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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작법인 설립에 58억 달러 투자
2027년 합작 전기차 출시 목표
전기차 대세·중국 업체 분전 ‘이중고’
독일 최대 완성차 제조업체 폭스바겐이 미국 전기차 스타트업 리비안과의 협력을 한층 공고히 하고 나섰다. 시장에서는 전기차 시장에서 고전 중인 폭스바겐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외부에 손을 내민 것으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창사 이래 처음으로 공장 폐쇄를 검토하고 나서는 등 심각한 경영난에 빠진 폭스바겐이 리비안과의 동행으로 전기차 전환에 속도를 낼 수 있을지 이목이 쏠린다.
아마존 주목 받은 리비안, 폭스바겐과도 동행
20일(이하 현지시각)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올리버 블루메 폭스바겐그룹 최고경영자(CEO)는 전날 독일 주간지 슈피겔과 인터뷰에서 “리비안과 모듈 공유, 구매 물량 통합 등 협력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면서 “우리는 리비안 같은 신생 소규모 브랜드에 중요한 기회를 제공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폭스바겐과 리비안의 동행은 지난해 6월 합작법인 설립을 위한 협약을 체결하면서 시작됐다. 폭스바겐은 우선 10억 달러를 투자해 리비안 지분을 확보하고, 합작법인 설립 후에는 13억 달러를 추가 투자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외에도 2027년까지 최대 35억 달러를 지분과 전환사채 등 다양한 방식으로 투자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총 58억 달러의 투자를 통해 합작 법인 지분 50%를 소유한다는 게 폭스바겐의 구상이다.
캘리포니아 어바인에 본사를 둔 리비안은 2021년 픽업트럭 R1T, 지난해 준대형 SUV R1S 등 연이은 히트 상품을 내놓으며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입지를 다졌다. 또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플랫폼 아마존과 대규모 계약을 통해 상업용 전기밴 공급에도 주력하며 안정적인 성장 기반을 구축한 바 있다.
리비안과의 협력으로 폭스바겐그룹은 차세대 전기차 아키텍처와 전기차를 위한 소프트웨어(SW)를 확보해 경쟁력을 높일 수 있게 됐다. 합작법인은 이르면 오는 2027년 리비안의 SW와 전기차 아키텍처를 사용하는 최초의 폭스바겐 모델을 출시할 예정이다. 블루메 CEO는 “협력을 통해 리비안 기술을 사용할 것”이라며 “브랜드별 다양한 가격대 제품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로버트 스카린지 리비안 CEO 또한 “우리 기술이 외부 차량에 통합돼 기쁘고, 미래가 기대된다”고 강조했다.
대규모 투자에도 자체 SW 구축 실패
업계에서는 이번 발표를 두고 폭스바겐의 절박함에서 비롯된 행보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전기차의 핵심과도 같은 SW 개발을 전적으로 미국 스타트업에 맡기기로 한 만큼 SW 자체 개발이 힘들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과 같다는 평가다. 실제로 폭스바겐은 2020년대 이후 대세로 자리 잡은 전기차 시장에서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일례로 폭스바겐의 순수 전기차 ID.3는 2019년 출시와 함께 ‘실패작’이라는 꼬리표를 달았다. 해당 모델은 일반적인 주행 중 난데없는 경고음을 난사해 탑승자들의 불편을 야기했으며, 잦은 SW 오류로 몇몇 기능이 먹통이 되기도 했다. 이와 같은 문제는 폭스바겐그룹 프리미엄 브랜드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SW 개발 일정이 더뎌지면서 아우디 Q6 e-트론, 포르셰 마칸EV 등 신모델 출시도 3년가량 지연됐다.
문제를 인지한 폭스바겐은 2020년 각 브랜드에 흩어져있던 엔지니어들을 모아 SW 자회사 카리아드(Cariad)를 설립하고 나섰다. 기존 6,000명 수준인 개발 인력을 1만 명으로 늘리고, 이를 기반으로 자체 전기차 SW를 구축한다는 게 폭스바겐의 청사진이었다. 지금까지 폭스바겐이 카리아드에 투자한 금액은 120억 유로(약 17조8,000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출범 5년 차를 맞은 지금까지 카리아드는 이렇다 할 성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 카리아드 전 직원은 “작은 위험조차 감수하길 싫어하는 경영진 아래서는 어떤 결과물도 나올 수 없다”고 말했다. 뛰어난 엔지니어가 아무리 많아도, 낡은 사고방식을 고수하는 기존의 경영 체제 아래서는 빛을 발할 수 없다는 의미다.
위태로운 ‘글로벌 2위’ 자리
폭스바겐의 위기는 갈수록 줄어드는 시장 내 입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상반기 기준 폭스바겐그룹의 글로벌 판매량은 434만 대로 2위를 기록했다. 3위 현대차그룹(361만 대)과는 불과 73만 대 차이다. 2023년 양사의 판매량 차이가 194만 대(폭스바겐 924만·현대차 730만)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눈에 띄게 줄어든 격차다.
시장은 폭스바겐이 고전하는 이유로 주요 시장인 중국 판매 부진을 꼽았다. 중국 현지 완성차들의 상품성이 크게 향상되면서 폭스바겐의 제품 경쟁력이 갈수록 약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폭스바겐의 지난해 상반기 중국 내 판매량은 134만 대로 전년 동기 대비 7.4% 줄었다. 3분기에는 누적 기준 12%로 감소 폭이 확대됐다. 폭스바겐의 전체 판매량 가운데 약 35%를 차지하는 중국 의존도에 타격을 입으면서 영업이익률도 지난해 상반기 6.3%에서 3분기 누적 2.1%까지 쪼그라들었다.
이처럼 심각한 경영난을 타개하기 위해 폭스바겐은 극단적인 구조조정 방안을 검토하고 나섰다. 지난해 9월 폭스바겐은 창립 이래 처음으로 독일 내 공장 폐쇄를 추진했다. 당시 경영진은 독일 공장 10곳 중 최소 3곳의 폐쇄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동시에 임금 10% 일괄 삭감, 대규모 정리해고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안을 제시했다.
노조는 즉각 반발하고 나섰고, 회사 경영진은 협상 테이블에 앉아 타협점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노사는 지난달 20일 ‘공장 폐쇄 없는 대규모 감원’이라는 절충안에 합의했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공장들은 자율주행센터 등으로 전환하거나 매각을 추진하고, 강제 정리해고 대신 퇴직 프로그램과 고령 근로자의 근로 시간 단축 등 ‘사회적으로 허용되는’ 수단을 통해 인력을 감축하는 데 뜻을 모은 것이다. 블루메 CEO는 해당 합의를 두고 “폭스바겐 브랜드의 미래 생존 가능성을 위한 중요한 신호”라고 의미를 부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