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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TV ‘블랙아웃’ 이어 IPTV 겨냥
가입자 증가세 꺾인 유료방송, 시장 먹구름
‘자체 앱·유튜브’ 뉴 미디어에서 활로 모색
성장 둔화에 직면한 유료방송 시장에서 콘텐츠 사용료를 둘러싼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콘텐츠의 가치가 과소평가됐다는 CJ ENM과 LG유플러스 등 IPTV 업계의 갈등이 주원인이다. 이달 초 CJ온스타일의 일부 케이블TV 송출을 중단한 CJ ENM은 또 한 번 유료방송 업계와의 마찰을 빚게 되면서 레거시 미디어에 의존했던 기존 사업 구조를 탈피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더 받으려는 CJ ENM, 덜 주려는 IPTV·SO
19일 업계에 따르면 멀티방송채널사용사업자(MPP)인 CJ ENM은 최근 IPTV 사업자 LG유플러스에 자사의 프로그램 사용료를 15%가량 인상해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지난해 IPTV 업계 콘텐츠 대가 인상률(5.4%)의 3배에 가까운 수준이다. 현재 CJ ENM은 tvN, tvN스토리, 엠넷 등 총 14개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CJ ENM의 이 같은 행보는 지난달 케이블TV 유선방송사업자(SO)와의 갈등으로 본격화했다. 당시 CJ ENM 산하의 홈쇼핑채널 CJ온스타일은 올해 초부터 진행해 온 케이블TV SO와의 송출 수수료 협상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며 딜라이브, 아름방송, CCS충북방송 등 3개 SO와의 계약을 종료한다고 밝혔다.
CJ온스타일 측은 “케이블TV 업계의 평균 취급고와 가입자 수가 갈수록 감소하는 가운데 ‘홈쇼핑 방송 채널 사용 계약 가이드라인’에 따른 합당한 수수료 인하를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계약 종료 이유를 설명했다. 이후 이달 5일 자정을 기점으로 3개 SO에서의 방송 송출을 중단했다. 케이블TV 업계에 의하면 당시 CJ온스타일이 요구한 수수료 인하 폭은 60%가 넘는 것으로 전해졌다.
유료 방송 업계에서는 케이블TV SO와의 갈등은 물론 이번 LG 유플러스와의 협상에서도 CJ ENM의 요구 사항이 과도하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한 IPTV 업계 관계자는 “유료방송 시장 성장 둔화가 뚜렷한 상황인데, 콘텐츠 사용료를 두 자릿수로 올려달라고 하는 건 너무한 처사”라고 말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의하면 올해 상반기 IPTV 가입 회선은 2,107만 개로 전년 동기(2,081만 개) 대비 1.2% 증가하는 데 그쳤다.
저작권 강조하며 소송도 불사
CJ ENM은 앞서 지난 2021년에도 프로그램 사용료 인상과 관련해 LG유플러스와 마찰을 빚은 바 있다. 당시 LG유플러스 측은 CJ ENM이 U+모바일tv의 콘텐츠 사용료로 전년 대비 2.7배 증가한 비상식적인 금액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2019년과 2020년 각각 9%, 24%의 콘텐츠 사용료 인상이 있었음에도 추가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인상률 산정 기준에 대한 요청에는 CJ ENM이 답변을 거부했다고도 주장했다.
CJ ENM은 즉각 반박했다. 여러 차례의 실무 미팅 및 공문을 통해 U+모바일tv 자사 채널 제공 가입자 수를 알려 달라 요청했지만, 아무런 답변을 듣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CJ ENM은 콘텐츠 공급 대가를 산정하기 위해서는 가입자 규모를 파악하는 것이 가장 기초적인 단계인데, LG유플러스가 협조하지 않아 IPTV와 U+모바일tv 수수료를 별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나아가 CJ ENM은 LG유플러스의 저작권 침해 또한 문제 삼았다. LG유플러스가 2009년부터 2019년까지 복수의 셋톱박스 연동 서비스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자사와의 협의도 없이 주문형비디오(VOD) 등을 제공했고, 추가 대가를 지급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당시 LG유플러스 셋톱박스 연동 서비스 이용자는 전체 가입자의 약 16%로 추산됐다. 결국 CJ ENM은 LG유플러스를 상대로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이와 관련해 CJ ENM은 “비용을 받자는 취지가 아니라, 콘텐츠 저작권을 인정받기 위해 하는 소송”이라고 설명했다.
해를 넘기면서까지 이어지던 두 회사가 극적으로 화해한 건 2022년이다. 정수헌 당시 LG유플러스 컨슈머부문장은 2022년 3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 참석해 기자들과 만나 “(CJ ENM과) 합의점을 찾았고, 관련 문제는 다 해결됐다”며 “비 온 뒤 땅이 더 굳는다고, CJ ENM과 전략적 협업을 한층 강화한 것 같다”고 평했다. 이어 CJ ENM도 소송을 취하하면서 해당 사안은 일단락됐다.
‘비용 절감·소비자 접점 확대’ 두 마리 토끼 노린다
그러나 이후로도 수익성 개선을 위한 CJ ENM의 고민은 계속됐다. 한류 사업을 목적으로 설립한 CJ라이브시티의 K-컬처밸리 프로젝트가 좌초됐고,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공세 여파에 자회사 티빙의 실적도 악화일로를 걸었기 때문이다. 약 9,300억원을 투입해 인수한 영화 제작사 피프스시즌(FIFTH SEASON) 또한 할리우드 작가·배우 노조 동반 파업의 여파에 휘청였다. 지난해 1,192억원의 적자를 기록한 피프스시즌은 올해 상반기 500억원 이상의 적자를 내면서 여전히 불안한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다.
CJ온스타일의 TV 방송 의존도를 낮추려는 CJ ENM의 시도는 이와 같은 배경에서 출발했다. 유료방송 가입자가 갈수록 감소하는 추세인 만큼 수수료 등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새로운 판로 개척이 시급해진 것이다. CJ온스타일은 자체 애플리케이션(앱)과 유튜브를 결합한 대규모 라이브방송을 기획하며 라이브커머스 사업 확대에 나섰다.
패션, 뷰티, 리빙 등 핵심 상품을 판매한 이들 라이브방송은 배우 한예슬, 가수 소유 등을 내세워 소비자들의 이목을 끄는 데 성공했고, 판매 실적에서도 유의미한 성과를 거뒀다. 올해 3분기 CJ온스타일 전체 취급고(거래액)는 8,817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5% 줄었으나, 모바일 라이브커머스 취급고는 88.6% 성장했다. 이 기간 매출은 11.2% 늘어난 3,338억원, 영업이익은 29.6% 증가한 92억원을 기록했다.
다만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당장 TV 방송을 중단하기는 쉽지 않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매출 발생 과정을 살펴보면 TV 영향력이 여전하다는 이유에서다. 일례로 홈쇼핑사들은 TV 방송 화면에 QR 코드를 노출하는 등의 방식으로 소비자들의 온라인 구매를 유도한다. 이는 TV 효과로 봐야 하지만, 홈쇼핑사의 실적에서는 온라인 매출로 잡힌다. 대형 미디어 그룹을 모회사로 둔 CJ온스타일을 제외하면, 대부분 홈쇼핑사가 방송사업자와의 협업에 공을 들이는 이유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