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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구조조정 및 모험자본 공급 역할 톡톡 금산분리의 새로운 관점 제시 ‘핫 이슈’ MBK·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함용일 금융감독원 부원장이 금융시장 내 사모펀드(PEF) 운용사들의 역할을 강조하고 나섰다. 일각에서 PEF가 기업의 장기 성장 동력을 훼손할 수 있다는 지적을 제기하는 만큼 그 영향력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PEF는 시장원리에 따라 운용돼야 한다는 대전제에는 변함이 없음을 확실히 했다.
PEF 도입 20년, 출자약정액 140조원대
금융감독원은 12일 오전 금감원 본원 회의실에서 PEF 운용사 최고경영자(CEO) 간담회를 열고 금융시장 내 PEF의 바람직한 역할과 책임, 건전한 성장방안과 지배구조 개선 등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는 함 부원장과 MBK파트너스, H&Q, 한앤컴퍼니, 스틱인베스트먼트를 포함한 12개 PEF 운용사가 참석해 최근의 PEF 운용사례를 공유했다.
함 부원장은 이날 모두발언으로 “2004년 PEF 제도가 국내 도입된 이래 1,100여 개 PEF의 출자약정액이 140조원대에 이르는 등 국내 PEF 산업이 비약적으로 성장해 왔다”며 “국내 인수합병(M&A) 시장에서 PEF가 기업 구조조정, 모험자본 공급 등을 위한 핵심 플레이어로 자리매김한 것은 물론 기관 투자자에게 중요한 대체투자 수단을 제공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PEF 산업이 성장함에 따라 시장 내 영향력 또한 커졌다는 게 함 부원장의 평가다. 그는 “PEF의 목적이 비교적 단기 수익 창출에 있는 탓에 자칫 기업의 장기 성장 동력을 훼손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한다”며 “규제의 사각지대에서 대규모 타인자금을 운용하는 과정에서 일부 부적절한 영향을 미친다는 지적도 나온다”고 언급했다.
함 부원장은 최근 시장 참여자들의 관심을 끈 일부 PEF의 경영권 분쟁 참여, 소액주주와의 갈등 등을 예시로 들며 ‘금융자본의 산업 지배’ 이슈와 관련해 다양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그는 “이러한 사례에서 보듯 PEF는 이제 기업의 지배구조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됐다”며 “지금까지의 금산분리와는 다른 관점에서 논의가 필요한 이유”라고 힘줘 말했다.
끝으로 함 부원장은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한 PEF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PEF 업계는 그간 금융당국과 뜻을 모아 자본시장 선진화를 지속 추진하는 과정에 산업 발전의 건설적 동반자가 돼 왔다”며 “PEF의 역할은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일부 우려에도 ‘PEF는 시장원리에 따라 운용돼야 한다’는 대전제에 변함이 없으며, 그간 추진해 온 기업 지배구조 개선 등 자본시장 선진화 노력에 함께해 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금융자본의 산업 지배, 주주 가치 훼손 가능성 대두
금융자본의 산업 지배와 관련한 금융당국의 우려는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가장 최근의 사례로는 지난달 28일 이복현 금감원장의 발언을 꼽을 수 있다. 이날 은행지주 이사회 의장들과의 간담회 직후 이 원장은 기자들과 만나 “그동안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을 지배하는 문제를 중심으로 고민했지만, 반대로 금융자본이 산업자본을 지배하는 것에 대한 부작용을 고민해 본 적이 있었나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고려아연과 경영권 분쟁 중인 MBK를 겨냥한 것으로, 이 원장은 “특정 산업은 20~30년 정도 길게 보고 (경영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5년이나 10년 안에 사업을 정리하는 구조를 가진 금융자본이 산업자본을 지배했을 때 중장기적 관점에서 주주 가치 훼손 가능성이 있지 않겠나”라고 꼬집었다. 기업 경영권을 손에 쥔 PEF 운용사가 단기 수익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해당 기업 주주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의미다.
이와 같은 금융당국 관계자들의 발언은 금산분리 원칙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상호 소유를 금지하는 금산분리는 1995년 은행법에 은산분리(은행자본과 산업자본 분리)가 규정되며 도입된 개념으로, 지금까지 ‘산업자본의 금융자본 지배’를 막는 방식으로 작동해 왔다. 이와 관련해 한 시장 관계자는 “이 원장은 금산분리 대원칙이 반대 방향으로도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쉽지 않은 경영 능력 입증의 길
이런 가운데 시장에서는 MBK의 과거 경영 실패 사례까지 재조명되며 PEF의 산업 지배를 한층 더 경계하는 모습이다. MBK는 지난 2008년 케이블TV 씨앤엠(C&M)을 인수하며 미디어 시장에 진출했다. 당시 MBK는 고용을 유지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노사 간 상생까지 내세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경영 효율화라는 명목하에 AS와 설비 등 일부 분야를 하청 구조로 전환했다.
이후 2014년에는 비정규직 노동자 약 15%에 해당하는 109명을 해고했다. 회사는 경영 효율화를 위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었지만, 실제로는 매각 가치를 높이기 위한 비용 절감 차원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이와 같은 혼란이 반복되며 C&M는 인수처를 찾지 못했고, 결국 채권단의 손에 넘어갔다. MBK의 케이블TV 인수와 경영 실패는 궁극적으로 방송 산업 생태계까지 교란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MBK가 국가기간산업이자 씨앤엠보다 매출 규모가 수십 배 큰 고려아연을 인수해 제대로 경영할 수 있을지를 두고 회의적인 시각이 커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노사 갈등이 발생할 경우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장치산업의 특성상 단 며칠의 파업에도 길게는 한 달 이상 조업이 중단되는 등 사업에 심각한 차질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고려아연은 단순한 제조업체가 아니라 국가기간산업으로서 전후방 기업들과 산업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고 진단하며 “MBK처럼 단기적 수익이 최우선 목표인 사모펀드가 경영할 경우, 기업 경쟁력은 물론 산업계 전반에 큰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