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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M7, 이익 성장률 수년째 '하향곡선' 시장 곳곳서 대규모 AI 투자에 대한 의구심 제기 '딥시크 쇼크'가 불러온 지각변동, 美 빅테크 '환상' 무너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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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에서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성장성에 대한 의구심이 일고 있다. 매그니피센트7(M7, 애플·마이크로소프트(MS)·아마존·알파벳·엔비디아·테슬라·메타의 총칭) 기업을 중심으로 인공지능(AI) 투자 규모가 급격하게 확대된 가운데, 이들 기업의 대규모 지출이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기 시작한 것이다.
M7 기업, 줄줄이 '성장 둔화'
1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M7 기업의 지난해 4분기 이익 성장률(전년 동기 대비) 추정치는 22%에 그쳤다. 이는 2023년 4분기(56.8%)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뚜렷한 실적 악화 흐름 속 자본지출(CAPEX)은 오히려 전년 대비 약 40% 확대됐다. 같은 기간 M7을 제외한 여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기업의 자본지출 증가율은 3.5% 수준이었다.
시장은 M7 기업의 막대한 지출 규모에 대한 의구심을 드러내고 있다. M7 기업 대다수가 투입한 비용에 걸맞은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시장 관계자는 "현시점 가장 큰 문제로 꼽히는 것은 M7의 부진한 AI 부문 성적"이라며 "천문학적 비용을 투입하고도 이렇다 할 결과를 내지 못하다 보니, 시장이 관련 소식 하나하나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구글 모회사 알파벳의 주가는 구글의 부진한 AI 클라우드 부문 매출 실적이 발표된 지난 4일(이하 현지시간) 하루 만에 6.94% 떨어졌다. MS의 주가 역시 AI 클라우드 매출이 기대치를 하회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지난달 30일 하루 만에 6.19% 하락했다.
월가서도 비관론 확산
월가에서도 M7의 주가 흐름에 대한 비관적 전망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M7'이라는 단어를 만든 것으로 알려진 마이클 하트넷 뱅크오브아메리카 최고투자전략가는 최근 투자자 대상 메모를 통해 "미국 증시가 글로벌 무대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두던 시대는 곧 끝날 것"이라고 관측했다. 그는 "최근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AI 투자는 그만한 이익을 창출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며 "앞으로 M7은 미국 주식을 이끌지 못하고 오히려 L7(Lagnificent7·주가 수익률이 떨어지는 7개 종목)이 된다"고 꼬집었다.
'블랙 스완(The Black Swan)'의 저자 나심 탈레브도 M7 주가의 조정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는 3일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엔비디아 주가 폭락 사태는 시작에 불과하다”며 “향후 2~3배 더 심각한 급락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미국 증시에서 M7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크며, 향후 시장이 단기적인 조정이 아닌 구조적인 위기를 맞이할 가능성이 크다고 짚었다.
이 같은 전문가들의 우려는 점차 현실이 되고 있다. 최근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M7 기업이 미국 증시 성장 동력을 상쇄하는 장애물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실제 지난 7일 종가 기준 S&P500 지수에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ETF)인 '뱅가드 S&P500(VOO)'는 연초 대비 2.74% 상승하는 데 그쳤지만, M7을 제외한 'S&P493'의 시가총액 가중 방식 ETF인 '디파이언스 라지캡 엑스 매그니피센트7(XMAG)'은 연초 대비 5.49% 올랐다. M7을 제외한 기업 주가의 상승폭이 M7의 주가 상승폭을 뛰어넘으며 상승 주도주가 다변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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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테크 약세, '딥시크 쇼크' 영향인가
이런 가운데 관련 업계에서는 '딥시크(DeepSeek) 쇼크'가 이 같은 M7의 약세에 기름을 부었다는 평이 나온다. 지난달 20일 공개된 중국 AI 스타트업 딥시크의 AI 모델 '딥시크 R1'은 미국이 주도하던 AI 시장을 단숨에 뒤집어 놨다. R1은 오픈AI의 챗GPT, 구글의 제미나이 등 최신 AI 모델과 맞먹는 성능을 자랑하지만, 개발 비용은 압도적으로 낮다. 딥시크가 사용한 GPU는 엔비디아의 고성능 H100이 아닌 저사양 H800 칩 2,000여 개며, 투입된 개발 비용은 우리 돈 80억원에 그친다. 이는 일반적으로 빅테크 기업들이 AI 모델 개발에 투입하는 비용의 10분의 1 수준이다.
딥시크의 등장으로 인해 AI 시장은 격변기를 맞았다. 딥시크가 고성능 AI 모델 구현에 압도적인 컴퓨팅 자원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증명, 미국 빅테크만 추론형 모델을 만들 수 있다는 기존의 상식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면서다. 이와 관련해 한 업계 관계자는 "예상보다 후발 주자 진입장벽이 낮다는 인식이 확산하며 빅테크의 AI 대규모 투자에 대한 회의적 시선이 커졌다"며 "업계에서는 AI 시장 주요 플레이어들에 대한 시장의 '환상'이 점차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고 말했다.
AI 시장에 거대한 지각변동이 발생한 가운데, M7 기업들은 자본지출을 오히려 확대하며 승부수를 걸고 있다. 구글은 올해 자본지출을 750억 달러(약 109조원)로 설정했다. 이는 전년 대비 약 43% 늘어난 수준이다. 메타 역시 2025년 연간 설비투자 가이던스로 600억~650억 달러(약 87조2,400억~94조9,500억원)를 제시했다. 2024년(390억 달러) 대비 2배가량 설비투자 규모가 확대된 것이다. MS, 테슬라 등도 올해 연초 자본 지출을 크게 늘린다고 밝힌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