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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4분기 실적도 '어닝쇼크' 수준일 것 예상 경영진은 초격차, 현장직은 패배주의에 빠진 상황 전문가들, 조직문화 대대적 개편해야 초격차 기술 확보, 실적 개선 가능할 것
삼성전자가 8일 작년 4분기 잠정 실적을 발표할 예정인 가운데, 국내 증권사들이 영업이익 전망치를 잇달아 하향 조정하고 있다.
지난 3분기에 이어 작년 4분기에도 범용 D램, 낸드플래시, 파운드리 사업의 부진이 지속됐으며, 스마트폰 출하량 감소, 디스플레이 영업이익 감소 등이 겹쳐 영업이익이 크게 축소될 것으로 내다본 것이다. 증권업계는 지난해 8월까지만 해도 4분기 영업이익이 15조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으나, 7일까지 집계된 증권사 컨센서는 7조원까지 떨어졌다. 전분기의 9조1,800억원보다 20% 이상 감소한 수치다.
범용 D램, 낸드플래시 수익성 악화, 스마트폰 출하 축소, 디스플레이 사업부는 영업이익 반토막
증권가에서는 4분기 매출액을 73조원~74조원, 영업이익은 7조5천억원 내외로 예상하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은 7조7천억원, 한국투자증권은 7조3천억원, 삼성증권은 7조2,600억원의 영업이익을 예상했다.
실적부진의 가장 큰 원인은 주력 사업부인 DS(반도체) 부문의 부진이다. 메모리의 경우 중국 창신메모리의 저가 제품이 시장 가격을 떨어뜨리면서 수익성이 악화된 반면 DDR5를 비롯한 고가 상품에서도 시장 지배력이 떨어진 상태다. 시장에서는 범용 D램, 낸드플래시, 기업용 SSD 가격 하락이 수익성 악화에 직격탄이 됐을 것으로 평가한다. 12월 말 메모리카드·USB향 낸드플래시 범용제품(128Gb 16Gx8 MLC) 가격은 2.08 달러로 전월(2.16 달러) 대비 3.48% 하락했다. 낸드플래시 가격은 작년 1월 4.72 달러에서 작년 12월 기준 반토막 수준으로 급락했다. D램의 경우 하락세가 멈췄지만 여전히 정체돼 있다. D램 가격은 작년 8월과 9월 각각 2.38%, 17.07% 하락한 뒤 같은 해 11월 20.59% 급락했다. 작년 1월 1.80 달러를 기록했던 D램 가격이 작년 12월 기준 25% 떨어진 셈이다.
MX사업부의 수익성에도 악재가 이어지고 있다. 계절적 비수기에 최대 시장 중 하나인 북미에서 애플의 공세에 밀려 점유율이 하락하고 있으며, 인도 등 신흥 시장에서는 중국 스마트폰 회사들의 공세에 매출이 감소하고 있다. 지난해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은 전년 대비 6.2% 성장했지만, 신흥국과 중국 시장에서의 저가 모델을 중심으로 이뤄져 중국 기업들의 판매량만 늘었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때문에 증권가에서는 스마트폰 사업부의 영업이익을 전년 동기보다 약 4천억원 축소된 2조원대 초반으로 예상한다.
경영진은 초격차 마련하겠다 선언하지만
삼성전자 경영진은 초격차 기술로 재도약하겠다고 선언했다. 한종희 대표이사 부회장과 전영현 DS부문장 부회장은 지난 2일 신년사를 통해 “초격차 기술 리더십을 바탕으로 재도약의 기틀을 다지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해 나가자"고 강조했다. 특히 두 부회장은 AI 기술의 변곡점을 맞아 기존 성공 방식을 초월한 과감한 혁신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들은 “고도화된 인텔리전스를 통해 올해는 확실한 디바이스 AI 선도 기업으로 자리매김하자"며 AI 분야에서의 리더십 확보 의지를 드러냈다.
특히 전 부회장은 조직문화를 고치겠다면서 현장의 치열한 토론 문화’ 재건을 여러차례 강조한 바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들에 따르면 과거 전 부회장이 현장과 직접 소통을 하던 2000년대 초반에는 그런 문화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지난 10년간 볼 수 없었던 문화라고 설명한다. 국내 직장인 커뮤니티인 B모 웹사이트에는 삼성전자와 공무원을 결합한 '삼무원'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하며 실패를 두려워하는 문화, 도전하지 않는 문화가 조직 내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HBM에서 SK하이닉스에 뒤쳐진 것도 D램을 적층하는 기술이 필요하다는 일부 기술 팀의 주장이 묵살되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D램 사업부에서는 램을 쌓아올리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데, 시장성이 없는 기술에 굳이 투자할 필요가 없다고 반박했었다는 것이다.
'서초'에서 '노(No)'하면 안 되니 '초등학생도 알아듣게 보고서 써라'?
삼성전자 기술직들은 사업지원TF에서 '노(No)' 하지 않을 보고서를 써내라는 압박에 시달리다는 이야기도 종종 등장한다. 삼성전자 직원들은 해당 TF를 서초에 있는 삼성전자 총괄부서라는 이유로 '서초' 혹은 'HH'라고 부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반도체 사업 총괄부서보다 '서초'가 더 최종 결정을 내리는 부서로 인식되어 있고, '서초'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초등학생도 알아듣게 보고서 써라'는 압박을 받는 경우가 많다는 불만도 토로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삼성전자 기술직 관계자는 "기술팀 사이에서도 기술 격차가 큰데 교통정리가 안 되어 있고, 보고서에 알록달록한 색상, 예쁜 표 등을 잘 넣어야 프로젝트 승인도 떨어지고 승진할 수 있다"는 것이 조직 내부에서 공유되는 불만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특히 '초등학생도 알아듣게'라는 표현은 전 사업부에 걸쳐 자주 언급되는 사안으로, 현장에서는 기술 비전문가들이 '초격차'를 마련하겠다는 언론 보도를 내놓을 때마다 현장과 고위층 간의 이해도 차이, 시선 차이를 체감한다고 답했다.
지난해 말 고위 임원진 개편에 대해서도 '결국 같은 사람'이라는 불만과 함께, 기술직이 '서초'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되기 전에는 현장의 불만이 개선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설명이다. 조직 전문가들은 기술직이 연구 동력을 잃은 인텔이 결국 파운드리 사업부를 포기했던 것과 같은 현상이 삼성전자에도 나타날 수 있다며, 기술직군 내에 만연한 패배주의, 보신주의를 타파할 수 있는 조직 개선안이 구체화 되어야 초격차를 위한 도전을 다시 할 수 있지 않겠냐고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