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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사서 ‘아메리카 퍼스트’ 강조 중국·캐나다·멕시코 무역 연구·평가 지시 관세 등 수입 징수할 대외수입청 창설 보편관세는 보호무역 원칙만 우선 확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첫날 서명할 행정명령을 거론하며 무역시스템을 즉각적으로 개편하는 작업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수입을 총괄하는 기관을 신설해 관세 규모를 확대하는 동시에 관세 외 다른 해외발 수입을 개발한다는 구상이다. 이와 함께 중국·캐나다·멕시코 3국을 타깃으로 한 관세폭탄 투하도 예고했다. 외국을 부유하게 하기 위해 미국 국민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대신, 외국에 관세를 부과해 미국 국민을 부유하게 하겠다는 인식이다. 반면 예상과 달리 취임 첫날 무역 상대국에 대한 관세 조치를 즉각 발표하지 않으면서 국내 기업들의 우려도 일단 관망세로 돌아섰다.
트럼프, 무역시스템 개편 시작 "더 이상 이용당하지 않겠다"
20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선서를 통해 제47대 대통령으로서 두 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미국의 황금기가 이제 시작된다"며 "우리는 번영하고 전 세계에서 다시 존경받게 될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이용당하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 정부는 매일 매일 미국을 최우선시할 것"이라며 집권 1기 취임사와 마찬가지로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 미국 우선주의)를 국정의 모토로 내세웠다.
먼저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첫날 실행에 옮길 행정명령을 언급하며 ‘무역 시스템의 개편’을 거론했다. 그는 “미국 노동자와 가족들을 보호하기 위한 무역시스템 개편을 즉시 시작할 것”이라며 “다른 나라를 부유하게 하기 위해 우리 국민에 세금을 부과하는 대신, 우리 국민을 부유하게 하기 위해 외국에 관세를 부과하고 세금을 부과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최우선으로 중국, 캐나다, 멕시코에 초점을 맞추고 북미 3국 자유무역협정(FTA)인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 이행 상황을 점검해 2020년에 체결된 미·중 무역 협정을 평가하도록 지시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중국, 캐나다, 멕시코에 대한 무역 정책과 경제 관계를 종합적으로 검토하도록 연방정부 기관에 메모를 내려보낼 것이란 의미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특히 '디 미니미스 룰(de Minimis rule, 최소 허용 기준)'을 재검토할 예정이다. 디 미니미스 룰은 해외에서 미국으로 들어오는 800달러(약 115만원) 미만 제품에 대해서는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 것이다. 중국 쇼핑앱 '테무(Temu)'와 '쉬인(Shein)'이 미국에서 높은 판매 실적을 올리자 미국인의 중국산 제품 해외 직구를 막기 위해 중국산 제품에 대한 면세 규정을 개정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와 수입세, 외국의 원천에서 들어오는 모든 수입을 징수할 대외수입청(External Revenue Service)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재무부 산하 국세청(Internal Revenue Service)이 미국 납세자의 세금을 걷는 것처럼 관세를 걷을 별도 기관을 설립하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대외 수입청을 설립해 관세와 수입세(duties), 해외에서 나오는 수익(revenue)를 모을 것”이라며 “해외 원천으로 나오는 이러한 수입은 우리의 국고에 막대한 규모의 재정을 더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이달 14일 트루스소셜을 통해 대외수입청 구상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에 앞서 대외수입청 구상을 처음 제안한 스티브 배넌(Steve Bannon)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는 대외수입청이 거두는 수입원이 관세뿐 아니라 미국에 대한 해외 기업의 투자에 수수료를 부과하는 방안도 가능하다고 밝힌 바 있다.
美 중소기업들, 대중 관세 정책 우려
그러나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강력한 관세 정책은 중국 등 당사국뿐만 아니라 미국 중소기업들의 우려도 불러일으키고 있다. 중소기업들은 2018년 이후 부과된 대중 수입 관세로 큰 타격을 입고 있다. 현재까지 관세로 인한 미국 기업과 소비자의 손실은 1,250억 달러(약 179조7,000억원)에 달하며, 매월 30억 달러(약 4조3,000억원)씩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테네시주 전자기업 카이젠의 톰 포사이드 부사장은 "우리가 어딘가에서 사업을 할 수 없다면 아무도 성공할 수 없다"며 "지자체도 세금을 낼 기업이 없어지게 된다"고 우려했다.
