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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 1심 원고 일부 승 뒤집고 패소 판결 배출가스 제어 기능, 인증시험과 주행 시 차이 소프트웨어로 저감 기능 효율 떨어트려
디젤 차량의 배출가스를 불법 조작해 환경부로부터 수백억원대 과징금을 부과받은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가 환경부를 상대로 낸 소송 2심에서 패소했다. 법원은 벤츠코리아가 차량 인증시험 때와 실제 주행 상태에서 배출가스 저감 시스템이 다르게 작동하도록 하는 등 교묘하게 조작했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 "임의설정 해당, 제재 적법"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전날 서울고법 제11-3행정부는 벤츠코리아가 환경부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과징금부과처분 등 취소 소송 항소심 선고기일을 열고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1심을 취소하고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앞서 벤츠코리아는 C220d 등 디젤 차량 12종, 3만2,615대에 대해 '선택적 촉매환원 장치(SCR) 제어기능'과 '배기가스 재순환 장치(EGR) 제어기능'을 조작해 질소산화물 저감장치 기능이 저하되도록 변조한 사실을 숨기고 배출가스 인증을 받았다. 환경부는 이 같은 조작 행위가 관련 법에서 금지한 '임의 설정'에 해당한다고 보고 해당 차종에 대한 인증을 취소하며 과징금 642억원을 부과했으나 이에 불복한 벤츠코리아는 소송을 제기했다.
1심 법원은 벤츠코리아 손을 들어줬다. 당시 1심 재판부는 "EGR 제어기능이 SCR과 상호보완적 관계에 있어 EGR 제어기능에도 불구하고 질소산화물 배출량이 크게 증가하지 않는다"며 임의 설정이 아니라고 봤다.
하지만 2심 법원 판단은 달랐다. 항소심 재판부는 "다른 제어 로직들의 정해진 변수에 따라 EGR 가동률이 조절됨으로 인해 배출가스의 양이 상대적으로 감소되는 것처럼 보일 뿐"이라며 "EGR 제어기능 자체를 기준으로 배출가스 시험모드와 비교해 일반적인 운전 및 사용 조건에서 배출가스 저감장치의 기능 저하가 발생하는지 여부를 살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환경부와 국립환경과학원이 임의 설정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시행한 조사의 절차와 방식, 내용에도 특별한 잘못이 없다"며 "특히 임의 설정이 교묘하게 이뤄지고 이를 잠탈하려는 시도가 있는 상황에서 표준적인 검사방식에 다소의 변형이 가해지는 것은 필요하고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또 "자동차 배출가스로 인해 환경 및 인체에 대한 피해가 심각해지고, 대기환경보전법령상 배출가스 인증 절차 및 과징금 부과 기준이 엄격해지는 상황"이라며 "원고에게 각 인증을 취소하고 최고한도액에 가까운 각 과징금을 부과한 것에는 피고의 재량권 일탈·남용이 있다고 볼 수 없고, 과징금 산정과정에도 소급효금지원칙 위반 등 위법도 없다"고 판시했다.
연비 높이려 배기가스 저감장치 조작
벤츠의 배기가스 조작 문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21년에도 벤츠는 4종의 디젤 차량 배출가스를 불법 조작한 혐의로 환경부에 적발된 바 있다. 당시에도 벤츠는 SCR의 요소수 분사량을 감소시키는 방법을 사용했다. 실제 운행 중에 배출되는 온실가스보다 적게 배출되는 것처럼 조작한 것이다.
배출가스를 불법 조작해 판매된 것으로 확인된 차량은 벤츠 ‘G350d’, ‘E350d’, ‘E350d 4매틱’, ‘CLS350d 4매틱’ 등이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벤츠의 유로6 경유차 18개 차종 중 4종이 운행 시간이 증가함에 따라 환원촉매 장치의 요소수 분사량이 줄어들도록 조작됐고, 실도로 주행 시 배출되는 질소산화물이 실내 인증기준(0.08g/㎞)보다 8배 정도 증가했다.
벤츠는 2018년에도 같은 수법을 썼다가 적발된 적이 있다. 당시 벤츠코리아의 경유 차량의 불법 조작 의혹은 2018년 6월 독일 교통부에서 먼저 제기된 이후 대형 스캔들로 번졌다. 이후 독일 자동차청은 2018년 8월, ‘GLC220d(2.1L), GLE350d(3.0L)’ 차종 등의 질소산화물 환원촉매 장치 중 요소수 제어 관련한 불법 소프트웨어(SW)를 적발하고 리콜을 명령했다.
공정위로부터 202억원 과징금 부과도
벤츠는 이른바 '디젤게이트' 사건으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200억원대의 과징금을 부과받기도 했다. 2022년 2월 공정위는 표시·광고법을 위반한 벤츠코리아와 독일 본사인 메르세데스-벤츠 악티엔게젤샤프트(Mercedes-Benz Aktiengesellschaf) 등 2개사에 총 202억4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2013년 8월부터 2016년 12월까지 벤츠 매거진, 카탈로그, 브로슈어, 보도자료 등을 통해 자사의 경유 승용차가 질소산화물을 최소치인 90%까지 줄이고, 유로6 배출가스 기준을 충족하는 성능을 가지고 있다고 허위 광고한 혐의다. 독일 본사는 광고의 기초가 되는 배출가스 관련 자료와 광고문구를 벤츠코리아에 제공해 광고에 사용하도록 한 것으로 드러났다.
공정위에 따르면 벤츠는 경유 승용차 15개 차종에 배출가스 조작 소프트웨어를 설치해 엔진 시동 후 약 20~30분 경과 시점에서 요소수 분사량이 크게 줄어들도록 했다. 이로 인해 미세먼지의 주범인 질소산화물이 배출 허용 기준의 5.8~14배까지 과다 배출됐다. 벤츠 측은 국내 승용차 주행시간의 90% 이상이 30분을 넘지 않기 때문에 30분을 초과하는 주행을 일반적인 주행조건으로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지만 공정위는 30분 이상 주행이 일 평균 400만 건(435만2,406건)이 넘는 것을 고려할 때 예외적인 주행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 같은 임의 설정은 불법 프로그램 설치를 강하게 금지하고 있는 대기환경보전법에도 저촉된다. 당시 공정위 관계자는 “성능을 저하시키는 SW를 의도적으로 설치해 놓고도 이를 숨기고 자사 차량이 이론적 최대 성능을 구현한다고 광고한 것은 ‘다소의 과장이나 허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법정 시험방법에 따른 인증내용이 사실과 다를 거라고 상상하기 어려운 점, 수입차 판매 1위 사업자인 벤츠의 브랜드 신뢰도가 높은 점 등을 고려할 때 소비자 오인 효과가 더 컸을 것이라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