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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하면 ‘봉고’마저 안 팔린다 ‘자영업자의 발’ 내수 침체에 판매↓ 경유차 단종도 판매 하락에 영향
내수 침체가 현대자동차의 1톤(t) 화물트럭 ‘포터’ 판매량까지 뒤흔들었다. 포터는 지난 2022년만 하더라도 국민 세단 그랜저를 제치고 내수 판매 1위에 올랐던 차종이지만 경기 침체가 이어지고 환경규제가 강화되면서 판매량이 크게 줄어든 모습이다.
포터 판매량, 전년比 49.4% '뚝'
4일 현대차에 따르면 11월 포터 판매량은 4,682대로 전년 동월(9,255대)과 비교해 49.4% 급감했다. 포터의 판매 감소는 11월만의 현상이 아니다. 올해 1월부터 11월까지 포터 판매량 합계는 6만3,829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9만1,622대)보다 30.3% 감소했다. 포터는 코로나19 팬데믹 때인 2020~2022년에도 매년 9만 대 이상 팔린 스테디셀러다. 하지만 현 추세대로라면 포터의 올 한 해 판매량은 7만 대에도 못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기아의 1t 트럭 ‘봉고’ 역시 판매량 급감을 피하지 못했다. 올해 11월 봉고 판매량은 3,083대로 지난해 11월(5,855대)에 비해 47.3% 쪼그라들었다. 올해 1월부터 11월까지 판매량도 3만8,041대에 그쳐 작년 동월(5만9,104대)에 비해 2만 대 이상 감소했다.
이에 현대차는 최근 노조와 3·4분기 노사협의회를 통해 이달 임직원의 가족, 계열사, 협력사 등을 대상으로 1t 트럭 포터를 대규모 할인 판매하기로 합의했다. 앞서 기아도 대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V9의 판매가 부진하자 이와 비슷한 'EV9 홍보단' 특별할인을 실시한 바 있다. 당시 EV9의 할인율은 최대 30%로, 할인금액은 약 2,000만원에 달했다. 현대차도 포터에 비슷한 할인율을 내걸 것으로 예상된다.
포터조차 구매 못 할 정도로 불황
올 들어 현대차와 기아의 국내 자동차 전체 판매대수가 전년에 비해 10%가량 줄어들긴 했지만, 포터와 봉고만큼 큰 폭으로 줄어든 차종은 거의 없다. ‘서민들의 발’이라고 불리는 1t 트럭은 웬만한 경기 불황에는 영향을 받지 않는 차종으로 알려져 있다. 경기가 나빠지면 포터나 봉고를 구매해 자영업에 나서는 서민들이 늘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최근의 포터 수요 감소는 현재 불황이 심각한 상황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포터조차 구매하지 못할 정도로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의 상황이 나쁘다는 얘기다.
한 자동차 전문가는 “경기가 좋지 않더라도 자영업을 하려는 사람이 계속 유입된다면 포터 판매는 줄지 않는다”며 “하지만 경기 불황이 장기화하면서 경제 활동을 아예 포기하는 서민들이 늘어나고, 이로 인해 포터 수요가 줄어드는 것이 현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한 식자재 납품업자는 “음식점이 잘되지 않으니 일감이 줄고, 그러다 보니 최근 이 일을 그만둔 동료가 많다”며 “물류가 줄어드니 1t 트럭 수요도 줄어드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디젤 모델 없애자 판매량도 급감
환경규제 강화로 포터 경유 모델이 사라진 것도 신차 판매 감소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올해부터 시행된 대기관리권역법 개정안에 따라 대기관리권역 내 소형 화물 트럭이나 어린이 통학 차량 등은 디젤 차량으로 운행할 수 없게 됐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현대차·기아는 포터와 봉고 등 1t 트럭 디젤 모델 생산을 종료하고, 지난해 말부터 액화석유가스(LPG) 모델을 대체 투입했다. 디젤 모델 단종으로 1t 트럭 구매자 입장에서는 LPG, 전기로 선택권이 좁혀진 것이다.
1t 트럭 구매를 희망하는 소비자가 개정안 시행에 앞서 지난해 디젤 모델을 서둘러 구매한 것도 판매 감소 요인으로 꼽힌다. 여기에 최근 1t 디젤 트럭 구매를 원하는 일부 소비자들이 신차 대신 연식과 주행거리가 짧은 중고차를 찾는 경우도 늘고 있다.
소비자들이 LPG, 전기 트럭 구매를 기피하는 것은 연료 충전의 불편함이 크다. 화물 운송업 특성상 연비와 힘이 좋고 주유가 편리한 디젤 모델 선호도가 높다. LPG 모델의 경우 과거에 비해 주행 성능을 크게 보강했지만, 디젤보다 연비가 떨어지고 충전소도 적은 편이다. 이와 관련해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1t 트럭의 경우 출력과 연비 등을 이유로 LPG차에 대한 선호도가 높지 않다"면서 "포터 전기차 모델의 경우에도 보조금을 받을 수 있긴 하지만 1회 충전 주행가능거리가 200㎞대 수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전기 모델 역시 한때 영업용 번호판 무상 발급 혜택으로 인기를 얻었으나, 초기 구매자를 중심으로 짧은 주행거리로 인한 충전소 이용의 불편함이 대두되며 수요가 급감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