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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에 물든 학원가 “ADHD 약이 왜 거기서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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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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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환자 대부분은 12세 미만 어린이
두통·불면증·불안감 각종 부작용 우려
업무 수행 ‘도구’로 여기는 사례 속출

강남 학원가를 중심으로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치료제를 오남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의료용 마약류로 분류된 해당 약품이 집중력을 높이고 학습 효과를 극대화한다는 입소문을 타면서다. 이는 경쟁이 치열한 사회 각계에서도 심심찮게 포착되는 현상으로, 전문가들은 ADHD 치료제 과복용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며 처방과 관련한 감시를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뚜렷한 처방 기준 없어

18일 입시학원계에 따르면 강남 8학군을 중심으로 ADHD 치료제를 사용하는 학생이 부쩍 늘고 있다. ADHD 치료제의 일시적 각성 효과로 수면 시간을 줄여도 학습 효과가 지속되고, 집중력을 높일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진 것이다. 지난 4월에는 대치동 학원가에서 “기억력과 집중력이 좋아지는 ADHD 치료제”라고 말하며 학생들에게 마약성 음료를 건넨 일당이 발각되기도 했다.

ADHD는 주의력이 부족해 산만하고 충동적인 행동을 보이는 ‘질환’이다. 사용되는 치료제의 주성분은 메틸페니데이트로, 현행 마약류관리법에 따라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된다. 치료 목적 외에 판매하거나 복용할 경우 처벌받는다는 의미다. 하지만 일부 정신건강의학과에서 ADHD 치료제를 무분별하게 처방하며 오남용을 부추긴 것으로 파악됐다. 한 학생은 “정신의학과에 가서 ADHD 증상은 없지만,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다고 말하면 대부분 응해주는 편”이라고 말했다.

의학계에서는 메틸페니데이트가 일시적으로 집중력을 높이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오남용 시엔 치명적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조서은 가천대 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ADHD는 12세 미만 환자에게 과잉행동, 충동성 등이 6개월 이상 지속돼 일상에 불편을 겪을 때 검사를 통해 진단받는 질환”이라고 짚으며 “이런 문제가 없는 사람이 약을 복용할 경우에는 식욕 부진, 복통, 두통, 불면증, 불안감 등에 시달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20세 환자가 공부와 다이어트 목적으로 ADHD 치료제를 과복용하고 이상 증세로 응급실을 찾은 경우도 봤다”며 “증상이 없는데 복용할 이유가 전혀 없는 약물”이라고 거듭 경고했다.

경쟁에 물든 월가, 약이 점령하다

이 같은 ADHD 치료제 오남용 문제는 전 세계적 현상이다. 일례로 미국에서는 중추신경자극제인 암페타민을 주성분으로 하는 ADHD 처방약 애더럴이 ‘슈퍼맨 각성제’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성인 ADHD 처방은 2016년~2020년 연평균 1.4% 증가했지만, 2021년에는 7.9% 증가했다. 2021년에만 약 400만 명의 성인이 애더럴을 처방받았다.

성인 ADHD 처방 수요가 늘면서 반대편에서는 ADHD를 앓고 있는 청소년들이 약을 제대로 처방받지 못하는 사태까지 일어났다. 미 식품의약국(FDA)에 의하면 미국 내 3~17세 중 10%에 해당하는 600만 명 정도가 ADHD를 앓고 있다.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는 팬데믹 봉쇄로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고립과 불안이 심화하며 ADHD 진단이 매년 20%씩 폭증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불필요한 처방이 늘자 지난해 10월 FDA는 ADHD 약 부족 사태를 공식 선언했다.

이렇게 엉뚱하게 처방된 애더럴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곳은 살인적 경쟁으로 악명 높은 월스트리트다. 충분한 휴식 없이도 집중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소문에 많은 금융인이 무분별하게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월가의 금융인들은 애더럴 같은 ADHD 치료제를 그저 고강도 업무를 해낼 수 있게 도와주는 ‘도구’로 여기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실제 애더럴의 효능이 업무 효율 상승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7년간 애더럴을 복용했다고 밝힌 트레버 런스포드 어센드 캐피탈 인수합병(M&A) 은행가는 “애더럴은 제 삶의 매우 핵심적이고 필수적인 도구”라며 “이 약이 없었다면, 매사에 집중하지 못하고 신속한 결정을 내릴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지독한 성과주의가 많은 이를 불필요한 약물 의존으로 내몰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오남용 감시 강화” 한목소리

이런 가운데 우리 정부는 약물 오남용을 막기 위해 관련 제도를 정비한다는 입장이지만, 역부족인 모양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메틸페니데이트의 1인당 처방량은 260.5정으로 2022년 처방량인 257.1정과 비슷한 수준을 보였다. 그러나 처방 환자의 수는 28만663명으로 전년(22만1,483명) 대비 26.7% 늘면서 전체 처방량 또한 28.4%(5,695만 정→7,312만 정) 증가했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10대부터 30대까지의 환자의 처방이 크게 증가했다는 점이다. 지난해 10대 메틸페니데이트 처방 환자는 8만6,086명으로 전년(6만8,288명) 대비 26% 증가했고, 30대와 40대도 각 29%(5만4,601명→7만758명), 40%(3만2,190명 4만5,316명) 늘었다. 이는 실제 ADHD 환자가 주를 이루는 10세 미만 증가율인 26%(3만1,454명→3만9,653명)과 비슷하거나 훨씬 웃도는 수치다.

10대 이하 청소년들의 처방 기준을 높이고, 관련 감시를 강화해야 한다는 사회 각계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ADHD 치료제의 무분별한 처방과 오남용이 아이들의 건강과 사회안전망을 위협할 수 있다”고 지적하며 “수험생들이 ‘공부약’으로 사용하는 사례가 있는 만큼 약의 부작용과 중독 위험성을 확실히 인식시키는 교육과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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