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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부터 대출 취급제한 강화 연체율 상승 및 평가 정량화 영향 중소·벤처기업 자금 조달 장벽↑
주요 은행이 중소기업 대상의 기술신용대출을 1년 새 10% 줄였다.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건전성 관리에 경고등이 켜졌고, 제도 변화로 기술 평가 기준이 엄격해진 영향이다. 대출 대상을 정확하게 선별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지만 경쟁력을 갖춘 창업기업까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주요 은행, 중기 대상 신용대출 대폭 축소
2일 전국은행연합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시중은행은 지난해 10월 총 142조원의 기술신용대출 잔액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기 155조원에서 13조원 급감한 수치다. 같은 기간 4대 은행이 누적 집행한 기술신용대출 건수도 36만 건에서 26만 건으로 대폭 감소했다.
기술신용대출은 기술력을 보유했지만 자본이 부족한 기업이 돈을 빌릴 수 있도록 2014년 7월 마련된 제도다. 일반 중소기업 대출이 물적 담보, 매출액, 현금흐름 등 기업의 재무능력을 중심으로 대출 심사를 진행하는 것과 달리, 기술신용대출은 재무능력 외에 기술력 평가를 30% 이상 반영해서 심사한다.
하지만 기술력이 없는 기업까지 제도의 혜택을 받는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지난해 7월 금융위원회는 제도 개선 방안을 내놨다. 은행 본점에서 지점에 기술신용평가자를 임의 배정하게 해 지점이 평가사에 대해 영향력을 갖지 못하게 했고, 일반 병의원, 소매업과 같은 비기술 기업에는 기술대출을 승인하지 못하도록 대상을 정비했다. 올해 1분기부터는 인공지능(AI) 평가체계까지 도입해 평가자의 관대한 평가도 차단한다.
대기업 대출 증가 추세와 대조
이를 두고 산업계에서는 제도 개편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을 향한 자금 공급이 끊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실제 중소기업중앙회가 최근 중소기업 500곳을 대상으로 ‘중소기업 금융 이용 및 애로 실태’를 조사한 결과, 기업 2곳 중 1곳이 ‘올해 자금 사정이 악화했다’고 답했다. 아울러 4곳 중 3곳은 은행 대출에서 ‘대출금리 인하가 가장 필요하다’고 응답해 시중은행의 대출 장벽이 높아졌음을 시사했다.
일각에서는 대출 리스크 관리가 시급한 대형 은행이 제도 변경을 이유로 중소기업 대출부터 축소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지난 1년간 4대 은행이 기술신용대출을 13조원 줄이는 동안 전체 은행의 해당 대출 감소는 5조원 상당에 지나지 않았다. 사실상 4대 은행이 주도적으로 기술대출을 축소해 온 것이다. 이에 반해 동 기간 4대 은행 대기업 대출 잔액은 117조원에서 141조원으로 24조원 급증했다.
시중은행이 늘 대기업 대출을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여왔던 것은 아니다.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에는 5대 은행 중소기업 대출이 1월 대비 12월에 10% 증가한 반면, 같은 기간 대기업 대출은 5% 이상 줄었다. 주요 은행이 과거와 비교해 근래 들어 중소기업에 돈을 내주는 데 소극적이었던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기업채권 매각·상각, 65% 급증
은행의 기업 대출 기조가 바뀐 것은 경기 악화 때문으로 풀이된다. 불경기에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낮은 중소기업에 돈을 빌려줬다가 받지 못할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해 주요 은행은 기업 대상 부실 채권 관리에 골치를 썩은 것으로 알려졌다. 5대 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들어 3분기 말까지 상각하거나 매각한 기업 대출 채권은 3조4,296억원에 달한다. 전년 동기 2조783억원과 비교해 65% 늘어난 수치다.
은행은 회수 가능성이 없는 채권을 장부에서 삭제해 '상각'하거나 자산 유동화 전문회사 등에 낮은 가격에 넘기는 '매각'을 진행한다. 건전성 관리 차원에서 이뤄지는 해당 작업이 지난해 특히 활발했던 셈이다.
실제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은 상승세로 나타났다. NH농협은행은 지난해 3분기 중소기업 연체율이 0.81%로 직전 분기와 비교해 0.19%포인트 늘었다. 같은 기간 대기업 연체율이 0.04%에서 0.07%로 0.03%포인트 늘어나는 데 그친 것과는 대조되는 양상이다. KB국민은행과 하나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은 직전 분기 대비 지난 3분기에 0.11%포인트 올랐다. 게다가 현재 많은 중소기업은 고금리 기조 장기화에 경영난을 겪고 있다. 한국은행이 외부감사 대상 법인기업 2만3,137곳을 대상으로 기업경영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하반기 중소기업 영업이익률은 1년 새 5.0%에서 4.4%로 저하됐다. .
이에 산업계에서는 금융지주들이 밸류업(Value-up·기업가치 제고)에 나서면서 은행권의 위험가중자산(RWA) 관리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만큼, 앞으로 기술신용대출이 더욱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주요 은행들은 주주환원을 위해 보통주자본(CET1) 비율을 13% 내외로 유지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RWA가 높아지면 CET1 비율이 떨어지는 만큼, 은행 입장에서는 RWA가 낮은 우량대출을 확대하며 리스크를 관리하는 것이 유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