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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4개국, 브릭스 참여 마무리 경제적 기회 확장과 파트너십 다변화 미중 갈등 속 지정학적 관계 악화 가능성
[동아시아포럼] 섹션은 EAST ASIA FORUM에서 전하는 동아시아 정책 동향을 담았습니다. EAST ASIA FORUM은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학교(Australia National University) 크로퍼드 공공정책대학(Crawford School of Public Policy) 산하의 공공정책과 관련된 정치, 경제, 비즈니스, 법률, 안보, 국제관계에 대한 연구·분석 플랫폼입니다. 저희 폴리시 이코노미(Policy Economy)와 영어 원문 공개 조건으로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세계가 다극화(multipolarity)를 향해 가면서 동남아시아(이하 동남아) 국가들도 외교 및 경제 정책을 재검토하고 있다. 이중 눈에 띄는 것이 ASEAN(동남아시아 국가 연합, 이하 아세안) 소속 국가들이 파트너십 다변화의 일환으로 브릭스(BRICS,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 공화국 국가 연합) 참여를 진행한 점이다. 참가국들에는 획기적인 경제적 기회를 안겨줄 수 있지만 아세안 연합의 단결과 중심적 위치가 유지될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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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4개국, 브릭스 참여 완료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베트남 등은 최근 브릭스 참여를 마무리 지었다. 경제 성장과 무역 다각화, 개발 자금 조달의 기회를 얻기 위해서다. 하지만 브릭스와의 협력 확대가 아세안의 단합을 해쳐 그간 쌓아온 지정학적 위상과 협력 구조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참여하는 국가들로서는 새로운 기회가 되겠지만 그렇지 못한 나라들은 소외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세계 무역량의 23%를 차지하는 브릭스 동맹은 동남아 국가들에 서구 중심 경제 체제에 대한 매력적 대안이 될 수 있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중국, 인도와의 협력을 강화하면서 신개발은행(New Development Bank, 브릭스 국가들에 의해 설립된 다자간 개발은행, NDB)을 통해 사회기반시설 투자 자금을 조달할 수도 있다.
아세안 위상과 단결에는 ‘악영향’ 줄 수도
프라보워 수비안토(Prabowo Subianto)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현재의 접근을 ‘친구는 천 명도 모자라지만, 적은 한 명도 많다’라는 짧은 문장으로 표현했다. 다극화 체제로 기울어지는 글로벌 상황에서 협력 관계를 넓혀 가려는 인도네시아의 전략을 잘 드러낸다.
한편 안와르 이브라힘(Anwar Ibrahim) 말레이시아 총리는 브릭스 참여가 특정 진영과의 연계가 아니라 급격한 글로벌 질서 변화에 적응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브릭스를 재생 에너지 및 기술 산업 분야 성장과 중국과의 관계 강화 수단으로 삼겠다는 얘기다.
또한 태국은 브릭스 참여를 해외 직접 투자 유치와 신규 시장 진출의 기회로 삼고자 하며, 베트남은 외교적 협력 관계를 다변화해 서구 열강에 대한 지나친 의존에서 벗어나겠다는 목표를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브릭스를 향한 기대와 열망은 아세안의 중심성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 당초 아세안의 설립 목적이 10개 동남아 회원국들의 외교적, 경제적 전략을 하나로 모으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일부 국가들이 브릭스로 기울어질수록 아세안이 국제 무대에서 목소리를 낼 여지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참여국들이 신개발은행을 통한 자금 조달 기회 등 금융 및 무역상의 특혜를 누리는 동안 브릭스에 참여하지 못하는 국가들의 경제적 소외도 문제로 지적된다.
미중 갈등 속 지정학적 불확실성도 커져
지정학적 영향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특히 동남아 국가들이 중국, 러시아와 가까워질수록 서구 열강들과의 관계가 복잡해진다. 중국, 러시아가 전 세계에 영향력을 확장하는 상황에서 편을 바꾸는 행위로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위상 강화에 나선 현재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미국은 무역 관세와 지정학적 대치 상황을 통해 해당 지역 외교 양상을 뒤바꾸려 한다. 이렇게 미중 갈등이 심화한다고 볼 때 동남아 국가들이 두 강대국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하며 중국과의 갈등 증폭을 선언한 것도 아세안에 어려움을 더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진행 중인 관세와 수출 규제는 중국의 핵심 광물 수출 통제 및 구글 등 미국 기업에 대한 반독점 조사를 촉발하고 있다. 트럼프의 이민 규제 역시 인도와의 관계를 경색시킬 수 있다. 이렇게 경제적,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증가할수록 아세안 국가들은 브릭스가 제시하는 무역 및 금융 대안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기회와 위기 공존
또한 아세안 국가들이 브릭스와 손을 잡는다고 해도 무역 협력이 어디까지 확장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아세안은 이미 역내 포괄적 경제 파트너십(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RCEP)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he Comprehensive and Progressive Agreement for Trans-Pacific Partnership, CPTPP) 등을 포함한 포괄적 무역 협정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들이 브릭스가 추구하는 대안 금융 시스템과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중 하나가 러시아가 미국 달러화 의존을 줄이기 위해 도입하고자 하는, 블록체인 기반 국가 간 결재 시스템이다. 이는 금융 및 재정 독립성을 강화할 수 있지만, 이미 기존 글로벌 금융기관들과 통합된 아세안의 금융 인프라를 흔들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별도의 곡물 거래 시스템을 만들고자 하는 러시아의 계획도 아세안의 기존 시장 체계에 혼선을 가져와 경쟁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하지만 동남아 국가들의 브릭스 참여가 제공하는 발전의 기회도 무시할 수 없다. 아세안과 브릭스를 연계하는 ‘아세안+브릭스’ 전략을 통해 회원국들은 브릭스 관련 정책을 아세안에 통합함으로써 지역의 단결을 오히려 강화할 수 있다. 마침 말레이시아가 아세안 의장국을 맡고 있는 것도 사회기반시설 건설과 디지털 전환, 기후 대응 등의 분야에서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
아세안 정상 회담과 장관급 회의체는 새로운 역학 관계를 공론화하는 장이 될 수 있다. 브릭스 의장국을 초청하는 것도 아세안이 확장된 협력 관계를 누리면서 아세안의 중심성 유지를 도모하는 시작점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투명한 외교와 효율적인 의사소통, 변치 않는 내부 협력을 통해서만 아세안의 원칙과 변화하는 세계 질서를 조화시킬 수 있다.
원문의 저자는 푸시파나탄 선드람(Pushpanathan Sundram) 치앙마이 대학교(Chiang Mai University) 공공정책대학원(School of Public Policy) 방문 연구원입니다. 영어 원문 기사는 ASEAN members balance with BRICS as the world shifts | EAST ASIA FORUM에 게재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