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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美 원자력 기관 간 MOU 정식 체결
‘군사·가치 동맹→에너지 동맹’ 관계 다각화
APR1400 관련 웨스팅하우스 분쟁 합의 목전
한국과 미국 정부가 세계 원전 시장 공동 진출을 위한 ‘원자력 수출 협력 약정(MOU)’에 공동 서명했다. 양국은 제3국으로 민간 원자력 기술을 이전하기 위한 정보 공유 체계를 마련함으로써 수출통제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한·미 원전 협력체계가 공고해지면서 2년 넘게 이어져 온 한국수력원자력과 미국 웨스팅하우스 간 갈등도 머지않아 마침표를 찍을 전망이다.
‘원자력 평화적 이용’에 뜻 모아
10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산업부와 외교부는 8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 D.C.에서 미 에너지부·국무부와 ‘한미 원자력 수출 및 협력 원칙에 관한 기관 간 MOU’를 정식 체결했다. 안덕근 산업부 장관과 제니퍼 그랜홈 미 에너지부 장관 임석 하에 서명됐으며, 양국은 이로써 지난해 11월 가서명 이후 두 달 만에 원전 동맹을 공식화하게 됐다.
양국은 MOU 체결 직후 배포한 공동 성명을 통해 “한미 양국은 70년 넘게 민간 원자력 분야에서 협력해 왔다”며 “이런 협력의 초석은 최고 수준의 원자력 안전, 안보, 안전조치 및 비확산 기준에 따라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양국의 상호 헌신을 반영한다”고 이번 MOU 체결의 의미를 강조했다.
이어 “이번 MOU는 양국의 오랜 파트너십에 기반을 두고 있다”며 “민간 원자력 기술에 대한 양국의 수출통제 관리를 강화하는 것은 물론, 제3국의 민간 원자력 발전 확대를 위한 양국 간 협력의 틀을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산업부 관계자 또한 “이번 MOU 체결은 ‘글로벌 포괄 전략동맹’으로서 양국 간 깊은 신뢰에 기반하며, 향후 글로벌 시장에서 양국 간 호혜적 협력을 촉진하는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韓 건설·운영+美 기술·부품’ 원전 시너지 기대
업계에서는 이번 MOU이 체결이 한미 원전 동맹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나아가 중국과 러시아 등 세계 원전 시장을 잠식한 국가들에 대한 효과적인 견제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했다. 한국은 원전 건설 및 운영 기술에서, 미국은 핵심 기술과 부품 등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만큼 양국이 손을 맞잡으면 단기간 내 시장 재편에도 무리가 없을 것이란 평가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기대되는 효과가 상당하다. 범세계적 원전 르네상스를 주도하는 과정에서 한미 자체의 전력 공급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공산이 크다. 현재 미국에서는 버지니아와 텍사스 등 8개 주에 1,700개가 넘는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가 가동되며 엄청난 전력을 소비 중이다. 백악관마저 심각성을 인지하고 ‘범부처 인프라 TF’를 조직해 데이터센터 개발을 지원할 정도다.
대형 데이터센터는 평균 10~50메가와트(㎿)의 전력을 소비한다. 최대 전기 출력이 1,400㎿에 달하는 원전은 28개 가동으로 약 140개의 데이터센터를 운영할 수 있다. 여기에 50~300㎿ 출력의 차세대 원전 소형모듈원전(SMR)을 공동 개발·생산한다면, 한미 양국은 물론 그 이상의 에너지 수요까지 소화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김성한 고려대 경제기술안보연구원장은 “원전은 에너지 안보를 위한 중요한 수단”이라고 강조하며 “한미 원전 동맹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면, 양국의 관계는 북한 등 적성국의 위협에 대처하는 군사 동맹, 자유민주적 가치를 공유하는 가치 동맹 등 지금까지의 관계를 넘어선 ‘에너지 동맹’으로서 신기원을 열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24조원대 체코 원전 수주에도 파란 불
한편 이번 MOU는 한국의 체코 원전 수출을 놓고 한수원과 미국의 원전기업 웨스팅하우스 간 분쟁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체결돼 눈길을 끈다. 2022년 10월 웨스팅하우스는 한수원과 한국전력이 개발한 한국형 원자로 ‘APR1400’에 자사 기술이 쓰였다고 주장하며 미국 컬럼비아 연방지방법원에 한수원의 APR1400 수출을 제한해달라는 취지의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웨스팅하우스는 APR1400이 자사가 2000년 인수한 컴버스천엔지니어링의 원자로 ‘시스템80’ 디자인을 바탕으로 개발됐다는 점을 지적하며 한수원이 여타 국가에 이를 수출하기 전 자사와 미국 에너지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수원이 2010년 아랍에미리트(UAE)에 APR1400 4기를 수출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사안을 인정했다고 덧붙였다.
해당 분쟁은 한수원의 유럽 시장 진출에 발목을 잡기도 했다. 한수원 컨소시엄(한수원·두산에너빌리티·대우건설)은 지난해 7월 24조원대 규모 체코 원전 건설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데 이어 올 3월 최종 계약을 앞두고 있다. 웨스팅하우스는 이에 대해서도 자사의 기술을 도용했다며 어깃장을 놓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번 MOU 체결 과정에서 미국 정부가 한수원의 체코 원전 수출에 동의하면서 그 족쇄가 풀렸다. 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 간의 협의 역시 우호적 분위기 속에서 합의에 다가선 것으로 알려졌다. 한수원 관계자는 “아직 양측간 협의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합의점을 찾아가고 있는 단계”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