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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AWS 행사 참석 '트레이니엄2' 사용 계획 발표 아마존과의 협업 공개 "이례적", AWS도 지지 표명 AI 학습·개발서 고가 엔비디아 칩 대체할지 주목
애플이 자사 AI 시스템 ‘애플 인텔리전스(Apple Intelligence)’ 사전 학습에 아마존이 자체 개발한 커스텀(맞춤형) AI 칩인 ‘트레이니엄2(Trainium2)’를 사용하겠다는 계획을 공개했다. 고가의 엔비디아 칩이 아니더라도 AI 학습에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 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애플, 엔비디아 대안으로 아마존 AI칩 채택
4일(현지시간) 미 경제매체 CNBC 등에 따르면 베누아 뒤팽 애플 기계학습·AI 담당 임원은 전날 열린 연례 아마존 콘퍼런스에서 아마존의 트레이니엄2를 활용해 애플 인텔리전스를 사전 학습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그는 “트레이니엄2를 평가하는 초기 단계에서는 사전학습을 통해 효율성이 최대 50%까지 향상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설명했다.
뒤팽 이사는 “애플은 10년 이상 시리, 애플 맵, 애플 뮤직 등의 서비스에 AWS를 사용해 왔다"며 "우리는 강력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아마존의) 인프라는 신뢰할 수 있고 전 세계의 고객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애플은 또 검색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아마존의 인퍼런시아와 그레비톤 칩을 사용해 왔고 아마존의 칩은 40%의 효율성 향상으로 이어졌다”며 “트레이니엄2를 평가하는 초기 단계에서는 사전학습을 통해 효율성이 최대 50%까지 향상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설명했다.
업계는 애플과 아마존이 협업 사실을 공개한 것을 두고 이례적인 일이라고 평가한다. CNBC는 “애플이 아마존의 콘퍼런스에 참석하고 아마존의 칩을 쓰겠다고 한 것은 마이크로소프트(MS) 애저 및 구글 클라우드와 경쟁하는 AWS에 대한 강력한 지지를 표명한 것”이라며 “새로운 AI를 개발하는 데에도 트레이니엄2를 사용할 수 있다는 신호”라고 해석했다.
대다수 AI 학습, 고가 엔비디아 칩 활용
애플과 아마존의 협업은 대부분의 AI 교육이 고가의 엔비디아 칩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 최근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업체와 테크기업 등은 AI 학습 비용을 절감하면서도 보다 효율적인 처리가 가능한 다양한 대안을 개발·모색하고 있지만 AI 반도체 시장에서 엔비디아의 점유율이 80%에 달해 울며 겨자먹기로 고가 칩을 사용해야 하는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애플의 커스텀 칩 접근 방식은 엔비디아 칩이 아니더라도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입증할 기회가 될 수 있다.
아마존도 이날 트레이니엄2 칩은 일반 대여가 가능하다고 밝히며, 내년엔 트레이니엄3를 출시할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맷 가먼 AWS CEO는 트레이니엄2 칩이 탑재된 새로운 데이터센터 서버를 선보이며 “엔비디아와 경쟁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어“새로운 제품은 최첨단 생성형 AI 훈련과 추론을 위해 특별히 설계됐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탈 엔비디아 시동거는 빅테크들
애플이 엔비디아 칩의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애플은 지난 7월 말 공개한 논문에서 애플 인텔리전스의 기반이 되는 AI 모델 학습에 구글이 자체 개발한 텐서프로세서유닛(TPU·Tensor Processing Unit)을 사용했다고 공개한 바 있다. TPU는 AI 모델 학습과 추론이 모두 가능한 AI 반도체다. AI 반도체는 용도에 따라 AI 모델 구축 및 훈련에 사용되는 학습용과 이미 학습된 AI 모델을 기반으로 정교한 결과를 생성하는 데 최적화된 추론용으로 나뉜다.
AI 반도체업계에선 아직까지 학습용 AI 반도체 분야에서 엔비디아 GPU와 맞설 적수가 없다고 본다. 미국 투자 전문매체 더 모틀리 풀(The Motley Fool)은 “엔비디아는 AI 학습용 반도체 시장의 약 98%를 점유하고 있고, 경쟁사들은 거의 점유율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런 상황에서 애플이 엔비디아의 GPU가 아닌 구글의 TPU를 선택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학습용 AI 반도체 시장에 일어날 변화의 신호탄으로 해석한다. 당시 CNBC는 “오픈AI, MS, 앤트로픽 등은 모두 자사 AI 모델 학습에 엔비디아의 GPU를 사용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애플의 발표는) 빅테크 기업들이 최첨단 AI 훈련과 관련해 엔비디아의 대안을 찾고 있다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국내 AI 반도체 업체 한 고위 임원도 “구글이 본격적으로 외부 고객용 TPU를 제공하기 시작하면서 엔비디아의 지위가 공고했던 학습용 AI 반도체 시장에 변화가 생길 것”이라며 “국내 AI 반도체 업체들 역시 시장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빅테크들이 탈엔비디아를 시도하는 건 비싼 비용과 공급 부족 문제 때문이다. 엔비디아 GPU의 개당 가격은 3만~4만 달러(약 4,200만~5,600만원)에 달할 정도로 비싸지만 그럼에도 품귀 현상이 벌어지고 있어 빅테크들도 사실상 GPU를 ‘배급’ 받아야 하는 처지다. 반면 클라우드 형태로 제공되는 구글의 최신 TPU는 칩을 사용하는 데 시간당 2달러 미만에 불과하다.
탈엔비디아 시도는 이뿐만이 아니다. 빅테크들은 자체 AI 반도체도 개발 중이다. 애플은 대만 TSMC와 손잡고 GPU를 대체할 추론용 AI 반도체를 개발 중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애플은 수년 전부터 데이터센터용 AI 반도체를 개발하기 위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내부코드명 ‘ACDC’를 진행하고 있다. 오픈AI도 최근 새로운 AI 반도체 개발을 위해 사내 전담팀을 만들고, 미국 반도체 회사 브로드컴과 협력을 논의 중이다. AI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오픈AI가 올해 최대 50억 달러(약 7조원)에 이르는 대규모 적자가 예상된다는 분석이 나오는데, 이 중 상당부분이 GPU 비용 부담으로 추정된다"며 "공급받기도 어렵고 비용 부담이 큰 엔비디아 GPU에서 벗어나려는 빅테크들의 움직임이 더 가속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