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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사회주의 국가들, ‘사회적 이동성’ 줄고 ‘기회 불균등’은 늘어 ‘직장 복리후생’ 및 ‘직업 안정성’도 낮아 정책 효율성 높이려면 “정부 신뢰부터 회복해야”
‘전환 국가 생활 조사’(Life in Transition Survey, 중앙 계획 경제에서 시장 경제로 전환한 국가들의 삶의 질에 대한 설문 조사 연구, 이상 LiTS)는 유럽 신흥국과 코카서스, 중앙아시아, 북아프리카 지역 37개국을 대상으로 가구 소득, 고용, 교육, 사고방식, 신념 등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한다. 이번 4차 조사는 이들 국가에서 ‘세대 간 사회적 이동성’이 줄고 ‘기회 불균등’ 현상이 심화하는 가운데 직장 복리후생은 아직 미흡한 수준에 머물러 있는 쉽지 않은 현실을 드러냈다. 또한 디지털 기술 보유자가 고용 시장에서 웃돈을 받는 상황과 기후 변화 우려가 환경 정책에 대한 지지로 연결되지 못하는 그들만의 이유도 보여준다.
‘시장 경제 전환 국가들’, 사회주의 시절보다 ‘교육 이동성’ 낮아져
LiTS는 지난 2006, 2010, 2016년에 이어 작년에 네 번째로 실시됐다. 과거 사회주의 국가로 계획 경제 체제하에 있다 시장 경제로 전환한 37개국을 조사 대상으로 하며, 독일을 비교 국가로 해 수집된 자료들을 분석한다. 이전 조사들이 탐색한 주제는 ‘공산주의가 가족 네트워크에 미친 영향’, ‘제2차세계대전의 정치 신뢰에 대한 영향’, ‘금융 위기 후 국민들의 시장 경제에 대한 태도’ 등이 있다. 최근으로 오면 ‘우크라이나의 분권화 개혁’과 ‘2015년 난민 위기’에 대한 분석이 눈에 띈다.
최근 조사가 알려주는 이들 국가의 가장 심각한 고민은 자녀가 부모보다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을 가능성을 의미하는 ‘교육 이동성’(educational mobility)이 낮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조사 대상에 고등 교육을 받지 못한 부모들이 포함됐는데도 움직임이 확연히 보여진다. 사실 이들 국가가 사회주의 시절이던 1940~60년대 출생자들은 당시 다른 신흥국들과 비교해 부모 세대의 교육 수준을 뛰어넘는 이들이 더 많았다. 하지만 80년대 출생자들은 동일한 비교에서 16% 뒤떨어진 결과를 보이면서 같은 흐름이 90년대 출생자들로 이어지고 있다.
‘기회 불균등 심화’가 사회경제적 부작용 양산
또 다른 고민은 개인의 사회경제적 성과가 부모, 성별, 출생지 등 본인이 통제할 수 없는, 이미 정해진 요인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기회 불균등’은 특히 유럽 신흥국에서 높아졌는데 만만치 않게 우려스럽다. 기회 불균등이 심한 국가일수록 국민들이 전 소득 계층에 걸쳐 노력보다 정치적 인맥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민주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대중적 지지도 더 약하다.
다음은 노동 시장에 관한 이슈인데 조사 대상국 고용주들 가운데는 복리후생이 미흡한 미등록 업체들이 많았다. 일자리 중 1/7이 서면 계약을 통하지 않았고, 노동자 중 1/4은 연차 휴가가, 1/3가량은 병가가 주어지지 않았다. 또한 1/3 이상이 사회보장과 연금 혜택을 받지 못했다. 임금이 낮은 일자리일수록, 나이 어린 근로자일수록, 소규모 회사일수록 복리후생이 열악했고 직업 안정성도 낮았다. 비교 대상국인 독일의 경우 복리후생이 임금 수준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아 대조적이다. 흥미로운 점이 있다면 조사 대상 국가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평균적으로 임금은 낮지만 복리후생이 우수한 직장에서 일한다는 사실이다.
‘디지털 기술 프리미엄’은 지속 상승
하지만 이들 국가에서도 디지털 기술의 중요성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관공서 업무나 온라인 학습 등에도 필요하지만 좋은 직장을 얻는 일에도 필수적이다. 디지털 기술을 필요로 하는 직업은 그렇지 않은 일자리보다 평균 12~33%의 임금을 더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연금, 사회보장, 연차 휴가, 병가 등의 복리후생도 우수했다.
‘정부 불신 해소’와 ‘사회적 이동성 활성화’가 국가 발전 핵심
마지막으로 조사 대상국 응답자들의 대부분은 기후 변화에 대한 우려를 표현하면서도 비용 증가를 수반하는 기후 정책을 지원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해당 정책에 대한 지지는 고소득 가구나 미래 소득을 낙관적으로 보는 이들, 인내심이 강한 개인들, 정부 신뢰가 높은 사람들 사이에서 더 높았다.
그중에서도 정부에 대한 신뢰가 가장 중요한데, 조사 대상 5개국 국민들의 6~8%만이 탄소세, 전기 요금 인상 등으로 징수된 예산이 기후 행동 지원 목적에 온전히 사용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와 정부 지출에 대한 높은 불신을 보여주는 사례다. 따라서 기후 정책에 대한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해당국 정부는 소득 수준의 향상, 정부 신뢰의 회복, 부패 척결, 투명성 제고 등의 어려운 숙제를 함께 해결해야 한다. 또한 기후 위험과 친환경 기술 발전에 대한 명확한 커뮤니케이션과 인식 제고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요약하자면 조사 대상국들은 많은 영역에서 괄목할 성장을 이뤘지만, 교육 이동성 감소와 기회 불균등 심화로 사회적 단합과 시장 경제 개혁이 위협을 받는 상황이다. 노동 시장의 양극화 현상도 마찬가지다. 디지털 기술 보유자들은 확실한 보상을 받지만 훨씬 많은 노동자가 기본적인 복리후생과 직업 안정성조차 누리지 못하고 있다. 보다 형평성 있는 경제 발전을 이루고 싶다면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기후 행동을 포함한 정부 정책에도 국민들이 더 많은 지지를 보내주기를 원한다면 부족한 신뢰도부터 회복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원문의 저자는 랄프 드 하스(Ralph De Haas) 유럽부흥개발은행(European Bank for Reconstruction and Development, EBRD)의 연구 책임자 외 3명입니다. 영어 원문 기사는 Social mobility and digital divides in emerging economies: Evidence from the 4th wave of the Life in Transition Survey | CEPR에 게재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