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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근절 추진 금감원은 조사기능 강화한 '한국판 SEC' 논의 기재부·금감원·금융위 등 유관조직 개편 필요

새 정부가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근절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주가조작, 내부자 거래 등 지능화된 금융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금융당국의 조사 권한을 강화하는 방안이 본격 논의되는 가운데, 조사부터 제재까지 평균 11개월이 걸리는 분절된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도 추진 중이다. 특히 기획재정부와 금융감독원, 금융위원회 등 경제조직의 기능 재정비를 통해 정책과 감독 기능을 분리·강화하는 조직 개편 구상이 주요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불공정 거래 조사부터 제재까지 11개월 소요
24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금감원은 자본시장 불공정 행위에 대한 모니터링·제재 체계를 대폭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대선 공약 이행 계획을 국정기획위원회에 보고했다. 핵심은 금융당국의 조사·제재권 강화다. 현재 금감원은 '한국판 SEC' 설립을 목표로 금융위원회와 협의를 지속하고 있다. SEC처럼 강력한 조사·제재권을 가진 기관을 벤치마크해 조사 기능을 대폭 확대하는 방안으로 국정기획위 내부에서도 금융위·금감원 조직 개편과는 별개로 조사 권한 확대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의 조사 절차는 SEC와 달리 지나치게 복잡하다. 현재는 한국거래소가 이상 거래 등을 포착하면, 금융위 자본시장조사단이나 금감원이 조사하고, 이후 자본시장조사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증권선물위원회가 고발 또는 제재를 결정하는 구조다. 증선위가 고발한 경우, 검찰은 수사를 통해 기소 여부를 결정하고 이후 법원이 판결을 확정한다. 이같이 분산된 구조 탓에 불공정거래 조사부터 제재까지 약 11개월이 소요된다. 이후 수사와 재판을 거쳐 판결이 확정되기까지는 2~3년이 걸리는 실적이다.
이에 국정기획위는 최근 발표한 새 정부 성장 정책 해설서를 통해 “불공정거래 조사 업무가 금융위·금감원·거래소에 분산돼, 상당 부분 중복 수행되고 있다”며 “조직을 통합해 조사부터 심의, 제재까지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경우 관건은 민간 조직인 금감원에 정부에 부여된 압수수색과 같은 강제 조사권을 부여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이에 금감원 조사 기능을 증선위에 흡수·통합해 조사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2년 전 라덕연 사태 당시 관리·감독체계 개편
금융당국의 불공정행위 대응체계 개편 논의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23년 라덕연발(發) 대규모 주가조작 사태를 계기로 10년 만에 전면 개편이 단행된 바 있다. 당시 거래소의 감시 시스템은 장기적인 이상 매매 징후를 전혀 포착하지 못했고, 대규모 복합 금융범죄였음에도 금융위와 금감원 사이 정보 공유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더욱이 투자자 수 증가와 함께 지능적·조직적인 불법 행위가 확산되면서, 금융권을 중심으로 불공정행위 대응체계의 근본적인 개편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 같은 문제의식 속에 금융당국은 증선위를 중심으로 상시 협업체계를 구축했다. 거래소(심리), 금융위·금감원(조사), 검찰(수사) 등으로 분산됐던 역할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사건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방식으로 구조를 재편한 것이다. 증선위가 주관하는 조사·심리기관협의회를 매달 정례화되었고, 자본시장조사총괄과장이 이끄는 실무협의체를 통해 필요시 수시로 사건 조율이 가능해졌다. 검찰도 주요 사건의 조사·심리 단계에서 직접 참여해 사건 초반부터 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금융위가 보유한 강제조사·영치 권한을 금감원 조사에도 확대 적용할 수 있도록 했다. 과거에는 금감원으로 이관된 사건 대부분이 일반 조사로 분류돼 강제 수단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으나, 조사·심리기관협의회 및 실무협의체 논의를 통해 강제조사의 필요성이 인정되면 반드시 실행하는 방향으로 개선됐다. 사건 배분 체계도 바뀌었다. 기존의 ‘중요 사건(금융위)–일반 사건(금감원)’ 이원 분류 방식을 폐지하고, 기관별 권한과 전문성에 따라 사안별 협의를 거쳐 배정하도록 했다.
진화하는 자본 범죄 대응 위해 기능 개편 필요
그러나 이 같은 제도적 보완에도 불구하고 자본시장에서는 여전히 다양한 탈법 행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전환사채(CB) 공장'으로 전락한 일부 상장사들은 주가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려 손쉽게 차익을 챙기는 방식의 반복적인 수법을 이어가고 있다. 여의도 일대에는 중소 상장사를 대상으로 주가조작을 부추기는 이른바 ‘부티크’ 세력도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불공정행위는 기업 성장 자금을 조달하는 자본시장의 본래 기능을 무력화하고, 기업 경영진마저 불법 행위에 가담하도록 유도하는 구조적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수사기관과 감독기관의 소극적 대응도 문제로 지적된다. 검찰 수사권을 상당 부분 이관받은 경찰은 금융 범죄의 높은 난도에 부담을 느껴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윤석열 정부 들어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수사단이 부활하며 수사 역량이 일부 복원됐지만, 금감원이 넘긴 사건 중 실제로 기소에 이르는 비율은 10%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1~2년 단위의 순환보직 체계 역시 장기간 수사가 필요한 금융 범죄 대응에 구조적 한계로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다.
이처럼 구조적인 제약이 반복되는 가운데, 새 정부는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대응과 관리 체계 강화를 위한 정부 조직 개편을 주요 과제로 설정했다. 경제 부처 간 역할 재조정과 맞물려 금융위와 금감원의 기능 재정립에 관한 논의도 본격화되는 분위기다. 대선 당시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을 중심으로 논의된 시나리오에는 기획재정부의 예산· 세제·경제 정책 기능 중 예산을 과거 기획예산처와 같은 별도 조직으로 분리하고, 그 빈자리에 금융정책 기능을 이관하는 구상도 포함됐다.
이 방안이 현실화하면, 기재부가 담당하는 국제 금융과 금융위의 국내 금융 정책 기능이 통합돼 효율성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이 과정에서 금융위와 금감원의 시장 정책 기능은 통합 조직으로 이관되고, 두 기관은 사실상 감독 기능에만 집중하게 된다. 기재부의 정책 권한 약화가 우려되지만, 금융당국이 감독 기능 강화라는 방향 자체는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날로 지능화·대형화되는 자본시장 범죄에 대응하려면 조사와 감독 기능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공감대도 확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