이에 미국 기업들은 중국의 3조 달러(약 4,314조원) 규모 전자상거래 시장 진출 확대를 위한 정부 차원의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위스콘신의 윤활유 제조사 직원 폴 스웬슨은 "주지사의 중국 방문과 같은 주 정부 차원의 조치가 실질적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근거로 1단계 무역협정 성과를 제시했다. 협정 체결 후 2020년 미국의 대중 수출은 18% 증가했고, 2021년 11월까지 11% 추가 증가했다.
그러나 중국이 구매 약속의 40% 이상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분석도 있다. 특히 농업 부문의 우려가 크다. 미네소타 농무부의 수석 경제학자 수 예는 "1단계 협정이 연장이나 대체 없이 만료되면서 농민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며 "농업단체들이 관세 철폐나 예외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결국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대중 무역 정책은 미국 기업들의 중국 시장 진출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관세가 특정 미국 산업의 보호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수입 제품에 의존하는 가계와 기업의 비용을 증가시키는 등의 단점도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양국 간 무역갈등 완화와 기업들의 실질적 요구 수용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보편관세 즉시 부과는 유보, 우리 정부 "섣부른 대응보단 예의주시"
다만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 등에 대한 즉각적인 보편관세 부과는 일단 유보한다는 입장이다. 이는 관세를 통해 무역 관계를 재설정하겠다는 선거 공약보다 신중한 접근 방식을 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공격에 보복을 시사한 무역 파트너 국가들의 전쟁도 당분간 지연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캠페인 동안 연간 1조 달러(약 1,440조원)에 달하는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 무역 파트너국 수입품에 10~20%의 보편관세, 중국산 상품에 60%의 가파른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했다. 이후 지난해 11월 선거에서 승리한 이후 캐나다와 멕시코에 불법 마약과 불법 이민자의 유입을 단속하지 않으면 취임 후 즉시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엄포를 내린 바 있다.
이에 워싱턴 안팎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즉시 국가경제비상권한법(IEEPA)을 통해 즉각적인 관세를 부과할 것으로 예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당시인 2019년 멕시코가 이민 문제를 해결하도록 압박하기 위해 IEEPA를 통한 관세부과를 위협한 전례가 있다. 멕시코가 미국과 협력하기로 합의하면서 이 카드는 수면 아래로 내려갔지만, 이번에 다시 부상할 가능성이 커진 상태였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당초 우려와 달리 취임 첫날 신규 관세 부과 행정명령을 내리지 않은 것과 관련해 "보편관세 및 중국 등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라는 선거 공약을 어떻게 이행할지를 두고 차기 행정부 내에서 여전히 격렬한 논쟁이 진행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폭탄을 보류하자 환율도 급락했다. 21일 서울외환시장에 따르면 달러·원 환율은 야간 거래에서 낙폭을 크게 확대하며 1,440원 선으로 후퇴했다. 새벽 2시 달러·원 환율은 전장 서울환시 종가 대비 18.30원 하락한 1,44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전날 주간 거래(9시~3시 반) 종가 1,451.70원 대비로는 11.70원 낮아졌다. 주요 6개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DXY) 역시 109를 약간 웃돌던 수준에서 한때 107.9 부근까지 급락했다. 달러인덱스는 이후 108 초반대로 낙폭을 축소했다. 모넥스 유럽의 닉 리스 거시 리서치 책임자는 "시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첫날 관세가 논의에서 제외됐다는 헤드라인에 위안을 삼고 있는 듯하다"면서도 "광범위한 첫날 관세는 언제나 가능성이 낮았지만, 취임식 직후에 더 표적화된 관세가 있을지는 또 다른 문제"라고 덧붙였다.
실제 시장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즉각 관세 시행을 보류하긴 했지만 조사가 충분히 끝나면 언제든 관세카드를 꺼내 들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 보좌관들을 인용해 “현재로서는 즉각적인 관세 조치를 보류하긴 했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고문들은 보편적 관세, 중국에 대한 관세 인상, 멕시코 및 캐나다와 무역관계를 해결하기 위해 해당 국가들에 세금을 부과하는 여러 정책을 선호해 왔다”고 전했다.
우리 정부도 섣부른 대응으로 약점을 노출하기보다는 상황을 예의주시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산업부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부터 예고해 온 정책에 별도의 대응을 하지 않고 반응을 최소화했다. 아직 공식적인 정부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진 않다는 판단이 깔려있는 가운데 이런 방식의 신중한 접근은 한동안 이어질 전망이다. 정부가 선제적으로 대응하며 우려를 드러낼 경우 미국 측에서 우리 측의 아픈 부분을 파고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