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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에 최고 연체율’, PF 정상화 속도전 금융당국 압박에 저축은행 ‘발등에 불’ 남은 사업장 브릿지론·지방, "정리 속도 둔화"

금융당국의 전방위 압박 속에 저축은행들이 부실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산을 대거 털어내고 있지만, 시장의 자율적인 조치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 올해 상반기 1조4,000억원을 포함해 지금까지 2조원가량이 정리됐으나, 여전히 10조원이 넘는 부실자산이 누적돼 있는 상황이다. 부동산 경기 침체와 시장 수요 부진이 맞물리며 구조적 해소가 지연되는 가운데, 업계에서는 정부의 공적자금 투입 없이는 위기를 넘기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상반기 공동펀드로 부실채권 1.4조 정리
26일 저축은행중앙회는 1분기 3차 공동펀드를 통해 약 2,000억원의 부실채권을 정리한 데 이어 2분기 4차 공동펀드로 1조2,000억원 수준의 부실채권을 추가로 정리했다고 밝혔다. 오화경 저축은행중앙회 회장은 “그간 저축은행업계는 경·공매 등을 통한 부실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산 매각 등 자구노력을 이어왔으나, 시장의 수요 부족 및 대주간 협의의 어려움 등으로 매각에 애로를 겪어왔다”면서 “해당 펀드가 이러한 부분에 대한 보완 기능을 통해 저축은행의 부실자산 정리에 상당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4차 공동펀드로 부실채권을 정리하면서 저축은행업계의 총 여신 연체율은 약 1.2%(포인트), PF 관련 대출 연체율은 약 5.8%포인트의 개선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4차 공동펀드 매입 대상 사업장 중 1,000억원은 펀드 조성 추진과정에서 경·공매 낙찰, 수의계약 등을 통해 기매각돼 최대 1조3,000억원 규모의 사업장이 정리될 예정이다.
저축은행업계는 앞으로도 경·공매 활성화, 상각 등을 통해 PF대출 관련 부실자산을 지속적으로 정리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저축은행중앙회 관계자는 “부동산 시장 상황, 저축은행 부실 정리 속도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올해 하반기에도 5차 공동펀드 조성을 통해 저축은행의 부실채권 정리를 추진할 계획”이라며 “3분기 설립 예정인 NPL관리 전문회사를 통해 업계 부실자산이 잠재적 불안요인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상시적 부실채권 해소 채널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 “연말까지 연체율 5~6% 관리해야” 압박
저축은행들이 부실 정리에 나선 건 금융당국의 건전성 관리 압박에 따른 것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19일 이례적으로 79개 저축은행 최고경영자(CEO)를 소집해 건전성 개선을 당부했으며, 일부 저축은행에 대해서는 현장 검사에 착수했다. 이달 10일에는 저축은행중앙회와 주요 저축은행업계 관계자들이 참석한 실무회의에서 연말까지 연체율을 5~6% 수준까지 낮출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금융당국의 건전성 관리 당부 배경에는 저축은행의 연체율 악화 흐름이 자리 잡고 있다. 올 1분기 말 기준 전체 79개 저축은행의 평균 연체율은 9.00%다. 이는 작년 말과 비교해 0.48%포인트(p) 상승한 수치로, 2015년 말(9.2%) 이후 약 1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개별 저축은행으로 떼놓고 봐도 연체율은 대형사와 소형사 가릴 것 없이 고공행진 중이다. 상위 5개 저축은행(OK·SBI·웰컴·한국투자·애큐온) 가운데 SBI(4.61%)를 제외한 나머지 저축은행 연체율은 전년 대비 상승했다. 특히 한국투자저축은행의 경우 올 1분기 연체율은 9.21%로 작년 1분기(7.36%)와 비교해 1.85%p 치솟았다. 이밖에도 △OK(9.08%, 전년比 0.21%↑) △웰컴(9.20%, 1.13%p↑) △애큐온(5.72%, 0.45%p↑) 등도 연체율이 1년 전과 비교해 상승했다.
아울러 금융지주계열인 NH저축은행의 올 1분기 말 기준 연체율은 10.12%(0.21%p↑)로 5대 금융지주 계열 저축은행 가운데 가장 높았다. KB저축은행(9.51%, 2.66%p↑)과 하나저축은행(9.41%, 1.67%p↑)도 전년 대비 높은 상승률을 나타내며 9%대 연체율을 기록 중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연말 연체율 관리 당부는 가계와 기업 대출 전반에 적용되는 사안으로 저축은행업권 조기 정상화를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규모 구제 금융 투입 없인 해결 어려워”
다만 저축은행들의 적극적인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부실 정리 속도는 지지부진하다. 금감원에 따르면 저축은행업계의 부동산 PF 익스포져(위험노출액)는 지난해 9월 말 기준 15조4,000억원이다. 종류별로는 본PF 5조8,000억원, 브릿지론 2조1,000억원, 토지담보대출 7조5,000억원 등이다. 또 부동산 PF 익스포져 중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유의·부실 우려 PF는 4조4,000억원에 육박한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저축은행업계는 330억원, 5,100억원 규모의 1·2차 PF 정상화펀드에 이어 이번 3·4차 펀드까지 2조원가량 정리한 상태로, 나머지 13억원 규모의 익스포져가 여전히 남아있다. 금융당국의 강력한 부실여신 경·공매 유도로 적지 않은 부실채권들이 정리됐는데도 이 정도다. 부동산 경기와 실물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기준금리 인하를 제외하면 올해 부동산 시장에 긍정적인 요인이 없다는 점이다. 실제 아직까지 부동산 시장 회복은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KB금융지주가 발표한 '2025 KB부동산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주택부동산과 상업용부동산 모두 회복 가능성은 작다. 주택시장의 경우 대출 규제 완화가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시점이며 상업용부동산은 시장침체 영향으로 우량자산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양극화가 뚜렷하다.
더군다나 남은 저축은행 사업장은 착공 전인 브릿지론 사업장이 대부분인 데다, 대다수가 지방에 위치해 있다. 브릿지론 사업장은 인허가 전이거나 본 PF사업에 들어가기 전 단계에 머물러 있어 사업 불확실성이 높다. 이에 투자자나 매수자로서는 리스크가 크다고 판단돼 매입을 꺼리게 된다. 지방 사업장도 인구 감소, 고령화 등으로 인해 부동산 수요가 적어 매수자를 찾기 어려운 편이다. 이 때문에 중앙회가 3월 추진한 3차 공동 펀드도 투자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어 기존 목표액(5,000억원)에 한참 못 미치는 2,000억원 규모로 조성됐다. 1~3차 펀드 조성액(7,330억원)도 업권 내 부실 우려 등급을 받은 사업장 금액(2조9,000억원)의 25% 수준에 그쳤다.
이에 업계에서는 대규모 구제금융 없이는 부실을 모두 털어내기가 힘들 것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 저축은행업계 관계자는 "상호금융권까지 합하면 시장에 PF 사업장 공급량이 넘쳐나고 있어 매수자들이 더욱 낮은 가격에 사업장을 인수하기 위해 버티고 있는 상황인데, 부동산 시장마저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 펀드 조성 등 여러 조치에도 부실 정리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며 "공적 자금 없이 시장 자율로 흡수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