·게르마늄
중국은 이전부터 이중용도 품목의 수출을 제한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 왔다.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는 지난 10월 ‘중화인민공화국 이중용도 물자 수출 통제 조례’에 서명하고 12월 1일부터 시행한다고 밝힌 바 있다. 시행에 앞서 지난달 15일에는 다소 광범위한 이중용도 물자 목록을 발표하기도 했다. 당시 중국 상무부는 “이중용도 물자 목록은 추후 필요에 따라 수정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그리고 이날 미국을 수출 금지 대상으로 직격하고, 핵심 소재들을 다시 한번 강조한 것이다.
중국이 이토록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는 배경에는 갈륨과 게르마늄 등 반도체 핵심 광물의 공급망이 자국에 집중돼 있다는 자신감이 짙게 작용했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중국의 2022년 기준 갈륨 생산량은 54만kg으로 전 세계 생산의 98%를 차지했다. 같은 기간 미국의 소비량은 1만8,000kg으로 전량 수입에 의존했다. 갈륨은 그 비화물만이 가진 독특한 특성 때문에 다수의 첨단기술 응용 분야에서 대체하기 어려운 소재로 꼽힌다.
게르마늄은 광섬유, 적외선 광학 등에 주로 사용되는데 IR 방사용 렌즈, 야간 투시 장치, 위성 이미지 센서 등 군용으로도 얼마든지 활용이 가능하다. 이 또한 세계 최대 생산국인 중국이 전체 생산의 약 60%를 담당하고 있으며, 이어 러시아가 뒤를 잇고 있다. 2022년 기준 중국의 게르마늄 생산량은 2만3,100kg이다.
이들 소재는 특정 국가에 공급망이 한정돼 있어 가격 변동 폭이 크다는 특징을 가진다. 이렇다 보니 선물시장에서 투기 목적으로 거래되는 경우도 빈번하다. 이에 더해 최근 중국은 핵심 광물 채굴 및 정제 과정을 국가 기밀로 지정해 관련 정보 통제와 국유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미국의 반도체 수출 통제에 대한 대응책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다.
전문가들이 중국의 광범위한 광물 수출통제가 석유 파동에 버금가는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USGS는 지난달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중국이 갈륨과 게르마늄 수출을 전면 금지할 경우 미국 경제가 34억 달러(약 4조7,600억원) 규모의 피해를 볼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반도체 장치 제조업이 전체 손실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등 가장 큰 피해를 당할 것이라는 게 보고서의 핵심 내용이다.
USGS는 갈륨과 게르마늄 공급망이 끊기면 갈륨 가격은 150% 이상, 게르마늄 가격은 26% 이상 급등할 것으로 내다봤다. 네달 나사르 USGS 수석연구원은 “반도체와 LED 등 제품에서 핵심 광물 비중은 작지만, 접근성을 잃으면 수십억 달러 규모의 경제적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생산 ‘못’ 한 게 아니라 ‘안’ 했다
이 때문에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들은 핵심 광물에 대한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방안을 다각도로 고민해 왔다. 가장 먼저 호주, 유럽 등지에서 갈륨 및 게르마늄을 생산하는 방안이 거론됐다. 중국이 저렴한 가격을 내세워 핵심 광물 생산량의 대부분을 담당하고 있지만, 갈륨과 게르마늄은 자연 그대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알루미늄, 아연, 구리와 같은 더 일반적인 금속을 채굴할 때 부산물로 형성된다는 게 그 이유다.
실제로 카자흐스탄, 헝가리, 독일 등은 2010년대 이전부터 갈륨을 직접 생산했다. 하지만 생산에 투입되는 비용이 크고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2013년 1차 생산을 중단했다. 이후 가격이 폭등하자 2016년 생산을 재개했고, 그 생산량 또한 증가세에 있다.
게르마늄도 공급망 대체가 원활하게 이뤄지고 있다. 먼저 북미 최대 게르마늄 생산 업체인 텍리소스가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의 트레일 제련소에서 게르마늄을 추출 중이며, 벨기에 유미코어, 미국 인듐코퍼레이션 등이 일제히 게르마늄 생산량을 늘렸다. 나아가 미국은 지난해 국방부 직속 기구인 국방군수국(DLA)의 무기 시스템에 게르마늄 재활용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이처럼 세계 각국이 공급망 다변화를 모색한 결과 중국의 지난해 갈륨 수출은 전년 대비 3분의 2가량 줄어든 847만 달러(약 113억원)를 기록했으며, 게르마늄 수출도 전년보다 8% 줄어든 4,842만 달러(약 647억원)에 그쳤다. 이와 관련해 컨설팅 업체 스트랜드컨설트의 존 스트랜드 최고경영자는 “중국의 수출 통제 효과로 가격은 소폭 오르겠지만, 다른 국가에 미치는 영향이 고통스럽지는 않을 것”이라며 “이는 오히려 중국이 피하고 싶어 하는 ‘디커플링(decoupling·산업망과 공급망에서의 특정국 배제)’을 앞당기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