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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연준 의장 조기 교체 가능성 시사 수년째 지속되는 의견 충돌, 갈등 골 깊어져 차기 의장 후보로 케빈 워시 전 연준 의사 등 거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재차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경질 가능성을 시사했다. 파월 의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기준금리 인하 압박에 굴하지 않고 동결 기조를 유지하자, 그를 임기 만료 이전에 끌어내리고 새 의장을 세우겠다는 뜻을 드러낸 것이다. 시장은 파월 의장의 뒤를 이을 후보들의 면면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파월 의장, 결국 경질되나
25일(현지시각) AP통신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파월 의장 교체 계획에 대해 "그는 끔찍하다"며 "다행히 그는 곧 물러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차기 연준 의장을 3~4명 안에서 결정할 것"이라며 이미 후보군을 좁혔다는 사실도 전했다. 통상 미국 행정부는 연준 의장의 임기 만료 3~6개월 전 차기 의장 후보자를 발표하지만, 파월 의장의 통화 정책에 불만이 큰 트럼프 대통령이 조기 교체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파월 의장의 임기는 2026년 5월까지다.
트럼프 대통령과 파월 의장은 기준금리 조정 여부를 두고 좀처럼 이견을 좁히지 못하며 갈등을 겪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파월 의장을 향해 기준금리 인하를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 취임 이후에는 "멍청이", "너무 늦는 파월" 등 원색적인 표현을 사용해 파월 의장을 비난하며 금리 인하 압박을 가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도 파월 의장이 "매우 멍청하고 정치적인 사람"이라며 노골적인 조롱을 이어 갔다. 하지만 이러한 압박에도 불구, 연준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흔들림 없이 기준금리 동결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기대 배신당한 트럼프
주목할 만한 부분은 파월 의장이 1기 행정부(2017~2021년) 때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지명한 인물이라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파월 의장의 전임자인 재닛 옐런의 임기(2014~2018년) 당시 그에 대한 불만을 꾸준히 드러내 왔다. 대통령 후보 시절이었던 2015년 11월에는 '불능의 미국(Crippled America)' 저서 출판 기념식에서 옐런 당시 의장을 향해 "너무 정치적(highly political)"이라며 노골적인 비판 의견을 드러내기도 했다. 사실상 중앙은행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에 정면으로 도전한 셈이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차기 연준 의장으로 당시 연준 이사였던 파월을 지명했다. 역대 연준 의장들이 정권이 교체된 이후에도 연임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대범한 결정이었다. 앞서 앨런 그린스펀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임명해 조지 W. H. 부시(아버지), 빌 클린턴, 조지 부시(아들)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무려 19년이나 의장직을 유지했고, 그 후임인 벤 버냉키도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지명된 이후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도 연임해 지명해 8년간 의장을 맡았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에 성공하자마자 옐런을 의장 자리에서 끌어내렸다. 이에 시장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파월 의장을 자신의 경제 정책을 보조해 줄 인물로 점찍은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기대와는 달리, 파월 의장은 행정부의 뜻대로 움직이는 인물이 아니었다. 파월 의장은 임명된 그해 4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총 1%p 인상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연준이 미쳤다(gone crazy)’, ‘파월은 멍청하다(clueless)’고 비판했다. 지난해 7월에도 대선 후보였던 트럼프는 기준금리 인하에 대해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했지만, 파월 의장은 같은 해 9월 금리를 0.5%p 대폭 인하했다.
수년에 걸쳐 충돌이 거듭됐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까지만 해도 파월의 임기가 끝나기 전 연준 의장을 교체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는 지난해 12월 공개된 인터뷰에서 진행자가 “파월 의장을 교체할 의향이 있느냐”고 묻자 "그럴 생각은 없다”고 답했다. 이어 “내가 사퇴하라고 말한다면 그는 사퇴할 것이지만, 내가 사퇴하지 않도록 요청한다면 아마도 사퇴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2기 행정부가 정식 출범한 이후 두 사람 사이 갈등은 눈에 띄게 격화했고,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태도를 뒤집어 파월 의장을 경질하는 방안을 밀어붙이고 나섰다.

후임자 후보는 누구?
현재 가장 유력한 차기 연준 의장 후보로 거론되는 이는 케빈 워시 전 연준 이사다. 그는 조지 W.H. 부시 행정부에서 연준 이사를 지냈으며, 올해 초 트럼프 대통령과 회동한 바 있다. 지난해 가을에는 재무장관 후보에 이름을 올리며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다. 다만 트럼프 캠프 내부에서는 워시가 연준 내부에서 '반골적 인사'로 분류될 수 있다는 우려도 감지된다. 그가 고용보다 인플레이션 통제를 중시하는 매파 성향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 역시 시장이 주목하는 후보 중 하나다. 베선트 장관은 월가에서 명성을 떨친 금융 투자 전문가 출신으로,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미·중 무역 협상, 관세 정책 등 핵심 사안을 이끌고 있다. 이 과정에서 행정부 내 입지를 넓히고, 트럼프의 높은 신뢰를 얻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때 트럼프의 '퍼스트 버디'였던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의 권력 다툼에서도 그는 사실상 승리했다. 국세청장 직무대행 임명을 놓고 두 사람이 충돌했을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베선트 장관의 손을 들어줬다.
케빈 해셋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도 후임으로 고려되고 있다. 해셋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과 같이 현재 연준의 통화 정책에 비판적인 입장을 갖고 있는 인사다. 그는 지난달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연준의 독립성을 존중하지만, 제롬 파월 연준 의장과 정책에 대해 항상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그들이 관세에 대한 잘못된 경제 모델링을 한 것에 실망스럽다"고 강경한 발언을 내놓은 바 있다. 이밖에 크리스토퍼 월러 연준 이사, 데이비드 맬패스 전 세계은행 총재, 주디 쉘튼 전 유럽부흥개발은행 미국 대표, 데이비드 말패스 전 세계은행 총재 등도 파월 의장의 뒤를 이을 만한 후보로 언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