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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K·영풍, 서울고법 가처분 항고심 결정 불복 본안 소송으로 '여론 뒤집기' 노리나 LP 출자 급격히 줄며 자금 상황 '빨간불'

서울고등법원이 고려아연 의결권 행사 허용 가처분 항고를 재차 기각한 가운데, MBK파트너스가 이에 불복하고 대법원 판단을 받기로 했다. 소송을 본안으로 끝까지 끌고 가 '마지막 반전'을 노리겠다는 구상으로 풀이된다.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극단으로
26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24일 MBK·영풍이 제기한 의결권 행사 허용 가처분 항고를 기각했다. MBK·영풍은 지난 3월 열린 고려아연 정기 주주총회에서 영풍의 의결권 행사가 제한당한 것이 부당하다며 서울중앙지법에 가처분을 신청했다가 기각당하고 항고에 나선 바 있다.
MBK·영풍은 서울고법의 결정에 즉각적으로 불복 의사를 밝혔다. 대법원 본안 소송을 통해 영풍의 의결권 제한 결정을 뒤집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서울고법 역시 "영풍이 보유한 고려아연 주식에 대해 상법 제369조 제3항의 적용이 당연히 배제된다고까지 보기는 어렵다"며 "이 부분에 관해서는 본안 소송에서 충분한 시간을 갖고 면밀한 심리를 거쳐 판단할 필요가 있다"는 판결을 내놨다. 상법 제369조 제3항은 두 회사가 10%를 초과하는 상대 회사의 주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 해당 주식을 상호주로 간주해 의결권이 없는 것으로 보는 조항이다.
법조계에선 가처분에서는 최 회장 측에 유리한 결정이 나왔지만, 본안 소송이 MBK‧영풍에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로펌 관계자는 "영풍은 지난 5월 본안 소송을 제기했고, 의결권 행사 허용이 기각으로 결론 난 것은 아니다"라며 "가처분 결정은 본안 소송에서 충분히 반전될 수 있다"고 말했다.
MBK 둘러싼 시장 여론
MBK는 본안 소송에서 어떻게든 승기를 잡아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최근 들어 MBK를 둘러싼 국내 시장 여론이 지속적으로 악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정적 인식의 시발점은 지난 2023년 12월 발생한 한국앤컴퍼니 공개매수 무산 사태였다. 당시 MBK파트너스는 특수목적법인(SPC) 벤튜라를 통해 한국앤컴퍼니 지분 공개매수를 진행했지만, 목표했던 최소 지분율 20.35%를 확보하지 못했다. 한국앤컴퍼니 조현식 고문과 조현범 회장의 갈등에 편승해 경영권을 확보하려다가 쓴맛을 본 것이다. 공개매수로 인해 형성된 극한의 변동성 장세 속에서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 투자자에게 돌아갔다.
지난해부터 본격화한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역시 적대적 M&A(인수 대상 회사의 경영진이나 이사회의 동의 없이 이루어지는 기업 인수합병)가 보편적이지 않은 우리나라 자본 시장에서 막대한 거부감을 불러 일으켰다. 일각에서는 사모펀드인 MBK가 국가 핵심 기간 산업을 영위하는 고려아연을 경영해서는 안 된다는 비판이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장기적인 기업의 성장보다는 단기적 투자금 회수에 경영 초점을 맞추는 사모펀드의 특성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이 늘어난 것이다.
이후 지난 3월 홈플러스가 기습적으로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며 MBK의 이미지는 완전히 땅에 떨어졌다. 국세청은 2020년 이후 5년 만에 MBK에 대한 세무조사에 나섰고, 검찰은 홈플러스의 사기 채권 발행 의혹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에 착수했다. 홈플러스는 채무 상환을 유예할 수 있는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려는 계획을 세운 뒤 의도적으로 단기 채권을 발행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 수사에 앞서 조사를 벌인 금융당국은 사기 혐의와 관련해 관련 정황을 확보했다고 밝힌 바 있다.

LP들 줄줄이 등 돌려
이 같은 시장 여론은 MBK의 '본업'에 막대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모펀드와 같은 GP는 연금·공제회 등 출자자(LP)로부터 출자받아 조성한 펀드로 투자를 집행한다. 더 많은 출자를 따내기 위해서는 ‘평판 장사’가 필수적이며, 시장 신뢰가 훼손될 경우 언제든 자금 조달이 막힐 수 있다는 의미다.
현재 3차 클로징을 앞두고 있는 MBK 6호 펀드의 조성 과정을 살펴보면 이미지가 사모펀드의 펀드레이징에 미치는 영향을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다. 6호 펀드의 펀드레이징은 작년까지만 해도 수월하게 진행됐다. 상반기에는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등 국내 LP들의 출자 사업에 연이어 이름을 올렸고, 작년 말 2차 클로징 시점에는 초기 설정 목표액인 70억 달러(약 9조5,000억원)의 70%가 넘는 50억 달러(약 7조원)의 자금을 끌어모았다.
문제는 작년 하반기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사태가 벌어지며 과학기술인공제회, 노란우산공제회 등 공적 성격의 자금을 운용하는 국내 주요 LP들이 줄줄이 출자 사업에서 MBK를 배제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주요 시중은행들 역시 6호 펀드에 출자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연금의 경우 6호 펀드에 약 3,000억원을 출자하면서 '적대적 M&A 투자 금지' 조항을 계약서에 명시했다. 원자력환경공단(방사성폐기물관리기금)도 유사한 조건으로 출자를 결정했으며, 다른 국내 기관투자자들도 이 같은 조항 삽입을 요구하는 추세다. 업계에서는 해당 조항을 사실상 고려아연에 대한 출자를 금지하기 위한 일종의 족쇄라고 해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