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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보복 관세 부과한 중국에 '재보복' 시사 지정학적 질서 재편 위한 전략적 행보 "오히려 中에 좋은 꼴", 과도한 자충수였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에 대한 추가 관세 부과 가능성을 시사했다. 중국이 미국의 통상 장벽에 보복 관세로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히자, 재보복을 암시하며 공개적으로 불만을 드러낸 것이다. 트럼프발(發) 관세 전쟁이 나날이 격화하는 가운데, 시장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폭탄이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트럼프 "中, 관세 철회 않으면 보복하겠다"
7일(이하 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에 “중국은 이미 기록적인 수준에 달하는 관세, 비화폐적인 관세, 불법적인 기업 보조금 지원, 대규모 장기적인 통화 조작에도 불구하고 추가로 34%의 보복 관세를 (미국에) 부과했다”며 “내가 경고했던 대로 만약 어떤 나라가 미국에 대해 추가적인 관세를 부과해 기존의 장기적인 관세 남용을 넘어서는 보복을 한다면, 그 나라에 대해서는 기존에 설정된 관세보다 새로운 더 높은 관세가 즉시 부과될 것이라는 경고를 무시한 결과”라고 적었다.
이어 그는 “중국이 이미 장기적인 무역 남용을 초과하는 34%의 인상을 내일, 2025년 4월 8일까지 철회하지 않으면, 미국은 4월 9일부터 중국에 대해 5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며 “또한 중국과의 모든 (관세 관련) 회담 요청은 종료될 것이고, 다른 나라들과의 협상은 즉시 시작될 것”이라고 했다.
앞서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1월 취임 이후 두 차례에 걸쳐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 20% 관세를 부과했으며, 최근 중국에 34%의 상호 관세를 추가로 부과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이에 중국 역시 지난 4일 모든 미국산 수입품에 대해 34%의 보복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히며 맞불을 놨다. 사실상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중국의 대응에 대한 재보복 의지를 담고 있는 셈이다.
트럼프 팀의 '내분'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강수'가 지정학적 질서를 조정하기 위한 일종의 전략이라고 평가한다. 제니퍼 번스 미 스탠포드대 경제사학 교수는 '트럼프의 관세 광기에 대처하는 법(There’s a Method to Trump’s Tariff Madness)'이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통해 트럼프의 관세 정책은 관세 자체가 핵심이 아니며, 세계 경제 및 지정학적 질서를 파괴하고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새로운 체계를 구축하려는 보다 야심 찬 계획의 일환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 모두가 이 같은 계획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일례로 정부효율부(DOGE) 수장이자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의 경우, 지난 5일 이탈리아 극우 정당 라리가(La Liga) 행사에 화상으로 참석해 “미국과 유럽이 매우 긴밀한 파트너십을 구축하길 바란다”며 “이상적으로는 무관세 체제로 나아가 사실상의 자유무역지대를 실질적으로 창출하길 희망한다”고 발언했다. 트럼프는 지난 2일 유럽연합(EU)에 20%의 상호 관세를 부과한 바 있다.
트럼프의 관세 계획 설계자로 불리는 백악관 수석 무역 고문 피터 나바로는 이 같은 일론 머스크의 주장을 단호하게 일축했다. 그는 7일 CNBC 인터뷰에서 ‘머스크가 유럽 무관세를 주장하며 트럼프 관세 정책에 반대를 표했다’는 질문에 “백악관과 미국 국민 모두는 일론의 회사가 자동차 제조업체라고 알고 있지만, 머스크는 해외 부품에 의존하는 자동차 조립자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테슬라의 많은 부품이 일본, 중국, 대만에서 왔다”며 “그는 값싼 외국 부품을 원한다”고 지적했다. 긴밀하게 협력해야 할 '트럼프 팀'이 무리한 관세 정책으로 인해 내분을 겪고 있는 것이다.

美 통상 장벽, 中에는 이득?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대로 지정학적 질서가 재편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이 적대적 관계를 유지하는 중국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관세가 시진핑의 날을 만들었다’는 제하의 사설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글로벌 무역전쟁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전략적 선물이 될 수 있다고 짚었다. 미국의 관세 장벽으로 인해 함께 중국을 견제하던 서방 동맹에 균열이 생겼다는 것이다. 실제 3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미국의 대EU 20% 상호관세 부과 조치에 대해 “잔인하고 근거 없는 결정”이라며 프랑스 기업의 대미 투자를 당분간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같은 날 캐나다도 미국산 자동차에 25% 관세를 부과한다고 밝혔다.
시장에서는 트럼프발 관세 전쟁이 격화하면 중국의 기술 발전과 독자 생태계 구축에 오히려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미국의 관세 장벽이 높아질수록 중국 빅테크들의 기술 자립이 빨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아울러 관세 전쟁으로 인해 미국에 대한 반감이 커질 경우, 중국 소비자들 사이에서 ‘궈차오(애국소비)’ 유행이 본격화하며 중국 소비와 내수가 회복될 가능성도 있다.
중국이 관세 전쟁 속에서 개발도상국에 대한 영향력을 제고할 수 있을 것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미국은 동남아시아 국가에도 높은 상호관세율을 적용했다. 베트남 46%, 태국 36%, 인도네시아 32% 등이다. 이 같은 관세 폭탄이 현실화하면 동남아 주요국들은 대미 수출 의존도를 낮출 수밖에 없고, 결국 중국이 반사이익을 누릴 가능성이 크다.
시장에서는 이 같은 흐름이 지속될 경우 미국이 오히려 글로벌 시장에서 주도권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시장 관계자는 "미국과 중국의 치열한 보복전을 보면 알 수 있듯, 트럼프 행정부 관세 정책의 주 타깃은 중국"이라며 "문제는 미국이 중국을 고립시키는 데 실패하고 거꾸로 고립될 수도 있다는 점"이라고 짚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로 강대국으로서의 지위를 강화하는 동시에 금전적 손해도 보지 않겠다는 구상인 듯싶으나, 이는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