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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업서 2.1만 명 20개월째 감소 구직급여 신청 13.7만 명 4.6% 증가 실업급여 지급액·지급자, 4년來 ‘최고치’

고용시장에 불어닥친 찬바람이 그칠 줄 모르고 있다. 지난 3월 고용보험 상시가입자 수 증가폭은 3월 기준 통계 집계 이래 27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고, 구직급여는 지급자와 지급액 모두 4년 만에 최다 기록을 갈아치웠다. 건설업 경기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정책과 같은 대외 경제 불안 요인이 고용 시장을 무겁게 짓누르는 모양새다. 기업들의 고용 여력 또한 점점 떨어지고 있다.
3월 고용보험가입자 1% 증가, 통계 집계 이래 가장 낮아
7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3월 고용행정 통계로 본 노동시장 동향’에 따르면 3월 말 기준 고용보험 상시가입자는 1,543만5,000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달보다 15만4,000명(1.0%) 늘었다. 이는 3월 기준으로는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했던 1998년 이후 27년 만에 가장 낮은 기록이다. 3월처럼 월별 기준으로 증가 폭이 평균을 크게 밑도는 상황은 지난해 8월부터 8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인구구조 변화로 인한 생산가능인구 감소와 고령화에 경기 위축까지 겹치면서 고용 시장이 단기 회복이 어려운 침체기에 빠졌다는 평가다.
특히 건설업은 좀처럼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건설업 고용보험 가입자는 전년 동기 대비 2만1,000명 감소한 75만4,000명을 기록하면서 20개월 연속 줄었다. 건설업은 최근 발표된 건설수주나 건설경기지수 모두 크게 부진하다. 이 때문에 경기 후행지표인 고용보험 가입자 수가 반등 기회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고용보험 가입 사업장이 그나마 상대적으로 나은 일자리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지표는 매우 우려스러운 수준이다. 이들 사업장이 줄면 근로자들이 고용 시장에서 일용직 등 ‘더 나쁜 일자리’로 내몰리고 이 일자리를 두고 더 심한 취업 경쟁을 해야 한다. 실제 1월 국내 사업체 종사자 수는 46개월 만에 감소세로 전환됐다.
인당 일자리 구인배수 0.32 불과, 외환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준
기업의 일자리 공급도 다시 바닥권으로 추락했다. 1인당 일자리 개수를 뜻하는 구인배수는 지난달 0.32에 불과했다. 10명 중 7명은 새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인데,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기업의 신규 구인 인원은 15만4,000명으로 지난해 3월 대비 4만5,000명(22.8%) 줄었으나, 신규 구직 인원은 48만 명으로 6만3,000명(15.2%)이나 증가한 탓이다. 구인배수는 1월 0.28로 충격이 온 뒤 2월에 0.40으로 반등했지만 다시 주저앉았다.
이는 기업들이 경영 악화에 대비해 채용 문을 닫기 시작한 영향으로 해석된다. 한국경제인협회가 2월 매출액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채용 설문조사를 한 결과 61.1%는 올해 상반기 신규 채용 계획이 없거나 미정이라고 답했다. 채용 계획이 있더라도 지난해보다 규모를 줄이겠다고 답한 기업도 28.6%를 기록했다. 신규 채용을 하지 않거나 규모를 늘리지 않는 이유 1위는 대내외 불확실성과 경영 긴축(51.5%)이 꼽혔다.
천경기 고용노동부 미래고용분석과장은 "제조업이나 사업서비스업, 도소매업, 건설업 등 최근 경기가 부진한 산업을 중심으로 구인 인원이 감소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미국의 고율 관세 정책은 추후 미칠 영향이지만 기업들이 미리 대비하기 위해 채용 수요를 많이 줄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업급여 신청자 전년比 4.6%↑
이런 가운데 3월 구직급여(실업급여) 신규 신청자는 13만7,000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4.6%나 증가했다. 구직급여 지급자는 3만8,000명(5.9%) 늘어난 69만3,000명에 달했다. 지급액도 815억원(8.4%) 늘어난 1조510억원으로 두 달 연속 1조원을 돌파했다. 구직급여 지급액과 지급자 모두 2021년 3월 이후 4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구직급여가 급격하게 증가한다는 것은 실업자가 증가하고 일자리 여건이 악화된다는 의미다. 다만 구직급여액은 고용보험 가입자 증가로 인해 추세적으로 늘고 있는 영향도 있다.
채용 시장도 얼어붙었다. 통계청이 제공하는 속보성 지표인 ‘나우캐스트’에 따르면 3월 1일부터 28일까지 온라인 채용 공고의 평균 모집 인원 수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8.4% 감소했다. 이는 기업들이 경력직을 선호하며 신규 채용을 줄이거나 보류하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경기 전망도 어둡다. 국책연구원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7일 발표한 ‘경제동향 4월호’에서 “최근 우리 경제는 대외 여건이 급격히 악화되며 경기 하방 압력이 확대되는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주요 원인으로는 전반적인 생산 둔화와 수출 여건의 악화를 들었다. KDI는 “건설업 생산이 전년 동월 대비 21% 감소하며 큰 폭의 감소세를 지속하고 있다”며 “광공업(1.0%)과 서비스업(0.1%)도 낮은 증가세에 그치며 산업 전반에서 생산이 둔화되는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3월 소비자심리지수도 93.4로 기준치인 100을 밑돌며 소비 부진 흐름도 이어졌다.
KDI는 “미국의 관세 인상으로 수출 하방 압력이 확대되는 모습”이라고도 했다. 2월 수출은 전월(0.7%)보다 높은 3.1% 증가했지만, 그동안 견조한 흐름을 보이던 정보통신기술(ICT) 수출은 점차 조정 국면에 접어든 상황이다. 특히 반도체 수출의 증가세가 둔화되는 가운데 국제 통상 환경이 악화되면서 다른 주요 품목들도 부진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